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론' 언급할 자격 있나?

<조선> 역사의 질곡마다 민의 무시, ‘민의(民意]’ 대변할 자격 없어

등록 2004.09.08 18:38수정 2004.09.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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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무시 대통령 뜻대로"를 보도한 <조선일보> 9월 8일자
"여론 무시 대통령 뜻대로"를 보도한 <조선일보> 9월 8일자
<조선일보>는 9월 8일자 1면 헤드라인 기사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보안법과 관련,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은 이날 “여론 무시 대통령 뜻대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통령 자신의 임기 범위를 넘는 국가 명운이 걸린 대사에서는 대통령이 독단적인 소신으로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며 노 대통령이 최근 문화방송의 한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민의’를 근거로 삼아 정권을 비판하는 조선일보의 위와 같은 태도는 참으로 낯설다. 이유인즉, 조선일보는 역사의 질곡마다 지배자의 의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해 왔을 뿐, 일반 국민들의 의견은 아예 무시해 버리거나, 왜곡해 왔기 때문이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공포한다. 지금도 민주주의 파괴, 헌정 질서 파괴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유신 헌법. 유신 헌법이 공포된 지 일년 정도 지난 1973년 10월 1일 조선일보 1면은 “유신 재도전 중시”라는 제목의 기사로 장식됐다.

유신 도전 세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조선일보> 1973년 10월 3일자 기사
유신 도전 세력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조선일보> 1973년 10월 3일자 기사
박 전 대통령이 1973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 유신 헌법에 불만을 표하는 세력들을 유의, 주시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조선>은 “큰 자유 위해 작은 자유 희생하는 슬기를”이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인용, 유신 불만 세력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는 박 전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박정희 대통령 유시 요지 " 박스 기사
"박정희 대통령 유시 요지 " 박스 기사
또한 기사 하단에는 “박 대통령 유시 요지”라는 박스 기사를 실어 충실하게 박 전 대통령의 유신 도전 세력에 대한 제압 의지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2004년 <조선>의 오늘자 보도와는 영 딴판이다. 유신헌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는커녕 지금처럼 보란 듯이 여론 조사 결과를 들이밀 생각조차 하지 않던 당시의 모습이 국민 대다수가 ‘국보법 폐지를 반대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보란 듯이 들이미는 지금의 <조선>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비된다. 여론조사는 고사하고 당시 <조선>은 유신에 반대한 수많은 양심적 지식인과 학생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해 버렸다.


'학원 소요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기사
'학원 소요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기사
1974년 10월 31일자 보도. 이 날 <조선>의 일면을 장식한 기사는 “학원소요 스스로 수습 못하면 학교 문 닫을 수밖에 없다”였다. 정권에 반대하면 ‘학교 문 닫아 버리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큼지막하게 일면을 장식하고 있지만 왜 학생들이 학원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지, 이러한 정부의 입장에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광주 항쟁을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 1980년 8월자 신문
광주 항쟁을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 1980년 8월자 신문
<조선>은 심지어 민의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사실 관계를 왜곡하기도 했다. 1980년 <광주 민주 항쟁>이 그것이다. 광주 시민들이 독재 정치에 항의, 시위를 일으킨 민주 항쟁을 <조선>은 곧바로 보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정 간첩이 침투하여 선동한 ‘폭동’으로 묘사해 보도하였다.


이미 역사적 재평가가 끝나, 그 명칭도 제 이름을 찾아 ‘사태’에서 ‘항쟁’으로 바뀐 당시의 민주 항쟁을 위와 같이 묘사한 <조선>. 왜 이 때는 지금은 그리 보란 듯이 내미는 ‘민의’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조선>은 장훈 중앙대 교수의 말을 인용 “50% 미만 지지율로 탄생한 노무현 정부는 ‘아슬아슬한 다수’로서 ‘거대한 소수’를 포용해야 하는데, 엄청난 도덕적, 윤리적, 역사적 위임을 받은 것처럼 국정을 운영하는 데서 문제가 어렵게 꼬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말은 <조선>이 얼마나 ‘국면의 분석’을 작위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낸다.

1972년 2월 27일 실시된 제 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살펴보면 국면 분석에 대한 조선일보의 작위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박정희 전대통령이 대표로 있던 민주 공화당은 선거에서 득표율 38.7%를 얻어 겨우 과반수 획득에 그쳤다.

이에 대해 역사서는 “당시 폭압적 질서 하에서 집권당으로서의 엄청난 프리미엄을 누렸을 공화당이 겨우 과반수 의석 획득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한다.(풀빛, <한국 현대사3>) ‘아슬아슬한 다수가 거대한 소수를 포용해야 하는 상황’이 당시에도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조선>의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국민과의 합의는 고사하고 ‘일방적 통보’식의 헌법을 공포해 버린 ‘유신’에 대해 <조선>은 침묵하였다.

'국가 보안법 개정 혹은 폐지.’ 자유 민주 공화국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 국보법과 같은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국보법을 폐지하지 말자”는 의견을 완전히 묵살해 버리는 것 또한 참된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닐 것이기에 <조선>의 입을 틀어막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조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조선>은 더 이상 자신의 주장에 ‘민의’를 덮어 씌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마다 철저하게 ‘권력’의 편에서 ‘민의’를 무시·왜곡해 온 신문이 갑자기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며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양 행동하는 모습이 지금까지 조선일보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국보법 폐지에 심정적으로 마음이 기울 뿐 기자의 짧은 지식으로 국보법의 폐지와 개정, 양단간에 무엇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 민의를 무시, 왜곡해 온 언론사가 ‘민의’를 들먹이며 반세기 넘게 국민을 괴롭혀온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는 모습이 참 묘하다는 사실이다.

언론은 항상 ‘공정함’을 그 권위의 초석으로 삼는다. 하지만 <조선>의 역사가 증명하듯 언론사 스스로 ‘공정함’이라는 탈을 쓰고 국민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또한 심지어 국민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권력’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도 그것에 ‘민의’라는 탈을 씌워 국민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조선일보>의 역사 스스로가 증명하는 위와 같은 자신의 과거를 깊게 반성하면서 더 이상 자신의 권위를 위해 ‘민의’를 동원하지 말라. 차라리 “우리 신문사의 입장은 국보법 폐지 반대요”라고 당당하게 밝히라. 이것이야 말로 <조선>이 주장하는 ‘일등신문의 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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