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나를 '빨갱이 목사'라고 불렀다"

아산 새암교회 임인수 목사 "국가보안법 폐지는 하나님의 뜻"

등록 2004.10.15 05:48수정 2004.10.1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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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새암교회 임인수 목사
아산 새암교회 임인수 목사김갑수
1973년 3월, 신학교를 막 졸업한 전도사가 농촌목회에 대한 푸른 꿈을 안고 아산의 한 시골로 내려오게 된다.

임인수 목사. 독재의 서슬 퍼런 압제 속에서 군사정권에 대해 바른 소리를 하는 언론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임 목사는 83년부터 <새암의 소리>라는 소식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84년 2월 12일 소식지에는 "남북이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무기 경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뜻이 아니다"라는 설교문을 실었고, '서울로 갈까 시골로 갈까'라는 제목의 글에는 "엄청나게 가중되고 있는 농가 빚은 오늘날 농민들에게 가장 심각한 … 이 빚 문제는 국가적 차원의 대책이 없는 한, 농민ㆍ농촌ㆍ농업은 심각한 수렁에…"라는 내용의 기사도 올렸다.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 임인수 목사가 발행한 <새암의 소리>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 임인수 목사가 발행한 <새암의 소리>김갑수
이때문일까, 인쇄소에서 경찰서에 신고했는지 출동한 형사들이 찾아와 교회를 방문했다. 겁을 주며 신문 제작 중단을 요구했고, 임 목사는 "잡혀갈까봐 겁도 났고, 시작 단계에 있는 교회가 문을 닫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가족의 평안을 위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의 폐간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미 신문은 그들의 손에 의해 절단돼 있었다.

그러나 2년 후 신문을 다시 만들어 배포했다. 임 목사는 그 이유에 대해 "군사 정권의 불의가 너무도 컸고 불의를 지적하고 정의를 외쳐 보아야겠다는 뜨거움으로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임 목사는 1984년, 천안ㆍ아산 인권선교회에 참여했다. 여기서 감리교, 장로교의 목사들 그리고 성공회 신부와 함께 인권선교의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자주 가졌고, 87년에는 천안ㆍ아산지역의 6ㆍ10항쟁을 계획하는 데 동참하게 된다.

새암교회의 87년 7월 어느 날 주보에 실린 글
"나라 일을 맡은 이들"

이 나라의 불행의 요인들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한 가지는 불의한 정권자들의 불의한 비도덕적 통치수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민주쟁취', '호헌철폐', '군부퇴진', '집회자유', '언론자유', '직선개헌', '애국자들의 석방' 등을 외쳐왔습니다. 금년에 들어서서 이러한 외침은 큰 함성이 되어 불의한 정권자들의 귀를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짓과 폭력 수단 이외에는 별 방안이 없는 무능한 현 집권자들은 엄청난 폭력과 속임과 최루탄을 사용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그런데 6월 29일 아침에 노태우씨는 그들의 통치를 반대하며 그들의 퇴진을 요구하던 이들의 주장을 들어주겠다고 해서 우리 모두를 크게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이 갑자기 회개를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그 간 행해온 큰 죄에 대하여 자백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이번 정변에 대하여 어떤 나라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기적'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나라에서는 '한국인들의 승리'라고 평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만, 이번의 이 정치변화는 참으로 하나님이 한국국민들을 위해 베푸신 기적이요 국민들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들의 중요한 요구가 무시되고 있습니다. 시급한 언론의 자유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행악자들이 퇴진하지 않았습니다. 정권을 강탈하고 국민들에게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해 온 자들이라면, 응당 그들은 국민 앞에서 그들의 죄목들을 나열하면서 자백하고, 감옥으로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이 그들의 자리에 그대로 앉아 큰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무고한 국민들과 애국자들을 협박하고 때리고 고문하고 상처 나게 하고 죄인이라고 낙인찍어 감옥에 잡아넣거나 죽도록 한 자들이 자백도, 회개도, 퇴진도 안했는데 그들은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로 여길 어리석은 이들이 이제는 별로 없을 줄로 믿습니다.

