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 떳떳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MBC노조, 자사 '파병 비보도' 비판 "역사 기록 책임마저 방기"

등록 2004.08.23 14:06수정 2004.08.2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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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8월 3일자.
MBC <뉴스데스크> 8월 3일자.MBC 화면

"아무리 양보해도 '3일 아침에 우리 부대가 출국했다'는 사실은 우리 보도에서 적시됐어야 한다. 역사의 기록자로서 최소한 책임을 우리는 방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위원장 최승호)가 이달초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에 침묵한 보도자제 사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있다.

노조는 23일자 노보에 이번 파병보도를 점검한 민실위원회 보고서를 실어 "논의부족과 안일한 판단으로 중차대한 사안을 소홀하게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보도자제 실익논란부터 국방부 요청을 수락하는 과정, 이라크 전반에 대한 보도태도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노조는 이같은 과정을 조목조목 되짚은 뒤 ▲실효성 없는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은 '국내용'이었으며 ▲파병 논란을 피하기 위해 부적절한 요청을 했고 ▲MBC 등 주요 언론은 파병반대 여론확산을 꺼려 이를 수락했다고 진단했다.

노조, 노보 통해 자사 보도 조목조목 비판

노조는 먼저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을 수락한 MBC 결정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렸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즉 보도자제가 과연 부대원 안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의문이다. 부대원 안전에 도움이 되려면 모든 매체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언론환경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온라인매체 등 일부 언론은 출병 사실을 적시했고 외신 통제는 더욱 불가능했다.

국방부 협조 요청도 서방외신에만 전달됐을 뿐 아랍권 언론과는 접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 아랍언론은 되레 우리 정부가 보도통제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송고, 국제여론 흐름에서 불리한 처지에 내몰릴 가능성만 커졌다고 노조는 덧붙였다. 노조는 이를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데 '눈가리고 아웅'하는 현장에 주저없이 들어온 셈"으로 비유했다.


노조는 또 "이라크 도착 소식도 아니고 우리 부대가 출발했다는 보도가 부대원 안전에 위협이 될만큼 중대한 정보노출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으로 갔는지, 앞으로 이동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보도하는 것은 자제해야겠지만, '떠났다는 사실 자체가 왜 문제가 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파병방침 자체부터 보도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노조는 따졌다.

노조는 MBC 뉴스데스크에서 파병반대 시위 도중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이 부상당한 기사가 누락된 점을 들어 "파병반대 여론확산을 꺼려 보도자제 요청을 수락한 혐의가 더욱 짙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8월 4일자 기사. 사진기사 설명에 국방부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히고 있다.
<동아일보>의 8월 4일자 기사. 사진기사 설명에 국방부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히고 있다.동아일보 PDF
"충분한 논의를 거쳤는가"

노조는 두번째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비보도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한 질문을 추가로 던졌다. 국방부 장관이 언론사 사장 앞으로 보도자제 당부 서신을 보낸 것은 7월 12일. 자이툰 부대가 8월 3일 출국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것은 7월 말경. 따라서 MBC가 내부 논의를 거칠 시간과 정보는 충분했다는 것. 그러나 "MBC는 자신의 몫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노조는 자책했다.

노조는 "'파병반대 시위는 보도하되 출병사실은 직시하지 않는다'는 MBC 방침이 구성원들에게 인지된 때는 출병식이 끝난 3일 오후였다"며 "그전까지 파병보도에 관한 분명한 입장이 공유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노조는 "중차대한 결정을 놓고 편집회의는 논의를 기피해왔으며 판단을 미뤄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이어 '부대원 안전을 정말 걱정하고 있는가'라며 보도통제 명분의 허구도 비판했다. 부대원 안전을 진정 고려했다면 파병지역인 아르빌 상태는 어떤지, 한국군 파병지역에 대한 이라크인 반응은 어떤지, 파병을 둘러싼 국제여론은 어떤지 등부터 성의있게 보도했어야 한다는 게 노조 지적이다.

노조는 "우리는 솔직히 이라크 상황에 대해 계속 무관심했다"고 평가를 내렸다. 파병국으로서 최소한 관심도 없는 듯한 모습이라고 질책했다. 이라크내 주요 소식을 전하는 외신기사를 MBC가 모두 빼뜨렸던 점을 지적한 노조는 "이러다가 갑자기 부대원 안전을 위해 보도통제에 응하겠다고 나서면 의문이 안 생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조는 군사정권 시절 보도통제를 언급한 뒤 "당시에는 물리적인 강압으로 어이없는 왜곡이 펼쳐졌지만, 지금은 깊이있는 논의부족과 안일한 판단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달라졌지만 정작 우리는 얼마나 바뀌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방송3사 국방부 보도자제 요청 수용...'국민의 알권리' 실종
일간지 대부분도 국방부 요청 받아들여

▲ <조선일보> 4일자 기사.
ⓒ조선일보 PDF
KBS, MBC, SBS 등 방송3사는 당시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을 모두 수용했다. 국방부는 지난 7월 12일과 8월 2일, 국방부 장관과 공보관 명의로 두차례에 걸쳐 보도자제 당부 서한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국방부는 7일 '파병부대 안전한 도착을 위해 환송행사 비공개'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라크 추가 파병과 관련해 부대 전개가 종료될 때까지 장병 안전을 고려하여 부대의 전개시기, 이동경로, 부대규모 등에 대한 보도 자제를 당부 드린다"고 거듭 요청했다.

방송사들은 '이유 있는 엠바고'라는 입장으로 이를 전폭 수용했다. 이에 따라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로 파병된 3일 방송3사 메인 뉴스에는 관련보도가 전혀 없었고, 일부 방송은 파병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보도마저 자제하는 신중함까지 보였다.

MBC는 8월 3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국방부 요청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SBS는 엠바고에 대한 언급없이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위해 보도를 자제하기로 했다"고 시청자에게 알렸다. KBS는 아무 설명 없이 당일 파병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MBC, SBS는 시민단체들의 성남 공항 시위와 광화문 촛불시위를 주요 기사로 처리했다.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대다수 일간지가 국방부 요청을 받아들여 3일과 파병 다음날인 4일에도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4일 '이라크 추가파병 저지시위' 사진기사를 유일한 관련기사로 싣고 "국방부의 요청을 존중, 자이툰 부대가 한국을 출발해 현지에 안착할 수 있을 때까지 부대이동 상황에 대해선 국방부가 공개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보도하기로 했다"라는 요지의 사고를 냈다.

<동아일보>도 4일 '공항서 자이툰 부대 파병반대시위' 사진기사를 싣고 "자이툰 부대의 안전을 위해 부대가 이라크 현지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의 상황을 국방부가 공개하는 부분만 보도하기로 했다"며 "국방부의 협조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역시 3일 사고를 통해 "자이툰 부대원들이 이라크 작전 지역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부대 전개 완료 때까지 이동 시기, 경로, 규모 등을 일절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며 "국방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양해를 바란다"고 알렸다.

이밖에 <국민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등도 4일 전후로 비슷한 내용의 사고를 내 국방부의 보도자제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민중의소리>, CBS <노컷뉴스> 등 인터넷매체들은 국방부 보도자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이툰 부대의 파병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러나 이들 언론도 자이툰 부대의 이동경로 등 상세한 보도는 가급적 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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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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