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한국어 전도사들을 만나다

재외동포교육 국제 학술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 2004.08.18 13:07수정 2004.08.18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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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이 주최한 재외동포 교육자들의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가 8월 10일부터 13일까지 충남 서산 한서대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전세계 20여 개국 한글학교 교사, 한국학 교수 등 250여 명과 국내외 한국어, 한국학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이 웃으며 강연을 듣고 있다.
참가자들이 웃으며 강연을 듣고 있다.김진이
이 자리에는 이상오 재미한인교육진흥재단 이사장(미국), 구말모 동경 신주쿠 한국어교실 교장(일본), 황유복 중앙민족대학교수(중국), 이발렌친 러시아한국어교육자협의회 회장(러시아), 강여규 재독한글학교교장협의회 회장(독일) 도옥미 브라질한글학교연합회 회장(브라질) 등이 함께 했다.

'재외동포교육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정립'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재외동포 교육문제 전반에 대해 총체적 접근을 모색하는 국내 유일의 국제학술대회로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다.

정범모 한림대 석좌교수의 '한민족의 미래를 여는 재외동포교육'이라는 주제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가치의 창출'(인제대 강신표 교수), '다원화시대의 한민족의 정체성'(서울대 한상진 교수)을 주제로 강연이 이어졌다.

'재외동포교육과 역사의식'(명지대 이인호 석좌교수), '한국문화의 다양성과 한국영화의 힘'(임권택 감독), '문학작품에 나타난 한국인의 정신'(소설가 한수산 씨) 등 다양한 특강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강만길의 통일이야기'에서는 재미동포들과 재일동포들이 각기 자신의 처지에서 팽팽한 의견을 제시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허병렬 회장
허병렬 회장김진이
"한글학교 지원은 현지국가가 해야"

"주최측이 뉴욕한글학교라고 써놓았기에 내가 화를 내면서 한국학교라고 고쳤어요. 한글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니까. 한국을 교육하는 곳이라고."


8월 10일 제3회 재외동포교육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는 한서대에서 만난 허병렬(78) 회장은 자신의 이름표를 보여주며 대뜸 화부터 냈다. 사소한 실수지만 그만큼 한국의 정신과 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평생을 바쳐온 허 회장의 자신감일 것이다.

2003년 KBS 해외동포상을 수상했던 허병렬 회장. 뉴욕한국학교 교장으로 4대 재미한인학교 협의회 회장을 맡았던 허 회장은 73년 한인 학교를 세워 30여 년을 동포 2세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해왔다.

그가 이끄는 뉴욕한국학교는 한글학교와는 다르다. 미국 한국 학교의 98% 정도가 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독자적인 주말학교다. 허 회장의 설명처럼 수업도 한글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 역사, 연극, 노래, 서예, 무용, 태권도 등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교육한다.

뉴욕한국학교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학부모 교육.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학부모들을 위해 시작했지만 학부모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속에 성인평생학교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3세부터 18세까지의 유치, 청소년 반과 학부모 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한다.

"요즘엔 미국의 한인들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이 많이 줄고 있어요. 미국 공교육은 하이스쿨까지 무료인데 여기는 수업료가 있으니까. 결국 부모들이 한국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미국 전역의 1천여 한글학교들이 모두 겪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글학교에 다니는 2, 3세들은 전체 동포 자녀들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결국 한글 교육이나 한국 문화 교육에 대한 관심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결론이다.

어려운 현지 한글학교에 대한 고국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허 회장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했다.

"한글학교들이 자리를 잡으려면 거주국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세들과 달리 2, 3세들에게는 미국이 고국 같죠. 그걸 부정하자고 가르치기보다는 건강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더 현실적이죠. 현지의 건강한 시민을 기르는 일에 현지 국가가 지원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허 회장은 여전히 미국 이민 와서 "거기 검둥이 없어요?"라고 물어보는 한국인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을 덧붙였다. 세계 속의 한국인으로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너무 소홀하다는 것이다.

10일 환영만찬에서 건배 제의를 하게 된 허 회장은 "서산은 철새들이 찾는 도래지인데 우리 한글학교 교사들이 철새가 돼 방문하게 돼 기쁘다"면서 "동포들은 세계 각국에서 고국의 위상을 알리고 고국은 언제든 찾아와 쉴 수 있는 도래지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광호 회장
이광호 회장김진이
"뉴저지 주는 한글학교 학점 인증"

"미국 교민 자녀들 중 10% 정도만이 한글학교에 다닙니다. 당장 한국말이 필요하지 않은 거죠. 다들 축구하고 놀러가는 주말에 한글학교 가라고 하면 아이들도 싫어하죠. 그러다 나중에 보면 자기 큰아버지 보고 '밥 먹었냐'고 해서 웃음거리 되지 않습니까?"

