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애국의 기준인가?

나라를 두쪽으로 갈라놓는 <동아일보> '수요프리즘'

등록 2004.09.15 12:36수정 2004.09.1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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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첫 머리를 장식한 '수요프리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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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5일자 "[수요프리즘] 집권세력 '자학사관' 문제 있다"는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세계의 박정희 극찬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세계가 떠받드는데 한국 정권만이 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결론에서는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라고 한다.

우선 칼럼을 살펴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과제가 존재했다. 이를 수행해 나가는 방식에서 각 나라는 선택을 달리했다. 한국처럼 선(先) 산업화-후(後) 민주화 노선을 선택한 나라가 있었던 반면 선 민주화-후 산업화 노선 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 발전을 택한 나라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노선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하버드대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배로는 1994년에 발표한 '민주주의는 성장을 위한 처방인가'라는 논문에서 오직 선 경제 발전-후 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한 나라들(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만이 성공했음을 100여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실증조사에 기초해 입증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평균수명 또는 교육 등에서 큰 성취를 이룩한 국가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민주화돼 간다는 사실과 생활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민주화된 나라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자유를 잃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기초로 배로 교수는 산업화 초기의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결론지었다.

흔히 서구학자들은 그렇게 규정하지만 산업화와 민주화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같이 가는 문제였다. 어느 하나를 희생시키고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논리는 경제성장이 급하니 과거사 문제나 인권 문제는 덮어두자는 극악의 사고 방식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겨두었다. 더욱이 이런 사고방식에는 독재 경제에서 희생되는 사회 경제 비용이나 국민들의 고통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무엇보다 독재에서 민주주의는 그냥 된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민주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 투옥, 타살로 죽어가고 고통 속에 피를 흘렸다. 무지막지한 독재 체제 때문에 수없는 사람들이 병들어 가는 와중에 일부 소수만이 특혜를 누렸다. 이것이 박정희식 수치 중심에 따른 경제성장률의 본질이다.

요컨대 권위주의 경제발전은 자신의 무덤을 팔 세력을 양산해 낸다. 이렇게 봤을 때 체제의 안정성과 정책의 신뢰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한시적인 필요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 시대는 '민주화의 암흑기'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사회경제적 기반 조성기'였다 할 것이다(정희채 <정치발전론> 법문사).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노선은 박정희의 선 산업화 노선이 없었으면 성립 불가능한 테제였다. 이런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김대중' 없는 '박정희'는 가능했어도 '박정희' 없는 '김대중'은 불가능했다. 요컨대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노선은 박정희의 선 산업화 노선이 없었으면 성립 불가능한 테제였다.

항상 이런 식이다. 경제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의 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민주화 세력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등장하지 않았을 때도 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존재했다. 중요한 것은 박정희가 민주화 과정을 가로막았고 박정희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 민주화 세력의 기본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박정희가 등장하기 이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추진하려는 경제개발계획이 활발하게 존재했다. 즉 민주화와 산업, 경제주의의 문제는 분리할 수 없는 문제인데도 박정희를 높이려고 자꾸 분리하고 우선 순위를 매긴다. 근래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동시 추구는 박정희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고 박정희 때문에 망가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이제 칼럼은 박정희의 공과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권위주의 통치 기간에 일어난 인권유린마저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완벽한 역사가 있을 수 없음을 감안할 때 박정희 시대는 우리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과(過)에 비해 공(功)이 훨씬 큰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완벽한 것이 어디 있는가, 어디에나 희생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희생보다는 공을 더 생각해야 한다."

전형적인 강자의 사고다. 왜냐하면 강자들은 희생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칼럼은 약자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자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개발과정에서 희생된 수많은 약자와 그 대변자들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그리고 민주화 관련한 희생자들은 언제나 부차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칼럼을 쓰는 사람들이 그 희생의 편이 아니라 강자 편에서 그들의 시각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치 상대편을 독단적인 강자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북한정권 말고 건국-산업화-민주화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현 정권만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라와 정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현 집권세력은 자학사관의 소유자들이다. 이제 전선의 성격은 명확해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증오하는 사람들의 일대 회전, 이 나라의 운명은 그 결과에 달려 있다.

어느새 박정희를 비난하는 이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고 대한민국 역사를 증오하고 나라를 자학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또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명확한 전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선은 없다. 박정희식 경제론은 경제성장만을 가져왔을 뿐 각종 사회 경제적 악을 낳았다. 단지 인권 문제만이 아니다. 부정부패, 관치 금융, 특혜 경제, 족벌 경영과 반성 없는 질주를 정책 영역 전반에 뿌리 깊게 심어 놓았다. 몰역사성 뿐만 아니라 결과가 모든 것을 합리화시켜 주고 기회주의와 천민자본주의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명백함 앞에 전선은 무의미하다. 이미 박정희는 극복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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