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첫 날은 길었다

<내 추억속의 그 이름 183> 서울일기<3>

등록 2004.08.12 14:34수정 2004.08.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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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에 갓 올라갔을 때의 나

서울에 갓 올라갔을 때의 나 ⓒ 이종찬

걸었다. 그저 내 앞에 놓인 큰길을 따라 그냥 걸었다. 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만치 걸어가면 금세 끝이 보일 것만 같았던 그 길의 끝자락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면 길은 다시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아니, 내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길로 삼아 어디론가로 한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마와 등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몹시 뜨거워지면서 다리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사출실에서 쓴 시 원고뭉치와 옷가지 몇 개를 챙겨넣은 자그마한 가방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스모그에 가려진 희부연 햇살이 그렇게 따가울 수가 없었다.

갈 곳이 없었다. 정식이 아닌 볶음밥으로 아침식사를 대충 마치고 중국집에서 서둘러 나왔지만 당장 내가 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나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몹시 바쁜 사람처럼 무작정 큰길을 따라 바삐 걸었다. 그렇게 점심나절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보니 저만치 구로공단이 보였다.

그때 문득 안양에 있는 제법 큰 공장에 다니며 강서구 어디쯤에 살고 있다는 고교 동창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손수건을 한번 쥐어 짠 뒤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화번호 수첩에서 고교 동창생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꾸욱~ 꾹~ 꾸욱~ 꾹~ 묵묵부답. 그래. 이럴 게 아니라 서울 지리도 익힐 겸 그냥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 쪽으로 한번 가 볼까. 아냐, 아냐. 우선 방세가 싸다는 구로공단 근처에 가서 방부터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만약 내가 찾는 방이 없다면? 그러면 우선 여인숙에 가서 하룻밤 자면 되겠지. 여인숙은 방값이 싸니까.

구로공단 주변은 더욱 무더웠다. 목이 심하게 말라왔다. 아니, 목에서 단내가 풀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구로공단 주변을 살펴보아도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파는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소변도 보고 싶었다. 마땅한 공중 화장실도 얼른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벌건 대낮에 으슥한 골목에 들어가 실례를 할 수도 없었다.


"생맥주 한 잔 주세요."
"1000으로 드릴까요? 500으로 드릴까요?"
"500으로요."
"마른안주 드릴까요?"
"노가리 있죠?"
"아, 네. 날씨가 몹시 덥죠?"
"오늘따라 더욱 별스럽네요."


나는 구로공단 근처에 있는 생맥주집에 들어가 500cc를 시킨 뒤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아까 걸어오면서 땀을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도 소변이 제법 많이 나왔다. 그래. 점심은 생맥주와 노가리로 대충 떼우면 되겠구나. 그리고 저녁은 고교 동창생을 불러내 소주 한잔 하다 보면 어떻게 해결되겠지.

500cc 한 잔을 단숨에 들이킨 나는 생맥주를 한 잔 더 시킨 뒤 고교 동창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으래. 어디야? 일 끝나는 대로 당장 나갈게' 라는 고교 동창생의 밝은 목소리를 듣자 적이 안심이 되었다. 나는 고교 동창생과 저녁 7시쯤에 2호선 구로공단 전철역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불과 10여 분 만에 1000cc를 마신 나는 생맥주집에서 나와 구로공단 전철역 근처를 천천히 걸으며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내가 찾는 달셋방은 보이지 않고, '장기방'이라고 쓰인 여인숙과 여관만 자주 눈에 띄었다. 간혹 '달셋방' 이라고 쓰인 집에도 들어가 보았지만 생각보다 방세가 비쌌다. 그리고 3개월 방세에 해당하는 보증금도 걸어야 된다고 했다.

그래. 이럴 게 아니라 오늘 하루는 우선 구로공단 전철역에서 가까운 여인숙에서 하룻밤 자야겠다. 나중에 고교 동창생을 만나 값싼 달셋방이 어느 곳에 많이 있는지 좀더 자세하게 물어본 뒤 내일 방을 구해도 그리 늦지 않을 것이다. 괜히 비싼 달셋방을 얻어 매달 고생을 하는 것보다 하룻밤 여인숙비가 더 싸게 먹히지 않겠는가.

구로공단 입구에는 허름한 여인숙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여인숙 앞을 기웃거리면서도 얼른 여인숙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훤한 대낮에 젊은 사내가 여인숙을 들락거린다는 것이 왠지 기분이 찜찜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마치 나를 무슨 불륜이라도 저지르려고 다니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을 것만 같았다.

구로공단 일대를 이리저리 헤매던 나는 그날 오후 7시가 가까워서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골목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허름한 여인숙에 슬그머니 들어갔다. 그리고 여인숙 2층 끄트머리에 있는 조그만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 벽지가 붕 뜬 벽에서는 곰팡이 비슷한 내음이 났다.

휴우! 나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 됐다. 이깟 이상한 내음 쯤이야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다. 아니 견뎌내야만 한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이곳 서울에서 이깟 내음조차도 견디지 못한다면 어찌 가만이 있어도 코가 베인다는 이 서울에서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어이! 여기야, 여기!"
"이야! 니는 말씨도 그렇고 얼굴이 허연 걸 본께네 인자 서울 사람 다 됐네."
"얼굴이 허연 게 아니라 맨날 햇볕도 못보고 기름밥에 누렇게 뜨서 그런 거야. 근데 니가 서울까지 어쩐 일이냐?"
"나도 니처럼 아예 서울에서 살라꼬 고마 올라왔뿟다 아이가."


구로공단 전철역에서 만난 고교 동창은 나를 보자마자 몹시 반갑다는 듯 손을 덥썩 잡았다. 그리고 '일단 소주부터 한 잔 한 뒤에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나를 가까운 포장마차로 이끌었다. 반가웠다.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치 나 홀로 무인도에 툭 떨어진 것만 같았던 무서운 외로움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했다.

"진로로 주이소."
"야야~ 니 여기가 지방인 줄 아나. 여기 파는 소주는 모두 진로야."
"아, 참! 그렇지. 진로가 서울소주지."
"근데 직장은?"
"일단 달셋방부터 잡아놓고 천천히 구하지 뭐."
"하여튼 니는 속이 편해서 좋구나. 그래. 서울에서 한번 살아봐라. 서울이 어떤 곳인지. 지방에서 살 때처럼 생각하다가는 아마 큰 코 다칠 걸."


그날, 나는 그 포장마차에서 고교 동창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밤 늦도록 진로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곰팡이 비슷한 내음이 나는 그 외지고 허름한 여인숙으로 돌아와 서울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잠이 살짝 들려고 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남녀의 요상한 신음 소리 때문에 거의 뜬 눈으로 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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