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103

폭동

등록 2004.08.20 18:03수정 2004.08.2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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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왔소."

백위길이 포교가 된지 어언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애향이는 운 좋게도 기적(妓籍: 기생의 신분을 공적으로 등록해 놓은 등록 대장)에서 제외되었고 혜천스님은 한양에 함부로 머무를 수 없는 중의 신분이라 끔적이와 함께 동자승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강석배는 별감을 그만 두고 지방으로 낙향했으며 포장 박춘호는 포교를 그만 둔 채 오월이와 살며 시전에서 포목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엇이오?"

백위길의 애향이에게 웃으며 말없이 쥐어 준 것은 비녀였다.

"오는 길에 당신 생각이 나서 하나 샀지."

"에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것을......"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네. 드디어 내가 포장(捕將)이 되었다네."


"예?"

애향이는 놀라워하며 크게 기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닭이라도 한 마리 꾸어와야겠습니다. 경사스러운 날에 맹숭맹숭하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허허...... 아닐세! 먼저 포장이 좋지 않게 그만 둔 판에 과하게 기뻐하면 되겠나."

백위길은 일전의 일을 생각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별감과 궁중의 하속들이 포도청에 난입하고 백위길의 집을 부순 일이 있은 후부터는 이상하리만치 사소한 일로 포교와 포졸들이 구타당하는 일이 잦았다. 포교들의 입장에서 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이들이 하나같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는 점이었다. 박춘호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입을 열지 않았으며 포장에서 물러 난 후에는 아예 포도청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고 포도청의 사기는 떨어져만 갔다. 심지어는 시전에서조차 상인들이 포교들을 따돌리는 일이 늘어만 갔다.

"이게 모두 옴투성이 땡추 박충준 그놈의 농간이니라."

이순보는 백위길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포도대장인 김영이 부임해와 새로이 포도청의 기강을 세우겠노라고 호언장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다 무엇인가? 어찌 궁중의 하인들이 포도청의 포교들에게 횡포를 부린단 말인가?"

포도청의 기록을 훑어본 김영의 말에 새로 들어온 종사관들은 아무 말도 못했고 대신 포장 이순보가 분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이 국법을 업수이 여기고 포교들에게 마구잡이로 대하나 궁중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김영은 크게 화를 내며 포교에게 횡포를 부린 궁중의 하속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모조리 잡아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포교들은 신이 나서 그간 앙금이 있었던 별감과 하속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포도청으로 끌고 왔다.

"네 놈들이 궁에서 일한다는 위세를 빌어 국법을 문란하게 한 놈들이냐?"

게 중에 씩씩한 별감 하나가 나서 포도대장 김영에게 따지듯 소리쳤다.

"궁의 사람은 함부로 포도청에서 잡는 게 아니거늘 이게 무슨 짓이오?"

김영은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저런 발칙한 놈! 궁에서 일하는 하인 놈이 감히 포도대장에게 시시비비를 따지자는 것이냐! 저 놈을 굵은 매로 매우 쳐라!"

당돌하게 대든 별감은 심하게 매를 맞고 실신해 버렸고 다른 별감과 하속들도 매를 맞고 옥에 갇혀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궁중에 있는 아속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누가 어떤 수를 썼는지 형조와 사헌부에서 이를 감지하고서는 어전회의에 궁중의 하속들을 근거 없이 잡아다 매질한다는 이유로 그들은 모두 풀어주고 포도대장을 파직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포교들로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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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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