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망각' 주공, 해체 목소리 높다

[집중기획-존폐 기로에 선 주공 ①]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

등록 2004.10.17 18:23수정 2004.10.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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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주택 보급을 위해 설립된 대한주택공사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분양사업에만 급급해 공익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얼마전 주공 사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등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급기야 '주공 해체'의 목소리까지 터져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마이뉴스>는 '존폐의 기로에 선 주공'을 몇 차례에 걸쳐 집중분석, 현안을 점검하고 또 대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주공 본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주공 본사.오마이뉴스 이성규

지난 10월 12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 대한주택공사 국정감사장 앞 도로에 두 시민단체의 시위대가 차량 통행을 가로막고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판교주민대책위원회와 전국임대아파트입주자연합회 소속 회원들이었다. 이들은 국정감사장 주변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거나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 여기엔 '주공 해체'라는 단어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한 쪽은 판교 신도시 택지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상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피해자들이었고, 다른 한 쪽은 주공 임대아파트의 임대료 및 보증금 인상에 반발하는 입주민들이었다. '주공 해체'라는 표현은 이들 시민단체들에겐 분노의 다른 표현이었던 셈이다.

대한주택공사의 해체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주공이 부정부패를 일삼거나 서민들을 갈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공이 공기업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서민들을 고통과 수렁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 해체론의 뼈대다.

사실 주공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터져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토공과의 통합논의가 진행되던 당시에도 주공의 공공성이 도마 위에 올랐던 적이 있다. 공공성의 한 축인 임대주택사업에는 '나몰라라'하면서도 폭리가 보장되는 분양사업에 '올인'해 왔던 주공의 행태가 이같은 공공성 논란을 촉발시켰다.

임대주택사업은 '나몰라라', 분양사업엔 '올인'

지난 1962년 설립 이후 주공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최우선 목표는 주택공급량의 양적 확대에 있었다. 분양을 위한 물량이건 임대를 위한 물량이건 일단 많이 짓는 것이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이었다. 특히 민간부분의 주택 건설역량이 미미한 수준에서 주공은 대규모 주택건설사업을 통해 최근까지 100만호에 이르는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제 역할을 다해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급량 확대가 정부의 정책목표라는 허점을 틈타 주공은 돈이 남는 장사인 분양주택을 대거 공급하는데 급급했다. 이는 통계자료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2002년말 현재까지 주공이 건설한 주택은 총 136만호. 이 가운데 분양주택 물량은 79만호로 58%에 이른다. 이 마저도 2000년 이후 임대주택 공급량을 늘려나감으로써 겨우 '성취'한 성과다.

하지만 여건은 급격히 변화했다. 2003년 현재 주택보급률이 101.2%에 달할 정도로 주택의 양적 부족현상은 많이 해소됐다. 때문에 현재 주택공기업에게 요구되는 공공성 영역은 "주거수준이 열악한 계층과 소외계층의 주거정의를 실현하고, 외부불경제를 줄이기 위한 커뮤니티 형성 및 재고주택 관리에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주를 이룬다. 즉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고 임대주택에 대한 관리에 역점을 두면서 주거빈곤층의 주거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주공이 공기업인지 사기업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주공은 임대아파트의 재원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최근 추진 중인 10개 지구에서 33평 아파트를 분양한 것만으로 3344억원을 벌어들이는 등 폭리를 취해왔다. 민간기업의 사업스타일을 '복사'해 거둔 수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원거주민을 내쫓아 놓은 뒤, 영세한 원거주민의 재정착을 온전하게 보장해주지 않고 분양아파트를 건설하는 예도 적지 않다. 2004년도 국정감사 자료 중 지난 5년간 주거환경 개선사업지구의 주택공급 현황을 보면, 전체 공급물량 1만6850호 가운데 분양아파트가 48.9%인 8241호나 된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 시행 중인 38개 사업지구의 3만2572호 가운데 분양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60.5%에 이른다. 반면 국민임대아파트 비중은 18.4%인 5993호에 불과하다. 노후 불량주택을 개선해 저소득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적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주공의 돈벌이 사업으로 변모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자료이다.

