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을 전하는 '등심붓꽃'

내게로 다가온 꽃들(82)

등록 2004.09.14 12:51수정 2004.09.1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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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은 지난 4월 초순경부터 5월 말까지 찍은 사진들입니다.
사진들은 지난 4월 초순경부터 5월 말까지 찍은 사진들입니다.김민수

붓꽃이란 이름은 아시다시피 꽃이 피기 전 옛 선비들이 쓰던 붓의 모양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서양식 이름은 '아이리스(무지개)'요,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붓꽃의 종류도 참 다양해서 그냥 붓꽃, 노랑붓꽃, 노랑무늬붓꽃, 제비붓꽃, 애기붓꽃, 타래붓꽃, 솔붓꽃, 부채붓꽃, 각시붓꽃, 흰각시붓꽃, 금붓꽃(애기노랑붓꽃) 그리고 오늘 소개해 드리는 등심붓꽃까지 다양합니다.


등심붓꽃은 귀화식물로 제주의 들판에 정착을 했는데 그 꽃이 예뻐서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답니다. 4월 중순 풀들이 자라기 전에 얼른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면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꽃, 그러나 잔디밭 같이 키가 작은 풀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들은 비가 오고 나면 한 송이 두 송이씩 간헐적으로 가을까지도 피는 꽃입니다.

김민수

붓 중에서 작은 글씨를 쓸 때 사용하는 '세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등심붓꽃은 큰 글씨보다는 작은 글씨를 쓰기에 적합한 세필을 닮은 꽃이니 이 곳 제주에 9년간의 유배살이를 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사체로 상징되는 명필, 제주도뿐만 아니라 북청에서의 귀양살이까지 더하면 대략 13년 정도 귀양살이를 했는데, 오히려 그 고난의 시간들에 절망하지 않고 추사체뿐만 아니라 유명한 '세한도', 학문 등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세한도'는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인 1844년에 그린 그림이며, 북경에서 귀한 책들을 구해 보내 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에게 답례로 그려 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도 벗들과 간혹 서신으로 왕래를 했을 것이고, 그 때에는 세필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붓의 크기도 각양각색이요 그 크기에 따라 쓰임새가 다릅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의 쓰임새가 있고, 큰 것은 큰 것대로의 쓰임새가 있습니다. 크냐 작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쓰임새에 알맞게 사용되는가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며 그와 똑같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내가 아무리 못난이처럼 느껴져도 이 땅에 발 딛고 살아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 자신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김민수

붓꽃은 글과 관계가 있는 꽃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전설이 있습니다. 노랑붓꽃을 소개해 드릴 때 소개했던 이탈리아의 아이리스 부인과 관련된 전설 말고 이런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아주 먼 옛날 온갖 꽃들이 이슬비가 소록소록 내리는 들판에 모여 축제를 열었단다.

꽃들은 저마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가장 예쁜 모습으로 모여들었어. 모든 꽃들이 다 초대되었는데 초대된 꽃 중에는 무지개 색깔 중 다섯 번째 색깔인 파란색의 옷을 차려입고 나온 멋진 꽃이 있었단다. 파란색의 옷에 각양각색의 보석을 달아 치장한 모습을 보고는 꽃들은 모두 그 꽃에게 마음을 빼앗겼단다.

"애, 저 꽃 이름이 뭐니?"
"몰라."

누구도 그 예쁜 꽃의 이름을 알 수 없었고, 그 꽃도 자신의 이름을 알지 못했단다. 아직 그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 준 적이 없었거든.

누군가 이렇게 말했어.

"여러분, 마치 저 꽃의 옷이 하늘에 걸린 무지개 같지 않나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슬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들판을 온통 감싸안았고, 들판은 무지개의 아름다운 빛으로 물들어갔단다. 꽃들이 이렇게 외쳤어.

"이 꽃을 무지개의 사자라고 부릅시다."

그래서 지금도 서양에서는 붓꽃을 '무지개의 사자'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단다.


김민수

봄이 오는 들녘에서
따스한 햇살에 즐거운 몸부림으로 피어난 너를 보았다
그렇게 한 송이 활짝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까
그래서 그것은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너의 그 아름다움은 이틀을 가지 못하고
아침 햇살과 함께 피어난 너는
노을이 지기 전에 너의 삶을 닫았다
그것은 '슬픈 소식'이었다.

단 하루를 살아도
그렇게 아름답게 살아야하는 거라고
단 하루를 살아도
그렇게 봄을 노래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너는 또 내게로 와서
'기쁜 소식'이 되었다.

<자작시-등심붓꽃>


김민수

등심붓꽃은 하루만에 지는 '일일화'입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기의 자리를 비켜줌으로 또 다른 꽃을 피우게 하는 마음씀씀이를 보는 것 같아 대견스럽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작은 풀꽃을 보면 우리네 삶이 그리 짧지 않고, 짧지 않기에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야, 그 작은 몸에 그리도 큰 생각들을 담고 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자연은 모두가 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니?"

등심붓꽃보다 더 짧은 시간만 피는 꽃들도 있으니 어쩌면 그들의 삶에 비하면 장수하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삶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김민수

'기쁜 소식'이 목마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밝은 소식들 보다 어두운 소식들이 더 많이 들려오고, 기쁨의 함성보다는 절규하는 소리들이 더 많이 들려옵니다. 우리 삶, 우리 역사에 늘 기쁜 소식만 들려올 수 없겠지만 우리 모두가 희망이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서 기쁜 소식들이 들려왔으면 좋겠습니다.

등심붓꽃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합니다.

"네가 듣고자 하는 기쁜 소식이 뭐냐? 그 소식이 네 이웃들까지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살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건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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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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