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기가' 방송은 과연 국보법 위반인가

원곡은 독일 민요... 고의성 여부가 법 적용 여부 핵심

등록 2004.08.20 21:32수정 2004.08.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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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미디어포커스>의 '적기가' 방송 파문을 두고 다수 신문이 국가보안법 적용까지 거론하고 있으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검·경찰과 법조계 등의 판단이다.

미디어포커스는 지난 14일 북한 혁명가로 통칭되는 적기가를 정부의 이라크파병 보도통제를 풍자한 시사플래시 배경음악으로 40초간 방영했다.

KBS는 지난 16일 공개사과와 함께 책임자 문책을 단행했고, 시사플래시 음악담당 프리랜서의 단순실수라고 조사결과를 밝혔다. 제작진도 군 행진곡으로만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실미도 OST'라는 제목의 이번 음악파일은 인터넷에서 쉽게 내려받을 수 있다.

조·중·동 등 "적기가 방송 제정신인가" 성토

그러나 대다수 신문들이 KBS의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쟁점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이들 신문은 방송위원회의 중징계 불가피론까지 주장한데 이어 국가보안법 혐의를 강하게 주장했다.

<중앙일보>와 <문화일보>가 18일 '적기가 방송 KBS 제정신인가'와 '적기가의 KBS, 어느 나라 방송인가'를 사설로 다뤘고, 이튿날 '적기가가 방영되는 KBS'(국민일보), '공영방송에 울려 퍼진 적기가'(동아일보), '공영방송 KBS에 울려퍼진 적기가'(조선일보), 'KBS 적기가 방송의 책임'(세계일보) 등의 사설이 잇따라 게재됐다.

한나라당도 18일 정쟁 시비에 합류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단순사고로 미봉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며 "언론특위 등에서 따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음악계 일각에서는 적기가의 원조를 거론하며 색깔론 시비 대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독일민요 '소나무'(탄넨바움·Der Tannenbaum)에서 바탕을 둔 적기가는 19세기 말 영국으로 건너가 노동가 '레드 플래그'(The Red Flag)로 개사됐다가 다시 일본 노동가로 번안됐으며, 1930년대 한반도에 들어와 북한과 만주 일대에서 널리 불리게 됐다는 해석이다.


지난 97년 '항일혁명가에 침투한 일본노래'라는 논문을 발표했던 민경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적기가는 일본이 1921년 민중혁명가로 만든 번안곡 '아까하타노 우타(赤旗の歌)'의 선율과 가사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민 교수는 "하지만 북한에서는 곡과 가사를 모두 자신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 교수는 올초 영화 실미도의 적기가 사용에 대해 친북·좌경 논란이 제기될 때 이같은 배경을 거듭 밝히면서 사회 일각의 강경대응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민 교수는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공산주의자들에 애창됐던 적기가가 해방 후 좌익계열 노래로, 한국전쟁 때 인민군 군가로 불렸다"며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반응은 남다를지 모르나 남북화합 시대를 맞아 어떻게 수용할지는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검·경찰 "조사해봐야 안다"... 방송위원회 "법정제재 전제하지 않았다"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는 19일 보도교양심의위원회에서 미디어포커스에 대한 심의규정 위반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26일 KBS 관계자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하지만 제재수위 등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방송위원회 측은 "일부 보도로 사건을 접했기 때문에 경위 등을 확인하기 위해 관계자 의견을 듣기로 했다"면서 "법정제재를 전제로 의견진술을 청취하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방송위원회 관계자는 20일 <오마이뉴스>의 통화에서 "일부 신문이 '중징계 불가피' 등으로 예단해 기사를 썼는데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경찰과 검찰의 반응도 "조사를 해봐야 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국가보안법 위반여부를 판단하는 '고의성'을 규명하기 어려운 상태라서 사법처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영등포경찰서 담당자는 "음악담당 프리랜서를 불러 조사한 것은 맞지만, 적기가인 줄 모르고 썼다는 KBS측 입장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경찰의 조사결과는 19일 서울 남부지청으로 이첩됐다.

대검찰청 공안과 역시 "조사해본 뒤 판단할 문제"라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검찰이 판례상 인정된 이적표현물을 모아놓은 사례에 적기가는 포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법조·시민단체 "고의성 없으므로 죄성립 안된다"

송소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는 "이번 사건은 '북한 군가=이적표현물'이라는 도식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미디어포커스 제작진이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가 법적용의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송두율 교수 사건 변론을 맡았던 송호창(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담당자가 적기가인지 모르고 썼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의 경우 반국가단체 찬양·고무나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등의 혐의가 성립되려면 주관적인 목적을 가지고 했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미디어포커스가 사용한 배경음악 자체가 독일민요 원음이면 아예 국가보안법 대상도 되지 않는다"며 "설령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한다고 한다면 적기가 제창장면을 넣은 영화 실미도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그러나 실미도도 찬양·고무 목적 없이 영화창작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죄성립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미도 제작사인 씨네마서비스 측은 강우석 감독에 대한 보수단체의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고발 건과 관련해 "당시 실미도 대원들이 북한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훈련받는 과정에서 적기가를 불렀다는 자체는 고증 결과에 따라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해당 장면을 넣었다"며 "북한을 찬양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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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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