전국임대아파트입주민연합회 소속 회원들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지난 12일 주공 본사 앞에서 주공해체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임대아파트입주민연합회 소속 회원들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지난 12일 주공 본사 앞에서 주공해체를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성규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그의 논문에서 주공의 분양주택 물량이 높은 것과 관련 "서민주택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주공의 반공공적 행태를 질타했다. 그는 또 "아파트 위주의 건설로 주택건설 원가의 상승을 유발했고 대단지화와 원격화를 초래해 거주이동성이 낮은 저소득층의 주거안정보다는 중산층의 재테크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임덕호 한양대 교수도 "분양주택 공급처럼 민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세금을 들여가며 하라고 주공을 설립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민간이 하지 못하는 사업, 즉 저소득층 관련 사업을 하지 않는다면 주공의 존립근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완기 경실련 시민감시국장도 같은 견해다. 그는 주공의 역할 재정립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서민주거안정이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저소득층과 서민들의 '주거복지'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조정하지 않는다면 더이상 주공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여건 악화 불구 임대료 5% 인상해 입주민 원성 사기도

물론 정부의 재정지원이 열악한 상황에서 임대주택 건설비용을 자체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 시스템의 한계가 이같은 주공의 집장사 패턴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재원을 정부로부터 요구·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주공의 공공성이 의심받는 사례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경제여건의 악화로 서민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임에도 임대료와 임대보증금을 계약대로 5%씩 올려받아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주공의 입주자 자격관리 소홀로 국민임대아파트 5가구 중 1가구 꼴로 자격 부적격자가 거주하는 등 임대아파트의 공적기능 감퇴를 방치하고 있다.

주공 해체론, 정확히 표현하면 '민영화' 주장인데 또다른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어 관심이다. 주택 공기업의 사회적 기능이 점차적으로 소멸된다는 이른바 '자연적 해체론'이다. 오는 2012년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 사업이 마무리되면 주공도 자연스럽게 민영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 견해의 핵심은 "어차피 주공의 국민임대주택 공급사업이 마무리되면 주공의 공적 역할은 사라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임덕호 교수는 "2010년 이 정도까지는 임대주택이 물량이 적어서 정책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고 그 과정에서 주공의 역할은 크다고 본다"면서도 "그 임무가 마무리되고 난 다음엔 점차 시장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강래 열린우리당 의원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건설이 마무리 된 2012년 이후 주공이 어떤 식으로 조직을 재편해야 할지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공공성 약화로 인한 '해체론' 뿐 아니라 주택공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존재할 수 있는 땅이 그만큼 좁아질 수 있다는 근거에서의 '소멸론'이 주공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뼈를 깎는 자성과 조직혁신이 없이는 주공은 더이상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사회보장 차원 임대주택 공급 및 다양화가 주목적
[미니해설] 일본-독일의 주택 관련 공기업 운영사례

일본 도시기반정비공단

일본 도시기반정비공단은 주택공단과 택지개발공단의 합병으로 탄생한 주택도시정비공단을 모태로 하고 있다. 81년 탄생한 주택도시정비공단은 우리나라의 주택공사와 마찬가지로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로 인해 존립 기반이 위태로워지면서 99년 도시기반정비공단으로 재탄생했다.

도시기반정비공단은 분양주택업무를 완전히 정리하고, 국가정책상 필요한 임대주택 공급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임대아파트의 임대료도 입주자 개인의 부담능력을 감안해 시장임대료를 책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독일 베를린 주정부 주택건설공사

베를린 주정부 주택건설공사는 주택의 건설과 단순 임대업무를 넘어 주택의 시설유지 및 보수, 내부시설관리를 포함한 일체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보장주택의 공급확대와 주택공급의 다양화가 주된 사업 목표이다. 환경건축사업의 일환으로 다락방주택을 주거공간으로 만드는 주택개량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베를린 주정부 주택건설공사는 공익사업의 원칙과 사회보장적 책임을 준수하도록 의무화돼 있으며, 이를 토대로 공공자금의 지원 뿐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재투자하는 방식을 통해 주택 임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주민참여나 전문가 조언을 적극 유도·채택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뒤 사업을 추진하는 정책결정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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