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한 대는 눈빛이 너무도 착한 고물장수 할아버지의 소중한 친구다.김선영
경사가 가파른 길일 때면, 바쁜 걸음이 아닐 때 내가 끌어다 드릴 때가 있다. 집에 있는 신문이나 책도 묶어 가져다 실어 드릴 때가 있다.
그러나 마침내 나도 그 일에 직접 뛰어들고 말았다. 시간이 모자라 매일은 하지 못하지만 이따금 고물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물상에 가서 리어카를 빌려다가 재활용품을 수거하여 고물상에다 파는 일이다.
운동도 되니 하루 밥벌이 할 겸 그 일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케 해준 사람이 우리 마을의 한 노숙자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가 공원이나 무덤에서 자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공원에 앉아 있는 나에게 쩍쩍 갈라진 천도복숭아를 먹으라고 권하며 말을 건 일이 있다. 자기는 공장을 운영하다가 망했는데, 아내는 떠났고 오토바이 사고로 몸도 제정상이 아니라서 고물장수밖에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가져다 팔았다. 1kg에 200원씩 한다. 다 입을 만한 옷인데, 두 보따리쯤 싸가지고 내려가 무게를 달아보면 20kg쯤 된다. 그만한 양으로 밥 한 끼 값 겨우 버는 셈이다.
그러다 현대사를 다룬 역사소설 자료로 모아둔 신문이며 잡지, 그리고 세계명작 같은 책들을 가져다 팔기 시작했다(꼭 필요한 자료는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서관 신세를 질 생각이다). 책은 배다리 헌책방집에 가져다 팔면 좋겠는데, 그곳 헌책방도 잘 되지 않아 몇 집 남지 않은 상태고, 택시비만 7000원 이상 나오는 그 멀리까지 가져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니 세계명작도 마찬가지, 영락없는 신문지 값 신세다.
잠자리도 없을 만큼 20평형 집 안에 종이로 만든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아예 리어카가 필요했다. 60~70kg쯤 되는 리어카 무게까지 포함하여 한 번에 200~250kg쯤 되는 것을 어깨 힘과 배 힘으로 당기면서 밀고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간다. 비쩍 마른 사람이 너무도 잘 밀고 끌며 다니니까 마을 아주머니들이 놀라워한다. 자기 보게 책 좀 달라는 아주머니들한텐 더러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예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폐품 수집을 해다 파는 고물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분식점에 들어가 밥 한 끼 사먹을 때면 그 맛이 왜 그리 좋던지.
소설가가 할 일이 없어서 그 일을 하느냐고 궁금해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글 써서 버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 데다 글쓰기가 책상머리에만 앉으면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배가 고프다 보니 집중력에 실패할 때가 많다.
수돗물만 열심히 먹어대지만 그게 무슨 영양가가 있는가. 이따금 힘있는 정치가들이 단식투쟁하는 걸 보면 참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지 않은가. 굶주리는 사람들 약올리는 것 같아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