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무성의가 소주대란 부르고 있다"

[인터뷰] 준법투쟁 중인 유정환 진로 노조위원장

등록 2004.08.18 18:13수정 2004.08.1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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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준법투쟁중인 진로노동조합 유정환 위원장.

준법투쟁중인 진로노동조합 유정환 위원장. ⓒ 권우성

'소주대란'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몇몇 대형할인점들은 공급부족을 호소하며 진로 소주 품귀현상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사재기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흘러나온다. 일부는 '소주대란'이 닥칠 경우 소주값 폭등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갈 수도 있다는 진단을 내놓기도 한다.

18일 오전 경기도 이천, '참진이슬로'(이하 참이슬) 현지공장에서 만난 유정환 진로 노동조합 위원장은 대뜸 갑갑한 감정을 토로하며 사쪽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소주대란'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압도적인 파업 찬성여론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자제했지만, 사쪽은 좀처럼 무성의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유 위원장은 "14차에 이르는 그간의 교섭과정 동안 사쪽은 한 차례도 협상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분노했다. 심지어 8월 5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조차도 "법원의 오더를 받아야 한다"며 수용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통상 중노위의 조정안을 노조 쪽이 거부해 온 타 사업장의 관행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97년 부도를 냈던 진로그룹은 현재 법정관리 상태에 있다. 관리는 서울중앙지법 파산 3부가 담당하고 있다. 박유광 현 사장은 서울중앙지법이 파견한 관리자인 셈이다. 이러한 '어정쩡한' 위상 탓에 박 사장이 교섭대표로 나오더라도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어 협상이 겉돌고 있다고 유 위원장은 주장했다.

유 위원장의 비난의 화살은 곧바로 진로의 법정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파산 3부를 향했다. 그는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법원이 적자기업과 똑같은 경영방식과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며 법원의 획일적 관리방침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결정권 없다"는 사쪽 대표, "권한 없다"는 법원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을 거부한 쪽도 사실상 서울중앙지법이라고 유 위원장은 판단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임단협은) 법원인가사항이므로 사쪽은 결정권이 없어서 수용을 못하는 것"이라며 "법원은 우리의 요구에 대해 '교섭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법원의 무성의한 대응방식을 비판했다. "법원의 무성의한 태도가 소주대란을 부르고 있다"고도 했다.


유 위원장은 노조의 이러한 정상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쪽이나 법원쪽이 성의있는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투쟁강도를 점차 높여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오전 6시부터 22시까지 16시간 2교대로 근무하는 준법투쟁 방식을 벗어나 본격적인 부분파업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럴 경우 언론의 우려대로 소주대란은 불가피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도권 '소주대란'이다. 평소 이천공장에서는 하루 평균 20만 박스(약 400만명) 가량을 생산해 왔는데, 준법투쟁으로 하루 생산량이 약 5만 박스(100만병) 줄었다. 생산량의 97%는 수도권으로 공급되고 있다. 만약 노조가 부분파업 돌입을 선언할 경우 하루 평균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떨어질 수 있어 수도권 '소주대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유 위원장은 "조만간 좋은 성과가 나와 타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하지만 이처럼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쪽이 협상에 계속 불성실하게 나온다면 투쟁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정환 진로 노동조합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회사쪽이 거부한 중노위 중재안 내용은?

중앙노동위원회가 8월 5일 제시한 조정안은 임금 7% 인상과 성과급 150% 지급을 뼈대로 하고 있다. 임금 7% 인상안에는 호봉 및 승진에 따른 인상분이 포함돼 있다.

이와 함께 참이슬 등 주력상품의 판매 호조로 영업이익이 2000억원을 넘어설 경우, 초과분의 50%를 인센티브로 지급하기로 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지급시기는 2005년 4월 급여정기 지급일로 한다고 못박고 있다. 주 5일제 도입에 따른 단체협상 관련 사항은 노사가 합의된 부분을 따른다고 명시돼 있으며 기타 사항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 진로 노동조합은 16일부터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쟁의행위에 돌입하게 된 배경이 뭔가.
"현재 우리가 제시하고 있는 교섭안은 사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안이고 최소한의 안이다. 그럼에도 사쪽은 법원의 핑계를 대고, 법원은 관리인의 핑계를 대며 교섭에 불성실하게 나서고 있다. 7월 23일 14차 교섭이 진행될 때까지 양쪽이 합의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노조 대의원들과 상황을 논의한 결과 쟁의조정 신청을 하게 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조정을 받아들였고, 8월 5일 조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노조는 조정안을 인정한 반면, 사쪽은 수용을 거부했다. 우리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안이었지만 법정관리라는 특수성 등 회사 전반적인 문제를 생각해 타결되길 바랐는데…. 사쪽이 거부한 것이다."

