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라. 넌 그래야지, 젊으니까"

희망의 별을 찾는 연극 <청춘예찬>

등록 2004.10.21 03:39수정 2004.10.2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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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지리 궁상인 인생들이 있다. 고등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는 영민, 뚱뚱한 체구에 간질병에 일하던 다방 주방에서까지 잘린 수희, 염산을 휘둘러 어머니의 눈을 멀게 만들어 버린 술쟁이 아버지, 이혼한 후 다른 남자와 사는 안마사 어머니, 매일 허풍에 폼만 잔뜩 잡고 다니는 친구들. 청춘예찬은 쓰레기 같은 청춘들의 이야기다. 가슴을 쥐어 잡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지닌 몸뚱이들의 이야기.

무대는 왠지 쓸쓸하다. 객석을 닮은 계단 모양의 무대장치뿐이다. 주인공 영민은 방황하는 청춘이다.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면 영민은 그 속에 끼여 능청스럽게 극장 안으로 입장한다. 마치 관객인 양, 표를 가지고 팸플릿을 지닌 채.


영민은 슬그머니 무대 위에 걸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린다. 아직 연극이 시작되지 않은 객석의 관객들은 공연을 기다리고, 무대 위의 영민은 똑같은 모습으로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a 연극 <청춘예찬> 한 장면

연극 <청춘예찬> 한 장면 ⓒ 연극열전

주인공 영민은 끊임없이 생각하는 청춘이다. 너무 생각이 많아, 너무 고민이 많아 고등학교를 4년째 다니면서도 학생이라는 위치를 버리지도 어쩌지도 못하는, 술통에 빠져 있는 아버지를 버리지도 어쩌지도 못한다.

그래서 다방에서 5살 연상 수희에 대한 연민으로 하룻밤을 보낸 뒤, '나, 잘 할께요' 하며 같이 살자는 수희를 뿌리치지도 어쩌지도 못하다가, 청춘은 그녀를 받아들인다. 같이 살아보자.

연극의 절정은 영민이 수희를 집으로 데려간 이후다. 수희의 간질병 발작, 영민과 아버지의 눈물 섞인 다툼, 그리고 아버지 또한 살아보자며 그녀를 받아들이는 순간. '셋이 누워 있으면 따뜻해. 관 속에 있는 거 같애' 라는 아버지의 고백. 아버지, 영민, 수희 셋이서 조그마한 단칸방에 누워 있는 모습은 애처롭고 따스하고 부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희망이다. 이 방황하는 청춘들의 희망. 계단 하나밖에 없었던 외롭고 쓸쓸해 보이던 무대에 마법 같은 야광별들이 쏟아진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 수밖에 없다.


이 밑바닥 같은 연극은 관객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준다. 세계사 선생님이 이 나라를 떠나며 영민에게 하는 명대사들은 곱씹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갈대밭을 걸어봐'


'행복해라. 넌 그래야지. 젊으니까'

<청춘예찬>은 동숭아트센터에서 올 한 해 좋은 연극을 올리고 있는 연극열전의 열 두 번째 작품이다. 99년에는 박해일이 맡았던 역할을 올해 <햄릿> <선데이서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 김영민씨가 맡은 것을 제외하면 다른 배우들은 모두 초연 멤버들이다.

천고마비의 계절, 좋은 연극 한 편으로 영혼을 살찌우자. 어려운 시대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당신, 야광별을 찾자. 행복해야지. 우린 그래야지. 아직 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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