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낮아져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박인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이 흥건해졌습니다. 그만 따르시지요."
맹사성이 소리쳤지만 선사는 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화가 잔뜩 난 맹사성을 보고 말했다.
"찻잔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지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왜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그는 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 그만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러자 선사는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이다. 강원도 집들은 다 야트막하다. 집집마다 문이 다 여닫이인데 문 높이가 내 키보다 훨씬 낮다. 내가 건망증이 심하다 보니 그 사실을 잊어 버릴 때가 많았다. 교우들 집이나 동네 이웃집이나 들어가면서 내 이마가 문틀에 박치기를 한다. 별이 번쩍번쩍 한다. 손으로 아픈 이마를 만지면서,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그 집에서 나오면서 문틀에 또 박치기를 한다. 이마가 성할 날이 없었다. 작은 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심지어 다락문 같은 데는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잊어 버리고, 또 박치기를 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나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셨을까?
요령부득하면, 이마만 찧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친다. 문이 주는 화두는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낮아져야 한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겸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또 그 반대가 '교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