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두 권으로 열매 맺은 '이상한 공부'

[서평] 전영선 교수의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

등록 2004.10.01 12:03수정 2004.10.0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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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 관련 저서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인 전영선(고전문학 박사) 교수가 쓴 두 책에 관심이 갔다. 올해 9월 4일 발행한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과 이에 앞서 올해 4월 30일 나온 <북한의 문학과 예술>.

a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 표지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 표지 ⓒ 역락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의 서문에는 '부모님께서는 이상한 공부한다고 늘 걱정이셨다'며 부모님에게 미안해 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전영선 교수는 결국 두툼한 책 한 권으로 완성해 냈으며,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감사를 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이전에 내놓은 <북한의 문학과 예술> 서문에서도 저자는 '부모님들께는 자식이 뭐하고 있는지 알려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책을 쓰기도 편치 않고 읽어서도 편치 않은 시절이 있었다.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에 실린 원고들은 1997년 6월부터 2003년 3월까지 <북한>지에 '북한의 문학 예술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것들이니, 발표 시기로 보아도 어느 정권에 이르러서야 연구가 가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문학과 예술>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도 1990년대 중반부터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은 '북한 주요 예술인 사전' 같은 책이다. 또는 북한 예술의 현실을 북한 예술인들을 통하여 조명해 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인으로는 <임꺽정>의 홍명희, 노벨문학상 후보 이기영, 인민상 수상작가 한설야, 북한 국가인 '애국가'의 작사가 박세영, 작가이며 국문학 연구자인 석인해,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쓴 혁명시인 조기천, 문학평론가 조령출, 종군작가 김사량, 북한 민족문학이론가 윤세평, 고전가요연구자 고정옥,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장을 지낸 김하명, 고전문학연구가 신구현, 백두산창작단장을 지낸 백인준, 김일성상 계관작가 석윤기, 4·15문학창작단장 천세봉, 현승걸, 권정웅, 김정, 문화행정 총수 강능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장철,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부위원장 신진순,


김일성상 계관시인 김철과 오영재, <도라지꽃>의 영화문학작가 리춘구, 차세대 대표시인으로 주목받는 김만영, 노동당 선전선동부장 정하철과 부부장 최상근(최익규),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 차승수, 조선중앙통신사 사장 김기룡, 노동신문사 책임주필 최칠 등을 다뤘다.

문학인 가운데 홍명희 편을 보면, '2000년 10월 7일 충북 괴산군 괴산읍 제월대에서 벽초문학비 비문 재부착식이 열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벽초문학비가 처음 건립된 것은 1998년 10월 17일. 이 문학비가 건립된 것도 어느 정권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는지 알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벽에는 부딪혔던 모양이다. 보훈단체에서 홍명희의 월북 행적과 한국전쟁 당시 부수상을 지냈던 전력을 들어 비문 내용에 반론을 제기했고, 논란 끝에 1999년 5월 철거되었다고 한다.

그 후 신경림 등의 문인이 중심이 된 '벽초문학비 건립추진위원회'에서 재건립 추진 과정에서 보훈단체와 합의하여 '민족해방운동의 큰 봉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문화발전에 기여' 등의 문구가 삭제되었고 '1950년 북한 부수상 재임시 6·25라는 민족상잔이 있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홍명희와 관련된 요즘 상황을 전하면서, 그가 민중의식에서 '일정한 모순'을 보였던 점도 소개하고 있다.

'(전략) 민중의식의 태동에 초점을 두고서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민중의식은 임꺽정이 3명의 양반 첩을 거느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등 일정한 모순을 보이는데, 이는 당시 <임꺽정>이 신문연재소설로서 연재소설의 통속적인 면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이 홍명희 사후에 <임꺽정> 개작을 완료하였고, 2003년에는 북한 문단을 휩쓴 베스트셀러 <황진이>의 작가인 것을 소개해 놓았다.

저자가 먼저 펴낸 <북한의 문학과 예술>을 보면, 서문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a <북한의 문학과 예술> 표지

<북한의 문학과 예술> 표지 ⓒ 역락

'남북 관계의 개선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 관련 학과가 생겼고, 교양과목이 설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정치와 문학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북한에서 사상의 문제는 정치적 생명으로서 특정한 영역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 스스로가 '사상강국'이라고 선전하듯 사상은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것이다. (중략) 그런데 이 사상의 문제가 정치나 사회의 영역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문화의 영역에서는 그리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사상'의 부담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 예술 창조의 주체는 '예술가'가 아니라 '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이름 앞에 붙어 있는 '위원장' 등등의 위압적인 직함마저도 그 예술가 자체를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놓고 있다.

이 책의 한 곳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에서 작가가 되는 길'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북한에서 작가가 되는 일은 하늘에서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출판사로 보내진 작품들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심의위원회를 통하여 심사를 받아야 한다. 국가심의위원회는 작품을 놓고 작품의 질적인 면과 작가로서의 자질과 재능 등의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작품을 선별하며, 국가심의위원회를 통과한 작품은 다시 국가검열을 거쳐야 한다. 국가검열은 북한의 모든 출판물이 출판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작가가 되기 위해서도 철저히 통제와 검열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차라리 '북한에서 표현의 자유를 꿈꾸기란 작가 되기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는 말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난점은 작가뿐만 아니라 '사상 선전'의 부담을 안고 있는 모든 예술 종사자들에게 해당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 한편, 남한에서는 군사정권 때 자유로운 표현 한 문장 때문에 문인과 편집장이 필화 사건을 겪고 그로 인하여 어디론가 끌려가 고초를 겪거나 그 후유증을 견디지 못하여 생을 달리한 경우를 볼 수 있었으니, 예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되새기게 해준다.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에서는 문학예술인 외에도 음악예술인, 미술인, 무용예술인, 공연예술인, 영화예술인, 교예인(기교예술인) 등에 대해서도 다뤘다.

이렇게 '북한의 예술'을 각 장르별로 폭넓게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예술 세계'가 '사상'의 부담을 깊이 끌어안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표현의 단조로움과 다양성의 결핍을 내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지로 실어놓은 예술가들의 표정에서도 부드러움보다는 경직성을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책 두 권을 읽어나가는 동안, 아무래도 '재미'를 위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독서하는 데 그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상'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의 주제와 표현이 결코 자유롭지 못한 북한 예술 문화의 모습을 접하는 동안, '주제와 표현의 자유'가 예술의 창조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 세계를 모르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저자는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 예술인들>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다]는 강요된 가치만 있다면 그 또한 무지로 이어진다. 모르는 것은 편견과 폭력을 낳지만 아는 것은 무지로 인한 편견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이 책이 북한 문화에 대한 무지로부터 벗어나 북한 문화에 대한 편견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저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북한의 예술 세계를 다룬 책이기에 이 책의 분위기도 그만큼 건조한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마저도 내내 건조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건조해진 느낌'이라는 것도, 좀처럼 관심 갖지 않았던 특별한 독서의 의미를 표현하는 내 소견일지 모른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땅에 사는 누군가는 해내야 할 작업, 저자의 다음 연구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전영선 지음,
역락,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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