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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테메큘라(Temecula)시에 있는 페칭가(Pechanga) 카지노 리조트. 큰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의 중간에 위치, 양쪽에서 손님들을 끌어들여서 라스베이거스 못지 않게 떼돈을 버는 카지노로 알려져 있다. 카지노는 1층에 있고 2층부터는 호텔이다. 필자는 테메큘라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이 호텔에서 숙박하도록 지정해주는 바람에 일이 끝날 때까지 팔자에 없는 카지노에 머무르고 있는 중.
한국에서는 카지노가 잠입취재의 대상이지만 여기서는 그냥 가면 된다. 그래도 카지노 하면 외국인이나 최상류층의 오락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는 듯한 느낌으로 카지노에 입장했다.
월요일 새벽의 카지노
예상은 빗나갔다. 건물 밖에서는 동이 터올 그 시각에 사람들이 여전히 북적대고 있다. 노란 불빛 아래서 밤을 꼬박 샌 듯 눈빛이 초췌하고 얼굴은 기름기로 번들거린다.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진검 승부사'의 면모 같기도 하다. 하지만 최후는 그렇게 장렬하지 않고 현실로의 고단한 복귀일 뿐일 텐데.
대형 홀 하나가 축구장 만하다. 친근한 얼굴들이 많다. 아시아인들이 점령한 미국 사회가 있다고 하면 그곳은 카지노다.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Sacramento)에서 나오는 신문 <새크라멘토 비(Sacramento Bee)>에 따르면 아시아인의 비율이 9%인 새크라멘토 일대 도박장에서 테이블 게임 손님의 60~70%, 슬롯 머신 손님 20~25%가 아시안 아메리칸이다.
미국에서 최근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인 월드 포커 투어 시리즈를 보면 결승 테이블에 진출한 사람들 중에는 꼭 아시아인들이 끼어 있다. 그 중에는 한국 사람도 안 빠진다. 그리고 여성 결승 테이블에서는 아시아 여성들끼리 맞붙은 경우도 봤다. 그래도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자랑스럽다는 느낌은 안 든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팜스 카지노(Palms Casino)에 가면 4층도 없고, 객실 번호 40번 대는 결번이라고 한다. 4자를 재수없는 숫자로 여기는 중국인들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 어릴 때 들은 중국인들의 도박벽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자장면 집 주인과 종업원이 마작으로 붙어서 종업원이 이기는 바람에 종업원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 빗자루를 쓸게 됐다는.
페칭가 카지노를 얼핏 봐도 절반 이상이 아시아인들이다. 특히 이 새벽까지도 절대 다수를 점하면서 은근과 끈기를 발휘하고 있다. 이 사람이 한국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헷갈린다. '중국 사람인가 보다'하는데 "패가 안 좋다. 죽어" 그런 '무지막지한' 한국말이 들려온다.
이 카지노의 내부 사정을 아는 한 인사에 따르면 페칭가 고객 중 4분의 1이 한국계라고 한다. 그것은 전날 이 호텔에 있는 동양음식점 '블레이징 누들(Blazing Noodles, 직역하면 불타는 국수)'에서 '고맙게도' 비빔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과 무관치 않은 일이다. 일요일까지 한국음식 특선 주간이었다. 불고기, 찌개에다 심지어 회덮밥까지 선보였다. 서양 음식에 지친 혀에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비빔밥을 시켰는데 고추장 대신 초고추장이 나왔다. 한국인 종업원도 꽤 있던데 왜 이런 '반칙'을 방관하고 있는지 화가 났다.
페칭가 카지노에는 슬롯 머신이 2000대나 있고 포커나 블랙잭, 바카라 등을 할 수 있는 테이블이 125대, 거기에 별도의 지하 포커룸이 있다. 주말에는 그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댈 데가 없어서 차들이 먼저 돈을 잃고 나온 사람들을 따라 다닌다. 그 사람들이 차를 빼면 잽싸게 그 자리에 집어넣는다.
주말에는 슬롯 머신이나 테이블 역시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할 정도니까 인파가 최소한 3천명은 된다. 월요일 새벽 시간에도 눈대중으로 1천명 가량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