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병렬 회장김진이
"한글학교 지원은 현지국가가 해야"
"주최측이 뉴욕한글학교라고 써놓았기에 내가 화를 내면서 한국학교라고 고쳤어요. 한글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니까. 한국을 교육하는 곳이라고."
8월 10일 제3회 재외동포교육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는 한서대에서 만난 허병렬(78) 회장은 자신의 이름표를 보여주며 대뜸 화부터 냈다. 사소한 실수지만 그만큼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허 회장의 자신감일 것이다.
2003년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했던 허병렬 회장. 뉴욕한국학교 교장으로 4대 재미한인학교 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허 회장은 73년 한인 학교를 세워 30여 년을 동포 2세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해왔다.
그가 이끄는 뉴욕한국학교는 한글학교와는 다르다. 미국 한국 학교의 98% 정도가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독자적인 주말학교다. 허 회장의 설명처럼 수업도 한글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 역사, 연극, 노래, 서예, 무용, 태권도 등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교육한다.
뉴욕한국학교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학부모 교육.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학부모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학부모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속에 성인평생학교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3세부터 18세까지의 유치, 청소년 반과 학부모 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한다.
"요즘엔 미국의 한인들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이 많이 줄고 있어요. 미국 공교육은 하이스쿨까지 무료인데 여기는 수업료가 있으니까. 결국 부모들이 한국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미국 전역의 1천여 한글학교들이 모두 겪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글학교에 다니는 2, 3세들은 전체 동포 자녀들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결국 한글 교육이나 한국 문화 교육에 대한 관심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결론이다.
어려운 현지 한글학교에 대한 고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허 회장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한글학교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거주국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세들과 달리 2, 3세들에게는 미국이 고국 같죠. 그걸 부정하자고 가르치기보다는 건강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더 현실적이죠. 현지의 건강한 시민을 기르는 일에 현지 국가가 지원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허 회장은 여전히 미국 이민 와서 "거기 검둥이 없어요?"라고 물어보는 한국인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을 덧붙였다.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너무 소홀하다는 것이다.
10일 환영만찬에서 건배 제의를 하게 된 허 회장은 "서산은 철새들이 찾는 도래지인데 우리 한글학교 교사들이 철새가 돼 방문하게 돼 기쁘다"면서 "동포들은 세계 각국에서 고국의 위상을 알리고 고국은 언제든 찾아와 쉴 수 있는 도래지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