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14회

등록 2004.09.03 07:24수정 2004.09.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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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만화는 상인이다. 하지만 그도 어릴 적부터 무공을 익혔다. 사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도 아래뱃살 하나 없이 탄탄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기도 했다. 그도 저것에 대해 알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죽음의 대명사로 꼽히던 물건이다.

대개가 백련교도나 무림인들에게 떨어지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상인들이나 일반인이나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는 퇴직한 관료에게도 떨어진 적이 있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였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가진 절정고수든, 천하를 뒤엎을 재력가이든, 명성이 높았던 학자이던 간에 초혼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초혼령을 받은 자들의 결과는 단 두 가지였다. 초혼령에 대항한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몰살했다. 일가족까지, 심지어는 같이 있었던 자들도 모두 몰살했다.

그 반대로 초혼령에 따른 자들은 실종되어 그 후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초혼령은 사망선고(死亡宣告)였고, 아무도 초혼령에 대항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단지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기를 빌 뿐….
대명 건국 전후로 나타난 초혼령은 처음 모습을 보인지 사십여년이 넘었다.

“….”

부인 감씨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다 못해 흰 분을 발라 놓은 듯 했다. 그녀의 사십대 풍만한 육체가 눈에 띠게 떨리고 있었다.

“장 관사!”
그녀는 두려워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집사를 부르려 했다.


“아니, 부인, 잠깐만….”
양만화는 부인을 제지하며 초혼령을 집어 들었다. 마음을 가다듬고는 있지만 그도 인간이었다.

(뜨겁다! 요리할 때 같이 했다는 것이군.)


그는 침착하려 애썼다. 장 집사를 불러봐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주위 사람들을 의심한다. 그래서 자기가 완전히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하인이라도 쓰지 않는다.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면 절대 집으로도 들여 놓지를 않는다. 고용된 숙수(熟手)도 역시 확실한 사람이다. 그가 알았을 리 만무하다.
그를 호위하는 십여명의 그림자들도 초혼령의 방문을 몰랐다는 말이 된다.

“십오년(十五年) 만인가? 마지막 초혼령이 나타났었던 때가?”

그는 서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초혼령은 죽음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절망스러운 경우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는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자신은 죽을 수도, 끌려갈 수도 없었다.

“오늘 초혼령이 전달되었으니 삼일 후면 천고문(天鼓文)이 걸리겠군.”

초혼령이 전달되고 그 삼일 후면 천고문이 걸린다. 천고문(天鼓文)은 만인에 대해 그의 죄를 알리는 글이다.

하늘이 알리는 글.

죽어 마땅하다는 것과 그런 죄인을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초혼령의 처사가 옳다는 것을 보이는 글이었다. 신기하게도 초혼령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죽을 죄가 있었다. 하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

산을 쌓을 만큼의 부를 이룬 그에게는 당연히 그럴만한 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죄상을 낱낱이 적은 글이 그의 집 앞 어디엔가 걸릴 것이다. 그러한 천고문이 걸린 날로부터 칠일 후 초혼사자(招魂使者)들이 올 것이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이었다. 그의 아내는 참을 수 없는 공포감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여, 여보. 이 일을 어떻게….”

양만화는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혼절하는 아내를 부축해야 했다. 오랜만에 아내를 기쁘게 해 주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엉뚱하게 정신을 잃은 아내를 안아 들었다. 그의 두 눈에 살기가 새어 나왔다.

그는 아내를 사랑한다. 첩을 세 명이나 두고 있지만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밖에다 소리를 질렀다.

“약빙(若氷), 게 있는가?”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는 집에서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아랫사람이 아무리 잘못해도 그는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타이른다. 그것이 오히려 아래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은 화를 내고 있다. 그 역시 인간이라 흔들린다는 증거였다.

“약빙을 부르라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이십대 후반의 여인이 들어섰다. 갸름한 얼굴에 얼음을 조각 한 듯, 선연한 굴곡을 가진 뛰어난 미녀였다.

“어르신, 부르셨사옵니까?”

여인에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차가운 느낌이었다. 조각 같아서 안고 싶다는 느낌보다는 감상하고 싶을 때에 더 필요할 것 같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양만화의 세 번째 첩으로 들어온 냉약빙(冷若氷)이란 여자였다.

“약빙, 안사람을 침실로 모시고 내 방으로 오게.”

그는 냉약빙에게 아내를 건네며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는 실패를 모르는 강한 사내의 전형이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강하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하며 노력한 사내였다. 그는 초혼령과 맞설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최초로 초혼령을 피할 수 있다는 희망도 가졌다. 초혼령을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런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운(運)이란 것을 믿었는데 반해, 그는 그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이다. 약빙이 그의 방에 온다면 그는 약빙에게 지시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막대한 돈을 퍼부은 무림인들에게 그는 처음으로 요구할 것이다. 소림과 화산, 종남에 사람을 급파하고 그가 아는 모든 무림인들을 부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믿고 있는 그 곳. 자신이 만든 그곳의 인물들로 하여금 초혼사자들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절대로, 절대로, 자신의 아내를 혼절케 한 그 누구라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여하튼 십사년 만에 나타난 초혼령.

사십여년 간 큰 사건 없이 평온이 유지된 무림계를 뒤흔들 사건의 시작이었다.

(4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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