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토지수용권 "주자"-"안된다" 뜨거운 공방

기업도시특별법 공청회... 개발이익 환수 비율도 이견 노출

등록 2004.09.22 21:56수정 2004.09.2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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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민간복합도시 개발방향과 특별법 제정(안)' 공청회. 이날 패널로만 13명이 초청됐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민간복합도시 개발방향과 특별법 제정(안)' 공청회. 이날 패널로만 13명이 초청됐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기업도시 특별법은 대기업 특혜법인가, 일자리 창출법인가.

특혜 논란을 빚고 있는 기업도시 특별법에 대한 첫 품평회가 열렸다. 건설교통부 후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주최로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민간복합도시(기업도시) 개발방향과 특별법 제정(안)'에 관한 공청회에서 패널로 학계와 재계, 시민단체 관계자 13명은 법안의 특혜성 여부를 둘러싸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

대기업 특혜법인 기업도시 특별법은 즉각 철회돼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서부터, 지역 도시의 생존을 위해서는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읍소형 호소까지 다양한 견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패널들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날 공청회는 시민단체와 재계·학계·지자체 양쪽으로 갈려 평행선만 긋다 마무리 될 정도로 양쪽은 심각한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토지수용권의 민간기업 부여 ▲개발이익환수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완화 문제에 대해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공방을 벌여, 특별법 제정까지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기도 했다.

민간기업이 50% 협의매수 하면 50%는 강제수용 '허용'

[토지수용권 민간기업 부여] 건교부가 마련한 특별법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대상 토지의 50%를 '협의매수'하면 나머지 50%의 토지에 대해서는 강제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토지수용권의 민간부문 행사를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개인의 사유재산을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이 공익적 목적임이 명백하지 않은 상황에서 '빼앗는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주로 시민단체들이 이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들 대다수는 기업에도 토지수용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규황 전경련 상무는 "도시개발 자체가 공공적 목적"이라고 잘라 말한 뒤 "이를 위해 토지수용권을 민간이 행사하겠다는 것인데 못 준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 전무는 "민간이 투자했다고 도시를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면서 "수용권을 주는 것은 법적 쟁점이 아니라고 본다"고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기업도시 건설의 목적 자체가 기업하기 좋은, 투자하기 좋은 환경 만들자는 것이라면 수용권의 제한을 더 내려줬으면 한다"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도 이 전무와 뜻을 같이 했다. 김 교수는 "국가전체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면 사업이 되는 방향으로 잘 설득해야 한다"며 토지수용권 민간 부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정부에 당부했다.

재계 "수용권 제한 더 내려 달라" vs 시민단체 "수용권 부여는 위헌소지"

정영석 진주시장도 토지수용권 부여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2년 안에 토지수용을 마치도록 한 조항을 3년으로 늘려 기업에 물리적 시간을 더 할애해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강제수용하기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토지수용권을 민간기업에 부여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등 재계와 지자체장과의 현격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토지수용권은 현재도 엄격히 제한돼 있고, 주체도 공공기관이 공공 목적으로만 해야 한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공공 아파트의 원가공개가 위헌소지가 있다고 반대했던 건교부가 명백히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토지수용권을 민간에 넘겨줘도 되느냐"며 건교부 논리의 허를 찔렀다. 박 국장은 "이 문제와 관련해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해, 경우에 따라서는 위헌 소송도 불사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토지수용권을 제한적으로 민간에 부여하고 있는 유사법을 근거로 댄 건교부와 재계의 논리에 대해서도 "이는 본질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형태로 볼 수 있다"면서 "이와 유사한 개발사업이 진행될 경우 기업들이 기업도시에 대한 토지수용권 근거로 수용권 문제를 제기하면 어떻게 정부가 방어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하기도 했다.

"기업도시 건설이 솔직히 공공목적 사업이냐" 본질적 문제제기도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도 박 국장과 인식을 같이했다. 오 사무처장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인프라 건설 과정에서도 비민주적 수용 관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제 그 권한을 민간기업에 준다는 것은 개인 재산권의 침해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엄청난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오 사무처장은 "솔직히 기업도시 건설이 공공적 사업이냐"며 "기업도시의 목적이 기업의 투자활성화와 이윤 추구라는 개별 개발사업인 만큼 절대로 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들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의도는 달랐지만 토지수용권을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같은 의견을 냈던 인사도 있었다. 온기운 매일경제 논설위원은 토지수용권 행사로 기업들이 주민들과 직접 대립·갈등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나서달라고 했다.

