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 동료들의 점심시간 풍경

등록 2004.10.19 14:08수정 2004.10.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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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시계 바늘이 12시를 가리킵니다.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섭니다. 그때 드는 생각은 늘 한 가지입니다.


'오늘은 뭘 먹지?'

지난 해까지만 해도 우리 회사 빌딩 사람들은 구내 식당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빌딩주인이 바뀌면서 구내 식당도 함께 사라져 그 뒤로는 무엇으로 점심을 먹어야 할지 매번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가까운 식당 몇 곳을 번갈아가며 이용하고 있지만 밖에서 사먹는 밥이 만족스러울리 없습니다. 특히, 불룩 나온 아랫배가 신경쓰이는 사람이라면 식당에서 사먹는 높은 칼로리의 밥이 꽤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 팀 동료들은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습니다. 12시가 되면 사무실을 나가지 않고, 각자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도시락 가방을 들고 회의실로 모입니다. 이렇게 매일 도시락을 준비해 오는 사람은 4∼6명 정도입니다.

결혼한 유부남은 예쁜 아내가 도시락을 싸줍니다. 아직 미혼인 직원 두 명은 어머니에게 수고로움을 끼친 것 같아 염치없어 하면서 도시락을 싸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우렁이(?) 각시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옵니다. 그게 바로 접니다.


저는 밤이면 밤마다 우렁이 각시로 변신해서 다음날 먹을 도시락을 미리 싸놓습니다. 반찬 가짓수는 직접 만들어 오는 제가 제일 많이 싸오는 편입니다.

자, 그럼 오늘의 도시락을 살펴볼까요?


L대리는 혼자먹기엔 많다 싶을 만큼 넉넉하게 도시락을 싸옵니다. 동료들과 함께 나눠 먹도록 배려한 어머니의 마음씨가 느껴집니다. 도시락 먹고 힘내서 일하라고 불고기도 싸주셨네요.

a 오이소박이 하나만 가지고도 밥 절반은 먹고도 남겠습니다.

오이소박이 하나만 가지고도 밥 절반은 먹고도 남겠습니다. ⓒ 정상혁

자 그럼, 이제 결혼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새신랑의 도시락을 보겠습니다. 맞벌이 하느라 바쁘신 형수님이, 남편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 싸준 도시락입니다. 이런 도시락을 매일 먹기 때문일까요. 새신랑은 결혼하고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나 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총각들의 염장을 지르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a 새색시가 싸준 도시락이랍니다.

새색시가 싸준 도시락이랍니다. ⓒ 정상혁

또 다른 L대리가 싸온 도시락입니다. 야채와 나물 위주의 웰빙도시락입니다. 어머니도 L대리의 불룩한 배가 걱정이 되셨나 봅니다. 특히 L대리는 도시락을 싸주는 어머니에게 매달 월급을 전부 드린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싸는 보람 있을 것 같습니다.

a L대리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L대리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 정상혁

이번엔 우렁이 각시로 변신해서 싸오는 제 도시락을 한 번 보시죠. 다이어트를 고려해서 반찬을 준비하는 편이라, 주로 조리하지 않은 야채들을 싸는 편입니다. 가끔은 제가 직접 개발한 반찬을 싸오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나 들어있네요. 이름하여 '튀긴 두부 XO소스 볶음'입니다.

a 제 도시락입니다.

제 도시락입니다. ⓒ 정상혁


a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 정상혁

이렇게 각자 준비한 도시락으로 한 상 차려 놓으면, 한 사람이 세 가지 반찬만 가져와도 열 여덟 가지 반찬이 오른 밥상이 됩니다. 임금님이 매일 드셨다는 12첩 반상이 부럽지 않습니다.

도시락을 싸오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첫째, 무엇보다도 도시락을 싸준 사람의 정성과 사랑을 느끼면서 즐겁게 식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칼로리가 낮은 식사가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밖에서 사먹는 음식들은 집에서 만든 것과 비교해 칼로리가 높은 편입니다. 불룩 나온 아랫배가 걱정이라면 도시락을 싸올 것을 권합니다. 식사량도 조절할 수 있고, 간단하게 싸야 하는 도시락의 특성 때문에 바깥에서 먹는 것보다는 식사량이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셋째, 점심메뉴의 걱정을 잊게 합니다. 가뜩이나 정신없이 바쁜 직장생활에서 걱정거리 하나를 덜 수 있다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넷째, 경제적으로 저렴합니다. 정확히 따지긴 어렵지만 제 경험에 비쳐볼 때 한끼 도시락을 싸는 데 드는 비용은 삼천원을 넘지 않을 겁니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들른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제 도시락 가방을 보더니 "이러니 식당이 장사가 안 되지" 하는 걸 보니, 요즘 도시락 싸오는 분들이 꽤 있나 봅니다.

다섯째, 사무직인 경우 유일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오는 것이 탐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운동 부족이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도시락을 먹은 뒤 가까운 곳에 산책이라도 다녀온다면 그러한 걱정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인터넷 서핑이나 달콤한 낮잠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주변의 동료에게 도시락을 한 번 권해 보세요. 점심시간이 즐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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