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포 마지막 어부 박순웅 할아버지

바다를 메꾸고 그 위에 공장들이 들어선 신성포를 찾아가 봤다

등록 2004.10.16 21:33수정 2004.10.1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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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더이상 포구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신성포

더이상 포구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신성포 ⓒ 서정일

바다가 메워졌다 그리고 그 위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땅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바닷가를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공장의 부둣가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일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 외지로 나가기 시작했다.

16일 찾아간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은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각종 해산물을 싣고 다니는 배가 하루에도 수 십번씩 드나들던 분주한 부두였지만 지금은 쥐꼬리만한 물줄기만 남았다. 지금은 배라고 하기에도 초라한 두서너척의 선박과 이리저리 나뒹구는 패선들로 옛 영광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고, 여기가 항구였는지 조차 모를 만큼 변해있었다.


포구를 중심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건너편에는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쌓았다는 왜성이 있어 유서 깊은 곳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지만 '이곳은 이순신 장군이 이끌던 수군이 왜적과 싸우던 곳입니다'라고 써 놓은 푯말과는 거리가 먼 듯 황량한 육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a 어부에서 농부가 되어버린 박순웅 할아버지

어부에서 농부가 되어버린 박순웅 할아버지 ⓒ 서정일

역사적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만큼 수박의 속을 도려내고 그곳에 벌을 넣어 바다에 띄워 왜군들을 혼내준 이야기, 박 속에 폭약을 넣어 썰물을 이용해서 왜성으로 떠내려보내 큰 공을 세웠다는 전설 등 관련한 여러 가지 얘기들이 가끔 전해진다. 그러나 치열했던 전투이야기보다는 구례 광양 남원 전주등에 해산물을 공급했던 거점항으로써의 북적대던 부둣가 사람들의 애환 섞인 이야기들이 더 정감 있게 다가온다. 여수항이 개항하기 이전엔 가장 큰 해산물 집하장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면에서도 가히 짐작이 간다.

"옛날엔 좋았지요. 여기 부두엔 고기가 끊긴 날이 없었어요. 배가 부두에 들어오면 지게꾼들이 해산물들을 지고 날랐는데 그게 한나절 동안 계속되었지요. 승주군 일대에서 여기가 최고로 큰 부락이었으며 갑부들이 많다는 동네이기도 했습니다. 가구수도 250여 가구가 있었으니 사람들로 북적댔었는데 지금은 모두 외지로 나가고 사람 사는 가구는 몇 안되네요."

a 이젠 폐선이 되어버린 선박 앞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박 할아버지

이젠 폐선이 되어버린 선박 앞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박 할아버지 ⓒ 서정일

그때를 회상하듯 쌀가마니에 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 물며 말을 이어가는 신성포 마지막 어부 박순웅(71) 할아버지, 어부로 나서 어부로 생활했던 박 할아버지가 지금은 농사꾼이 되었다면서 쌀가마니를 포구에 풀어놓고 벼를 말리고 계셨다.

"인생은 세옹지마지, 좋다고 좋은게 아니고 나쁘다고 나쁜게 아니여. 지금은 이렇게 바다를 막아서 공장을 짓고 고작 시냇물같이 조그만 물줄기만 남겨놓아 둑 너머로 우리의 삶이 묻어있는 바닷물이 밀려났지만 언젠가는 바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와서 이곳 신성포가 만선의 깃발을 날리면서 배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구만."

이렇게 말씀하시는 박 할아버지, 사실 그럴 희망이 전혀 없음을 당신 자신도 알고 있으면서도 푸념처럼 내 뱉은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아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a 다 쓰러져가는 빈집을 노인정 삼아 앉아계시는 신성포 할머니들

다 쓰러져가는 빈집을 노인정 삼아 앉아계시는 신성포 할머니들 ⓒ 서정일

공업화 산업화가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고 있다. 산과 바다를 터전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들에겐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개인은 물론 마을 전체를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마음과 이야기 거리들을 포크레인으로 파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박 할아버지의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모퉁이에서 다 쓰러져 가는 빈집을 '노인정'이라 부르며 앉아 계시는 몇몇 할머니들을 보고 신성포에서 돌아오는 마음은 쓸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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