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32회

등록 2004.10.08 18:19수정 2004.10.0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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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연부와 갈유의 눈은 애써 그런 것을 무시했다. 그들은 수화의 시신 곁에 쭈그려 앉자 세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내심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그들은 그저 뼈다귀 위에 살을 입힌 고깃덩이를 보고 살피는 육간(肉間) 사람들 같았다.

“죽은 시각은 아마 자시(子時) 말에서 축시(丑時) 초 정도 아닌가?”
“정확하게 보신 것 같습니다. 시반(屍班)이나 시신의 강직(强直) 정도를 볼 때 그 정도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술판이 자시쯤 되어 끝났으니 수화는 마무리하고 이곳에 들어와 있을 시간이다. 죽은 시각을 보면 자신의 방에서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상하지?”

호흡이 척척 맞던 전연부도 갈유가 말하는 의미를 알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떤 것을 말하시는지...?”

갈유는 고개를 돌려 손불이를 쳐다 보았다.


“자네는 어젯밤 분명 나하고 같이 잤지?”
“자네 술 덜깼나?”

어제밤 분명 두 사람은 한 방에서 같이 잤다. 오랜만의 만남으로 오늘 오후에 출발한다고 하니 아쉬워 일행과 술자리를 끝내고 두 사람만 한잔 더 했던 것이다. 갈유가 품속에서 뾰쪽한 침과 같은 물건을 꺼내 그녀의 입을 벌려 넣었다가 뺐다.


“약물(藥物)이나 독(毒)은 없어. 입속의 침이 진한 상태였고...”

갈유는 그녀의 입속을 살피다 그녀의 음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수화는 검은 수풀이 꽤 많은 여자였다. 갈유는 그녀의 음모를 젖히며 살펴보다가 그녀의 질(膣)을 벌리며 손가락 하나를 집어 넣었다.

누가 보면 시간(屍姦)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해사기 딱 알맞은 짓이었다. 하지만 꺼낸 손끝을 보면서 손가락을 비벼보는 그에게 다른 생각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확실히 이상해.....”

그제야 전연부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 같았다.

“피부와 타액 등으로 보아 흥분하고 있는 상태에서 죽은 것이군요.”

왜 손불이에게 갈유가 같이 잤냐고 물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의원의 눈은 확실히 포두의 눈과 다르다. 포두는 조사할 때 정황이나 외부에 나타난 상처 등을 중시하지만 의원은 몸 상태가 어떠했는지, 신체가 무엇에 반응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다.

“그렇지. 확실히 언씨는 흥분하고 있는 상태에서 죽었어. 춘약같은 약물을 먹은 것 같지 않은데 애액(愛液)까지 흘렀거든.”

손불이는 갈유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지금껏 입을 열지 못하다가 참견할 꺼리가 생긴 듯 말했다.

“거 듣자하니 목을 매고 죽을 때에는 흥분 된다고 하잖아. 남자 중에서는 사정(射精)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질식사, 특히 목을 매단 경우에는 흥분 때문인지 생리적인 현상인지 모르지만 간혹 남자들 중에 사정까지 하고 죽는 사람들이 있다. 목이 졸리고 호흡을 못하게 되면 환각상태에 빠지면서 황홀한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정상적으로 언씨가 목을 매달고 죽었다면 그렇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녀는 절대 스스로 목매달아 죽은게 아니야.”

오랜만에 그럴듯하다고 한 자신의 말이 씨도 안 먹히자 손불이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기야 저런 방면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두사람 앞에서 자신이 떠든다는 것은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다.

“잠깐 몸을 돌려 보겠나?”

갈유의 말에 전연부는 조심스레 언수화의 시신을 뒤로 엎었다.

“손톱자국 남기지 말고....”

갈유의 조심스런 말에 전연부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이미 그의 손에는 얇은 비단으로 만든 수투(水套:장갑)가 끼워져 있었다. 그것은 관가의 포두들이 무언가를 조사할 때 쓰는 수투였다. 갈유와 전연부는 시신이 남긴 흔적을 살피기 위해 그녀의 배후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다시 앞으로 뉘이게.”

전연부와 갈유는 호흡이 척척 맞는 전문가들이었다. 전연부는 분명 갈유가 자신에게 궂은 일을 시키고 있음에도 전혀 불만이 없었다. 자신도 전문가였지만 갈유는 자신에 비해 훨씬 뛰어난 전문가였다.

앞으로 돌려지자 다시 갈유는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세밀하게 조사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음모를 비벼보기도 했고, 음모주위의 살결을 긁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뚜렷한 사인(死因)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리를 벌려보게.”

전연부는 시체를 다뤄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시체의 경우 잘못 움직이면 골절이 부러지는 수가 많다. 죽으면 시체가 강직되기 때문이다. 그는 천천히 수화의 다리를 벌렸다. 그녀의 비소(秘所)가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붉으레한 그녀의 속살도 보였다.

“잠깐....양다리를 들고 약간만 들어 보게.”

그 자세로 다리를 약간 든다면 항문까지 보인다. 전연부도 그녀의 비밀스런 부분 모두를 보았다.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뭔가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됐네. 이제 가지런히 눕혀 놓게.”

전연부는 그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가지런히 뉘인 그녀의 시신에 벗겨놓은 옷을 덮었다.

이제 시신에서 더 이상 조사할 것이 없다는 행동이었다. 갈유는 몸을 일으키며 손불이에게 말했다.

“언씨는 자네에게 말하기 좀 그렇지만 방사(房事)하는 것과 같이 흥분한 상태에서 회음혈(會陰穴)을 짚혀 죽었네.”

회음혈(會陰穴)은 음부와 항문 사이에 있는 치명적인 사혈(死穴)이다. 다만 그 부위가 은밀해 회음혈을 점혈하기 어렵다.

“뭐라고...? 그녀에게 남자가 있었단 말인가?”
“뭐라 단정할 수는 없네. 다만 그녀의 비소에 남자의 물건이 삽입되었던 건 아니네. 삽입을 했다면 죽고 난 그녀의 비소엔 흑적색의 시반이 남았겠지만 그녀의 비소에는 그런 흔적이 없네.”

손불이는 답답한 듯 물었다.

“도대체 누가 죽였단 말인가?”
“그거야 나는 모르지. 여기까지야 내가 알아낼 수 있지만 그것을 밝혀낼 사람은 오직 전영반 뿐이겠지.”

갈유가 보기에 전연부는 확실히 전문가였다. 의술을 거의 모른다고 할 정도의 그가 갈유의 조사를 거의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전연부는 벌써 그녀의 방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특히 침상에 다가가 그는 조심스럽게 이불과 침상 바닥을 샅샅이 뒤져 머리카락이나 다른 흔적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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