-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안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지난 4월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인가 받은 정리계획안에 나와있는 임금 인상안은 7%이다. 이는 호봉 및 승진에 따른 인상분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통상임금으로 따지면 5.9% 인상 수준이다. 그 외 체력단련비 연간 5만원 인상, 귀향비 설날과 추석 두차례씩 총 20만원 지급 등이 포함돼 있었다. 상여금은 150% 인상하고, 영업이익이 2000억원을 넘어서면 더 지급하기로 하는 안이었다."

- 현재 쟁점 현안은 뭔가.
"임금삭감 없는 주 40시간 근무가 아닌가 한다. 월차를 폐지하되 통상임금은 보전해 줄 것을 요구했고, 중노위의 조정안에도 나와있다. 그리고 주 40시간이 도입되더라도 생산은 격주로 운영하겠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쪽은 중노위 안을 거부했다.

97년 부도 이후 회사를 살리기 위해 회사만 믿고 참아온 것이 너무 많았다. 97년부터 99년까지 3년 동안 임금을 동결했다. 복리후생 예산은 50% 삭감됐다. 작년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가 임금이 동결되기도 했다."

"14차 교섭 과정 동안 사쪽 대표 협상안 내놓은 것 하나도 없다" 성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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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 사쪽이 수용하지 않는 이유를 무엇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나.
"사쪽은 결정권이 없으니 수용을 못하는 것이다. 법원인가 사항이다. 사쪽은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 법원의 '오더'를 받아야 한다. 현재 진로 법정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서울중앙지법 파산 3부이다. 법원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우리의 요구에 대해 '교섭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 14차에 이르는 교섭 과정에서 회사쪽은 어떤 협상안을 내놓았나.
"내놓은 안이 없다. 그러니 더 답답하다. 이렇게 아무런 안도 내놓지 않고 있는데 노조가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나."

- 사쪽 보다는 법원이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법원이 중노위의 조정안까지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고 있나.
"복합적인 것 같다. 법정관리 기업에 이례적으로 주 5일제를 도입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다. 법원과 우리의 시각이 정반대라는 점이 문제다. 법원은 필요한 영업비용이나 직·간접적 투자비용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쓸 곳에 써야 생산이 활성화되고 필요한 곳에 투자를 해야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가지 않나. 그래야 영업이익이 높아지고 법정관리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적자기업과 똑같은 경영방식과 기준을 우리에게 들이대고 있다. 우리가 적자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올해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바라보는 우량회사이다. 이럴 경우 직원들은 '뭐하러 흑자를 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식의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면서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지난 12∼13일 파업 찬반 투표에서 찬성의견이 압도적이었음에도 파업에 돌입하지 않고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다. 중노위의 조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조정안이 나올 때까지 파업찬반 투표공고도 하지 않았다. 또 곧바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사쪽이나 법원이 이용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일부 언론, 상여급 때문에 회사쪽과 싸우는 것처럼 보도"

- 문제는 여론이다. 다른 사업장처럼 파업에 돌입하게 되면, 사쪽이 귀족노조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여론전을 펼칠 수도 있지 않나. 예를 들면 법정관리 기업 노조가 임금을 인상시키려 한다는 식으로….
"일부 그런 사실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요구의 핵심은 주 5일이다.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성과급은 목표 이익을 창출했을 때 받을 수 있다. 배분의 문제이다.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상여급 때문에 회사쪽과 싸우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법정관리 회사가 무슨 성과급을 달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보도한다. 이런 보도로 인해 우리의 싸움이 어떻게 국민에 비쳐질지…. 솔직히 언론도 돈과 관련돼 있지 않나."

- 노조의 파업이 계속될 경우 소주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수도권 공급물량의 97∼98%를 이천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만약 공급이 중단된다면 지방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으로 공급될 것이다. 소주대란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사쪽과 법원의 태도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 준법투쟁은 어떤 형식으로 진행하나. 그리고 향후 계획은.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만 근무를 한다.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16시간 동안 공장이 가동된다. 2교대로 움직인다. 예전까지 우리들은 오전 5시쯤 출근해 1시간 가량 설비를 워밍업(Warming-up)시킨 뒤 오전 6시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지금은 6시에 출근해 6시부터 워밍업에 들어간다.

준법투쟁은 우리 제품의 공급을 중단시켜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사쪽이 협상테이블에 나올 시간을 주겠다는 의미로 기획됐다. 조만간 좋은 성과가 나와 타협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이처럼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쪽이 협상에 계속 불성실하게 나온다면 투쟁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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