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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 강의실, 마치 한 가수의 공연장처럼 여기저기서 반짝반짝 플래시가 터진다. 그 이유는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강의내용이나 칠판에 적힌 강의내용을 필기하지 않고 통째로 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나 폰카메라(이하 폰카)로 담기 위해서이다.
또다른 장소는 대형서점, 서점 한귀퉁이에서 쪼그려 앉아 이책 저책 살펴보던 학생, 잠깐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디카를 꺼내 책의 필요한 부분을 찍기 시작했다. 결국 이 학생은 목적을 달성(?)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유히 사라졌다.
장소는 다시 바뀌어 학교 도서관, 시험 때만 되면 복사하기 위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던 복사기가 예전과 달리 그리 혹사당하고 있는 것같지는 않다. 그 이유는 책 내용을 복사하는 대신에 디카로 찍는 학생들 때문이다.
그 누가 감히 예상키나 했을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인간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거대한 아성이던 공책과 필기도구, 복사기가 텍스트의 선명도 측면에서 전혀 경쟁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디지털의 총아인 디카와 폰카로 인해 커다란 도전과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텍스트는 또다른 이미지(?)
그렇다면 필기도구나 복사기처럼 충실한 텍스트를 구현하는 도구들이 왜 풍경이나 인물 등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던 디지털 카메라에게 자신의 자리를 뺏기는 이상한 형상이 벌어졌을까?
짐작컨대 모든 사물을 이미지로 파악하려는 요즘 신세대의 성향 때문이 아닐까? 이들에게 있어서 텍스트는 문자라기보다는 이미지 속의 또다른 이미지일 뿐이니까….
특히 이러한 성향은 2년 전 한국영화가 부흥하기 시작할 즈음 학교 성적이 상위권에 속하는 10대 남녀 학생들이 자막을 읽기 싫어서 미국영화보다 한국영화를 좋아한다는 우스개를 통해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후 1~2년이 지난 지금, 예상했던 대로 신세대들은 이미지가 없는 멋없는 글보다는 화려한 이미지가 있는 단순한 글을 선호하고 텍스트보다는 이미지의 느낌을 통해 내용을 통째로 이해하고 습득하려고 한다.
물론 신세대의 이러한 성향은 획일적인 시선을 거부하고 대상을 자유롭게 자신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며, 디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그러나 반면 우려되는 점도 있다.
<윤광준의 아름다운 디카 세상>이란 책에서 저자가 "디카는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담아두고 싶은 인간에게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사물화(私物化)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강력한 도구"라고 한 것처럼 디지털형 인간인 요즘 신세대는 대상을 읽기보다는 통째로 담아두는 것에 익숙한 나머지 텍스트 위주의 빽빽한 내용의 글 읽기를 거북스러워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인터넷 상에는 저마다의 이미지들이 넘쳐나고 있는 반면, 사람들은 점점 문자 투성이인 호흡이 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하면서 서적의 판매부수는 격감하고, 점점 출판계가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출판의 위축은 곧 양질의 콘텐츠 공급 부족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수많은 이미지와 함께 단편화되고 파편화된 지식과 감정들이 생산되어 무수히 인터넷을 떠돌고 있지만 정작 쓸모있는 지식을 구하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이미지와 함께 파편화 된 지식들
문득 불과 몇 년 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까마득한 과거로 아득하게 느껴진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들으며 하얀 공책에 색색깔의 펜을 동원해 빼곡하고 깔끔하게 써내려가던 노트 필기의 모습, 서점 귀퉁이에 털버덕 앉아 점원이 눈치를 주든 말든 새 책을 뒤적이며 필요한 부분을 깨알 같은 글씨로 메모지에 적는 얌체족의 모습, 노트 필기를 안 하고 있다가 시험에 임박해서야 도서관에서 들러 이 책 저 책 복사하고, 심지어 노트 필기의 달인인 친구 공책을 힘들게 입수해 복사하기 위해 줄을 서는 복사기 풍경들….
현재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면서 문자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 속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도전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문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효용을 극대화시킨 채 새로운 형태로 적응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종언을 거두고 말 것인가?
아직까지 그 도전은 진행 중이지만 언젠가는 성공하리라 믿는다. 비록 이미지에게 그 굳건했던 효용성을 어느 정도 잠식당했지만 아직까지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수천 년 동안 갈고 닦아온 문자가 지니고 있는 정확한 표현력과 상징성은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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