전문가 70% "민간 단독방식 보다 협력개발방식 바람직"

▲ 발제문을 발표하고 있는 이양재 원광대 교수(가운데)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가 최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전체응답자의 70%가 민간단독 개발방식 보다는 협력개발방식을 기업도시 개발의 바람직한 개발방식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22일 열린 공청회 발제에서 이양재 원광대 교수가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도시의 민간단독 개발방식에 대해 전문가들마저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있다는 것이다. "전권을 기업에게 넘겨야 한다"는 재계의 주장과도 정면 배치되는 결과로 특별법 반영여부가 주목된다.

이들 전문가들은 또 협력개발방식의 파트너로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국가, 지방공사의 순으로 적절한 것으로 응답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결합과 협력이 기업도시 성공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민간복합도시의 개발은 기업의 단독개발에 따른 특혜시비를 방지하고 개발이익의 지역 환원을 통한 지역개발과의 연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발계획 수립 및 개발과정에 해당 지자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도시 '개발이익 환수비율' 싸고 공방

[개발이익환수] 재계와 학계는 개발이익 발생 여부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환수 규정을 못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택지개발 및 아파트 분양과정에서 이어져왔던 건설업체의 폭리를 근거로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현재 건교부가 내놓은 특별법안에는 기업도시 개발이익의 70%를 환수하겠다고 명시돼 있다. 도로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에 대한 재투자 방식이다. 건교부는 준공과 완공 두차례에 걸쳐 추정식 산정을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할 방침이다. 하지만 기업의 직접사용 토지분에 대해서는 환수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재계는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나명우 현대건설 상무는 "기업이 사업시행자인데도 기업이 터무니없이 개발이익을 취하는 것처럼 추정해 환수하도록 돼 있다"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변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한번만 하는 것이 명확하다"고 했다.

김경환 교수 "이쪽 저쪽 다 만족시키기 어려운 패키지 될 것" 우려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개발이익환수 문제와 관련 "기업과 지자체간의 협약에 맡겼으면 한다"며 정부 개입 최소화를 요청했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도 "개발이익이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부가)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며 "특혜시비를 차단한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이쪽 저쪽 다 만족시키기 어려운 패키지가 될 것"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정영석 진주시장은 개발이익환수율을 25%로 대폭 낮출 것을 요청한 뒤 "나머지는 지자체와 협의해서 공공시설에 재투자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가 개발이익을 가져가면 지자체에 떨어지는 것이 없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학동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이익은 30∼40년 동안 변한다"며 "공원이나 광장, 학교, 녹지에 맞는 공공용지를 기부체납 받는 것이 말썽이 없지 않겠나"고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의견을 달랐다. 기업도시 개발 과정에서 기업이 폭리를 취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기 때문이다. 박완기 경실련 감시국장은 "대다수 개발이익은 토지조성, 판매에서가 아니라 아파트나 상업시설이 들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며 "게다가 토지 처분권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결국 지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개발이익이 엄청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가 수용→고가 처분의 과정이 반복됨으로써 기업들이 상당 정도의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폐지하라" vs "경제개혁 포기하는 것"

[출자총액제한제 완화] 이날 공청회에서도 출자총액제한 완화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경제개혁의 포기라는 비판 때문에 완화할 수도, 그렇다고 대기업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완화하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먼저 이 문제를 거론한 쪽은 시민단체였다. 박완기 국장은 "출자총액제한제의 완화는 곧 경제개혁의 포기"라며 정부안에서 삭제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로 맞섰다.

이규황 전경련 전무는 "기업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액수를 투자해야하므로, 출총제로 묶이면 기업이 투자할 수 없게 된다"면서 "출총제를 풀지 않고 기업도시법을 만들면 투자하지 말라며 투자 대상법을 만드는 것"이라며 배수의 진을 쳤다.

온기운 매일경제 논설위원도 이 전무를 거들었다. 온 위원은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3년 후에 폐지하겠다고 했다"고 전제한 뒤 "어차피 특별법을 만든다면 기업에 특별 대우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출총제 폐지를 당연시했다.

온 위원은 "출총제도 완화해 줘야 기업도시 건설이 활성화되지, 계속 묶어 놓는다면 문제가 있다"며 "기왕 기업과 정부가 손잡고 나간다면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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