빛바랜 '새암의 소리' 합본을 펼쳐보다가 발견한 타자체로 씌어진 글이다. 한 구절 한 구절 읽다보면서 그 시대의 상황을 바라보는 임 목사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아무리 글을 줄이려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자도 모태신앙인지라 목사님들의 설교를 수백 번은 들었지만, 정권에 대해 이렇게 날카롭게 비판하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엔 그런 비판을 한다고 해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 당시엔 어지간한(?) 정신으론 불가능해 보인다.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임 목사와 관련된 일들 때문에 형사들이 자주 찾아왔고 다소 어수선한 동네가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임 목사가 인권선교위원회에 속하여 반정부투쟁에 힘을 쓴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임 목사를 좌경용공분자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87년 당시, 15명 정도밖에 안 되는 교인 중 절반이 교회를 떠나는 일까지 생겼다.


새암교회 사택에서 만난 임인수 목사는 오랜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산 새암교회 전경
아산 새암교회 전경김갑수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도 잘못 없는 젊은이들이 쫓겨 다니고 피를 흘리며 끌려가기도 하고 애국자들이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온양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부흥사는 그때도 유명하였고 지금도 유명한 감리교단의 목사였지요.

이때를 이용해서 천안·아산 인권선교위원회원 몇몇 목사들이 부흥회에 모인 이들에게 나라의 불의한 현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성명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성명서의 주된 내용은 ▲ 통일을 가로 막는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등 여러 가지 악법들은 폐지해야 하며, 문익환 목사님 등 민주인사들을 전원 석방 ▲ '좌경세력척결'이라는 미명아래 자행되고 있는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 등에 대한 인권유린과 탄압을 즉각 중지 ▲ 농민생존 위협하는 농축산물 수입개방 정책 철회 ▲ 한ㆍ미 행정협정을 개정하고 주한미군기지의 대전 이전계획을 공개하고 전면 취소 등 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부흥사가 '인권선교위원회의 목사들은 빨갱이 같은 목사들'이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몇 목사들은 부흥사에게 찾아가 그런 말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었죠. 그런데 지난번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외쳤던 목사들 중에 바로 그 분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들에게 '빨갱이 같은 목사'라고 말한 분. 그 분은 다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서울시청 앞에 교인들을 많이 모았다고 합니다. 나라와 교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저는 가슴이 뜨거워져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임 목사는 지난 9월 16일에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측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내용으로 하는 시국선언에 대해 "어떻게 교회의 지도자들이 충분한 토의나 합의 과정도 없이 그런 문제의 성명을 발표할 수 있었는지 마음이 아픕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박 성명이 이어서 발표됐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계 한 쪽에는 이승만 시절부터 지녀온 반공주의적인 성향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반공은 애국이요 애국의 방법은 국가보안법 유지라는 등식을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아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임 목사는 또 "교회는 나라를 복되고 바르게 되도록 이끌어야 할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데, '반공'이 마치 성경의 말씀을 말해 주는 것인 양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답답합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정의와 평화,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기독교는 당연히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해야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그러지는 못할망정, 국론분열과 국력소모와 남북관계의 악화를 일으킬 것이 뻔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니 저는 목사이기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가뜩이나 기독교나 목사에 대한 불신의 시각이 많은 때이며,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를 요구하는 기독교계 인사들이 많이 있기에, 그 분들에게 욕먹을지라도 그와 반대되는 소리를 내는 저 같은 목사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임 목사는 "제가 존경하던 목사들과 애국청년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법의 조문은 자세히 몰랐지만 '국가보안법은 참으로 악법중의 악법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망치고 남ㆍ북 통일을 막으며, 우리나라의 수준을 유치하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국제인권단체로부터, 그리고 유엔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악법이요, 정적이나 민주정치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쇠고랑 노릇을 해온 국가보안법을 계속 끼어 안고 살아야겠다는 이들을 저는 좋게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폐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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