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하지만 큰 문구점 '국민상회'

50여년 초등학교 앞을 지키고 있는 박만석 할아버지

등록 2004.10.08 22:25수정 2004.10.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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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초라하지만 큰 문구점 국민상회

초라하지만 큰 문구점 국민상회 ⓒ 서정일


전남 순천시 해룡초등학교 후문 바로 옆엔 박만석(76)옹이 운영하는 '국민상회'라는 5평 남짓 자그마한 문구점이 있다. 보기엔 매우 초라한 가게지만 50여년이 넘었다고 하니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처음엔 '국민주점'이라는 상호로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막걸리와 빵을 구워 팔다가 학생들이 학용품을 찾아 본격적으로 문구만을 팔게 되었다는데 그것도 벌써 20여년이 넘었다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빼곡이 쌓인 오만가지 물건들. 가격들은 전부 알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할아버지 물건 가격은 다 아세요?" 하고 질문하니 "인제는 다 알지 처음엔 애들이 알아서 다 사가고 그랬어. 어디 알아 맞춰봐?"하면서 가격을 하나 하나 설명해 준다.

"이 핵교 처음엔 판잣집으로 지어진 건데 지금은 좋아졌지. 이 가게도 처음엔 판잣집이었다가 내가 브록구(블록)로 지어야겠다 생각해서 손 봤는데 어째 괜찮소?"

a 50여년동안 초등학교 앞을 지키고 있는 박 할아버지와 문구점

50여년동안 초등학교 앞을 지키고 있는 박 할아버지와 문구점 ⓒ 서정일

얼마 전에 새 단장을 했다는 가게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박 할아버지. 상점 밖의 국민상회라는 간판은 물론 문구 복사라는 모든 글씨를 손수 쓰셨다고 하니 디자인(?) 감각도 대단하신 듯 보였다.

'국민'이라는 상호는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먼저 군대 얘기부터 꺼내신다. 20대 초반에 하사로 입대하여 6·25 때 구마산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어 고향으로 돌아온 후 이 가게를 시작했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게 자랑스러워 국민이라는 상호를 사용했다면서 문패 아래 걸려 있는 국가유공자마크를 가리켰다.


아직도 비가 오면 왼쪽 허벅지가 아리다는 박 할아버지의 나라 사랑이 상호에 다 들어 있는 듯해서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a 박 할아버지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가유공자패

박 할아버지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국가유공자패 ⓒ 서정일

"근처에 사십니까?"하는 물음에 할아버지한테 궁금한 것도 많다면서 대뜸 "여기 핵교 있지? 내가 거기서 살어. 핵교가 내 집이여"하고 대답하신다.


너무 뜻밖의 대답에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자니, "핵교 안에 관사 있잖아, 그게 내 집이라니까"하고 재차 설명하면서 무료로 살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지, 하신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만 알고 국가와 사회에 대해선 모른다면서, 물건을 사러 오는 아이들에겐 꼭 상기시킨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가게 안쪽 진열대엔 잘 사가지도 않을 것 같은 태극기도 꽂혀 있었다.

a 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국가와 사회의 고마움에 대해 늘 얘기한다.

할아버지는 학생들에게 국가와 사회의 고마움에 대해 늘 얘기한다. ⓒ 서정일

나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나섰던 전쟁, 50년이 넘도록 항상 그렇게 초라한 가게, 그리고 초등학교 관사에서 무료로 기거하신다는 박 할아버지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건 그러한 자신의 처지에서도 나라와 사회의 고마움을 늘 생각하면서 '국민'이라는 상호로 평생을 살아가는 그 의미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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