재미한인학교 협의회(NAKS) 이광호(58) 회장은 미국 한글학교의 현실을 한숨 섞어 설명했다. 수적으로는 적지 않지만 부모들의 관심 부족으로 대부분 한글학교와 한글교육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

전체 미국의 한글학교 중 90%는 교회가 운영하고 있다. 교회의 한글학교는 선교 목적으로 차량운행도 하지만 학생수 부족으로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이 회장은 열악한 한글학교의 현실을 뚫고 나갈 대안으로 작은 학교간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합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일부 주에서는 한글학교 수업을 고등학교 학점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작년 뉴저지 주에서는 소수민족 언어정책을 발표해 소정의 과정을 거치면 정식 학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했어요. 고국의 언어와 문화도 배우고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한글학교에는 희망이 될 수 있죠."

학점 인정을 위해서는 해당 한글학교가 비영리단체(IRS) 번호를 받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도 한글학교들이 제대로 된 조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회장은 주장한다.

현재 미국에는 50주에 1천여 한글학교가 있다. 이들을 아우르는 재미한인학교협의회(NAKS)는 1981년 워싱턴 DC에서 창립됐다. 처음 동부, 워싱턴 북부와 뉴욕 교육자들이 모여 모임을 시작했고 지금은 공식 한국 학교 연합체로 미 연방정부와 매릴랜드 주에 비영리 교육단체로 등록 인가돼 있다.

이광호 회장은 96년부터 99년까지 동북부 회장과 NAKS 부회장을 맡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SATⅡ과정으로 한국어가 채택됐다. 이 회장은 NAKS 차원에서 모의시험을 치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우리보다 먼저 SAT 과정으로 채택됐던 일본, 중국어 시험 사례를 연구해 문제를 만들었다. 이 내용을 미국 신문들까지 대서특필하고 4천여 명이 모의시험에 응시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매년 모든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사연수도 협의회의 자랑거리다. 작년 하와이 연수에는 500여 교사들이 참석했다. 이 회장은 한글과 한글학교의 위상이 결국 한국의 위상을 나타낸다고 강조했다.

이발렌친 교수
이발렌친 교수김진이
"고려인 젊은 세대에 고국말 인기"

"세계 각처의 학술대회에 많이 참석했지만 이번 학술대회가 가장 재미있다. 어제 우리 가락을 배우는 시간에 정말 몇 십년 동안 부르지 않던 노래를 불러봤다. 한글 문법 강좌도 새삼 재미있고. 내가 나이가 들어 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또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돼 기쁘다."

배움의 기쁨을 말하는 이발렌친(75·고리끼문학대학) 교수의 표정이 환하다. 고려인 2세로 블라디보스톡이 고향인 이 교수는 37년 강제이주 대상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갔다. 당시 레닌그라드 대학(현 상페테르부르크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에 배치됐다.

구 소련시절 대학을 마친 사람들은 국가가 근무지를 정해주었다. 출판사, 세계문화연구원 상급 연구사로 35년 간을 일했다. 당시 한국어교육자협의회를 만들었고 모스크바 외교관 양성소에서 한글을 가르쳤다.

대부분 고려인들이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이발렌친 교수는 억양만 빼고는 표준말에 가까운 우리말을 구사했다.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신념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내가 처음 한국문학 전공한다고 했을 때 다 이상하게 생각했지. 35년 지난 지금 생각하면 참 잘했다 싶어."

2000년 한국정부로부터 한글발전유공 포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교수는 지금 고려인들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2, 3세들은 물론이고 고려인 지도자들도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한국말 교육을 위한 투자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고려인 연합회와 고려연방문화자치회라고 고려인들의 큰 조직이 두 개 있는데 그 지도자들도 전혀 한국말을 못해요. 내가 조바실리나 여러 대표들에게 예전부터 한국말교육을 위한 투자를 하라고 했는데 자기들도 배우지 않고 지원도 하지 않아."

러시아에는 현재 60개 지역에 한글학교가 있다. 200여 교사들이 한글을 가르치는데 교사들이 부족하고 그나마 현재 교사들의 한국어 수준도 별로 높지 않다. 이발렌친 교수는 한국 정부가 교사들을 파견해주고 고려인들을 위한 교재 제작을 지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15년 전 이발렌친 교수가 만들어 이끌고 있는 한국어교육자협의회는 이들 60개 지역 한글학교 교사들을 위한 연수를 1년에 한번 한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 교수는 최근 한국어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10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지. 젊은 애들이 고국말 배우려 하고. 이곳에도 한국기업들이 많이 들어와서 한국말 배우면 취업도 쉬워진 측면도 있고. 자기 말을 모르면서 어떻게 고국을 대표할 수 있나? 앞으로는 고려인들도 한국말로 고국을 설명할 수 있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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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대안언론이 희망이라고 생각함. 엄흑한 시기, 나로부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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