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MBC
문학관에 대해 박경리씨는 “문학이란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생존하는 이상의 진실은 없다”고 말했다. 박씨의 이 말은 문학은 곧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학과 인생은 갈라놓을 수 없다. 인생이 문학이다. 합리주의도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 할아버지 할머니시대에는 합리주의가 근검절약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합리주의라는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같이 쓰지만, 그 개념은 정반대다.”
노벨문학상 추천과 관련해 박경리씨는 "작가 입장에서 보면 모국어로 글을 써야 하는데, 작품이 영어나 불어로 번역되어 읽혀지는 정도를 보고 노벨문학상을 거론하고 있으니 작가로서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다.
소설 <토지>에서 동학혁명을 강조한 것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혁명을 완성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동학혁명은 이념적으로 완성된 형태였다. 그런 차원에서 동학혁명은 세계적으로 기록할 만하다.”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해서 썼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대해, 박씨는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 소설은 사실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지만, 오래전부터 통영에서 내려오는 전설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박씨는 “이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당시 ‘하동집’의 도끼살해사건이 사람들 사이에 사실인 것처럼 인식되었다”면서 “본의 아니게 관련된 사람들한테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경리씨는 이번 특별대담에서 대중매체에 노출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작가가 대중에 노출되는 것이 세속적인 것이다. 작가가 진정 자유를 원할 때는 스스로가 차단해야 한다. 25년간 <토지> 쓰는 동안 내 스스로 차단하는 것이 글쓰는 일 이상으로 힘들었다."
박경리씨는 환경문제와 농업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서는 강하게 정부정책을 비판했다. 박씨는 "환경과 농업문제를 보면 한국은 정책 부재이며, 야만국 수준"이라 말했다.
팔순 바라보는 나이, 요즘 한 쪽 눈 못쓸 정도
박경리씨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요즘 한쪽 눈을 못쓸 정도로 시력도 좋지 않다. 토지문학관 옆에 있는 텃밭을 가꾸는 재미에 살고 있다. 올해 초 한 신문에 <나비야 청산가자>를 연재하다가 혈압이 높아 중단하기도 했다. 박씨의 딸인 김영주(시인 김지하씨 부인)씨가 서울과 원주를 오고가면서 어머니는 돌보고 있다.
이번 특별대담을 기획했던 마산MBC 김일태 피디는 “박경리 선생은 25년 동안 원주에 살면서도 시내 나들이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창작 활동에만 전념해 오셨다”면서 “처음 섭외에 들어갔을 때도 자꾸만 사양하셨는데, 자신을 이렇게 키워준 고향에 대해 빚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방송에 응하셨다”고 말했다.
박경리 특별대담 1부 ‘통영, 박경리 문학의 은근한 지렛대’와 2부 ‘지성의 빛, 인간 박경리’는 3일 저녁 9시55분부터 140분 동안 방영되고, 3부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4일 밤 9시45분부터 70분간 방영된다. 김일태 피디는 “마산MBC 창사특집으로 이번에 경남권에 우선 방영하고, 전국 방송 여부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리씨는 1926년 경남 통영 출생으로,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1950년 황해도 연안여중 교사를 지냈다. 195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1969년 장편 <토지>를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1994년 <토지> 5부를 완결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지냈고, 1999년부터 연세대 석좌교수로 있으며,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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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박경리 "역사는 공평하게 기록남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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