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이 가득한 '벼룩나물'

내게로 다가온 꽃들(84)

등록 2004.09.17 16:06수정 2004.09.1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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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북제주군 송당리 주변에서 만난 꽃입니다
4월 초 북제주군 송당리 주변에서 만난 꽃입니다김민수
어린 시절 봄이면 누님들과 함께 바구니를 들고 봄나물을 하러 다녔습니다. 달래, 냉이, 씀바귀, 쑥, 고들빼기, 망초, 민들레, 돈나물(돌나물), 벼룩나물에 이르기까지 한 바구니 푸짐하게 봄나물을 뜯어 오면 풍성한 식탁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돌나물과 벼룩나물은 깨끗하게 씻어서 간장에 고춧가루만 살살 뿌려서 먹어도 그 풋풋한 맛이 남 달랐습니다. 돌나물은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돈나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 구전 과정에서 '돌나물'을 '돈나물'로 잘못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별모양의 노란 꽃들이 피는 돌나물을 보면 정말 황금을 만난 심정이었으니 '돈나물'이 맞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나물뿐만 아니라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산으로 칡도 캐러 다니고, 국숫발 같은 메꽃의 뿌리를 캐러 논두렁 여기저기를 파헤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냇가에서 잡는 가재, 논에서 잡는 우렁이, 장마철에 삼태기를 가지고 나가 잡는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간혹 부엌에서 성냥과 소금을 챙겨 들에 나가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먹기도 했고, 강아지풀을 쑥 뽑아 잡은 메뚜기를 꿰어 들기름에 달달 볶다가 소금을 살살 뿌려 먹기도 했습니다. 참 맛있는 추억이죠.

벼룩나물 옆에 작은 꽃은 개불알풀꽃입니다.
벼룩나물 옆에 작은 꽃은 개불알풀꽃입니다.김민수
벼룩나물이란 이름이 붙은 내력이 무엇일까 꽃을 바라보면서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일단은 꽃이 작으니 '벼룩'이라는 이름이 붙을만하고, '나물'이야 이파리가 연할 때 나물로 먹는 것들에 붙은 이름이니 '벼룩나물'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작은 꽃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이 꽃 이름에 '벼룩'이 붙을 건 뭐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벼룩에게는 '뛰어야 벼룩이지'하는 벼룩으로서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있는 말이 회자됩니다. 자기의 작은 몸에 비하면 엄청나게 높고 멀리 뛴 것인데 뛰어야 벼룩이라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합니다.

대체로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다른 풀들과 경쟁에서 약한 풀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풀들의 키가 자라기 전에 서둘러 피어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아직도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는 들녘에서 고개를 쭉 내밀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벼룩 나물은 긴 줄기를 내고는 작은 꽃을 피웁니다. 마치 꽃만 보면 땅에서 점프한 것 같은 형상입니다. 그래서 작은 꽃들이 많지만 특별히 높이 피어있으니 벼룩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김민수
그렇다면 이 꽃의 꽃말은 무엇이면 좋을까요? 이미 꽃말이 있다 해도 개인적으로 '호기심'이라는 꽃말을 붙여주고 싶습니다. 긴 겨울을 보내고 세상에 나와 보니 내 주위에는 어떤 꽃들이 또 피어있나 궁금하고 또 궁금해서 조금이라도 멀리 보려고 까치발을 들고 있는 듯한 벼룩나물의 모양새와 어울리는 꽃말일 것 같습니다.


온 몸이 얼어터질 것만 같았던 겨울이 가니
온 몸이 봄 햇살에 근질근질
더 참지 못하고 작은 꽃망울 피어
나를 그리도 간질이던 봄바람과 대면했다
그렇게 근질근질 나의 온 몸을 달아오르게 할 때에는
곤하게 자던 잠 깨는 듯하여 밉기만 하더니
어머나,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라 그토록 나를 깨웠구나
조금만 더 보자
까치발을 들고 조금만 더 보자
그래 조금만 더 보자
저기 풀섶에
개불알풀꽃, 양지꽃, 민들레, 붓꽃, 솜방망이
모두들 잘 지냈구나
반갑고 고맙다
어디 한번 더 뛰어볼까?
<자작시-벼룩나물>


김민수
꽃은 다른 꽃들보다 작다고, 못 생겼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조물주가 자기에 준 그 모습 그대로 피어나고, 그대로 어우러져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아 갑니다.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합니다. 남의 것을 넘보는 일도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그저 그렇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데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연입니다.


우리 사람들도 원래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그 삶에 충실하면 조화롭게 살 수 있도록 그런 자연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남의 것을 넘보고, 남과 같아지려 하고, 포장을 하면서 그 본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잘난 꽃이 있고 못난 꽃이 있듯이 못 난 사람도 있고 잘난 사람도 있습니다. 흔한 꽃이 있는가 하면 희귀한 꽃이 있듯이 범부가 있으면 천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것은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 위에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조화롭게 살아가라고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것입니다.

만일 풀숲에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꽃만 피어있다면 얼마나 삭막한 풀숲일까요? 각기 다른 꽃들이 자기만의 모습으로 피어나니 풀숲이 그리도 아름다운 것이 아닌지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마음 깊이 인정해 준다면 저 들꽃들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꽃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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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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