비릿한 강풀 냄새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벌써 자기 진지가 가까운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천둥이의 취미는 달리는 것이었고 달릴 때 어떤 경지를 느끼는 듯했다. 요즘 에인이 바빠서 그런 기회를 주지 못했더니 지금 녀석은 그 기회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마침내 천둥이가 갈대 울타리를 지나 그의 천막 앞에 도착했다. 그는 녀석의 배에서 훌쩍쩍 내려섰고 그 순간 녀석이 그만 풀썩 주저앉았다. 그때 군사들이 횃불을 들고 달려왔다.
"장군님, 어디 갔다 오십니까?"
그리고 군사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천둥이를 내려다보았다. 횃불에 비친 녀석의 등엔 화살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벌써 피도 흐르고 있었다.
"아니, 천둥아!"
에인은 너무나 놀라 그만 심장이 정지해버리는 것 같았다. 그는 주저앉아 천둥이 머리를 껴안았다. 귀 뒤에도 화살 하나가 깊이 박혔고 거기서 흐르는 피가 그의 손을 적셨다.
그렇게 화살을 맞고서도 녀석은 에인을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다. 흐르는 피까지 스스로 정지시켜가며 오직 에인이 목숨 하나 지키려고 전사처럼 달려왔다. 그리고 이제 제자리에 닿자 녀석은 긴장을 풀 듯 그렇게 핏줄을 열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달려올 땐 땀 한 방울 느끼지 못했는데 에인을 구해냈으니 안심하고 자기 피를 흘리는 것이다.
"아아, 천둥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응?"
천둥이의 눈이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벽력같이 소리쳤다.
"의원을 모셔오시오, 의원을!"
그리고 그는 천둥이 몸에 박한 화살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얼마나 아팠을까, 이렇게 아프면서도 날 안전하게 데려오려고…. 그때 할머니가 도착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매달렸다.
"의원님, 천둥이를 살려주시오."
할머니는 조용히 주저앉아 남은 화살을 뽑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풀뿌리 고약을 붙였다. 치료가 끝났을 때 천둥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의원님, 천둥이는 살 수 있지요?"
할머니가 가만가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미 숨을 거두었습니다."
"뭐라구요? 화살을 뽑고 치료를 했지 않아요? 그런데 왜 숨을 거두어요, 왜?"
"약을 붙인 것은 그 상처자리가 쉬 상하지 말라고 그런 것입니다."
"안돼요! 살려 주시요, 제발 천둥이를…."
그는 천둥이를 껴안고 그 등에 얼굴을 비볐다. 약으로 상처자리를 막았는데요 피는 계속 스며내려 그의 얼굴을 적셨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중얼거리기만 했다.
"천둥아, 기어이 내가 널 죽였구나. 너는 나를 살리려고 사막을 달리고, 대월씨국까지 달려갔는데, 나는 나는 너를 이렇게 죽음의 구덩이로 몰고 갔구나. 아아 천둥아, 눈이라도 좀 떠보렴. 한번만이라도 눈을 뜨고 나에게 작별 인사라도 해 주려렴. 아니면 그렇게는 죽을 수 없다고, 당장 살려내라고 떼라도 써보렴. 제발 한 번만 눈을 떠…."
에인은 통곡하기 시작했다. 주위에 몰려든 모든 군사들도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훔쳐냈다. 강 장수 역시 울고 있었다. 별읍장 집에서 나 여기 있노라고 외치던 녀석, 어서 빨리 에인을 구하러 가자고 울듯이 외치던 녀석, 험준한 산맥을 넘어온 뒤 좀 쉬어가자고 해도 아니 된다고 재촉하기만 하던 녀석…. 그렇게 그리워하던 제 주인을 만나고 겨우 몇 달 만에 그 주인 앞에서 죽다니…. 그러나 강 장수는 얼른 눈물을 훔쳐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조용히 지시했다.
"출전준비를 하라."
에인은 울다가 천둥이 등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는 잠 속에서라도 천둥이와 동행하고 싶었다. 아직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이토록 이르게 헤어질 수는 없어 그의 넋은 허둥지둥 천둥이를 따라가고 있었다.
녀석은 안개를 헤치고 혼자서 떠나고 있었다. 가지 마라! 가지 마! 날 두고 가지 마, 천둥아, 제발…. 그는 철철 울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