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전기의 2차년도 기부금 50만원을 재원으로 하여 건립한 '경성부민관'이다. 원래 덕안궁 터에 세워진 이 건물은 1934년 7월에 착공하여 1935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종합 공연장 역할을 했던 이곳은 군국주의 시절에 숱한 동원 예술과 정치 집회의 본거지가 됐다가, 해방 이후에는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을 거쳐 지금은 서울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부민관, 군국주의 단골 선전 장소로
그리고 100만원의 기부금은 1932년과 1933년에 걸쳐 50만원씩 두번으로 나눠 경성부에 건네졌다. 그만한 돈을 달라고 하니까 경성전기가 마지못해 거기에 응한 것뿐이었을 텐데, 어쨌거나 배부른 독점기업의 잉여자금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되어 그렇게 건네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돈은 '경비진료소(輕費診療所)'를 건립하는 데 가장 먼저 투입된다. '경비진료소'는 말하자면 빈곤층을 위해 싸게 치료해 주는 사회 시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경성부민관을 건립하자는 주장이 우세했으나 그다지 긴급한 일은 아니라고 하여 차례가 뒤로 밀렸다.
더구나 그 무렵에 천황의 하사금을 받아 빈민구료사업을 추진하던 터라 이들을 위한 진료소의 건립 계획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순위에 꼽힐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장소는 을지로6가 일대에 남아 있던 훈련원 자리가 선정되었다. 말하자면 지금 '국립의료원'이 들어선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경비진료소의 공사는 1933년 6월 25일에 시작되어 이듬해 3월 2일에 낙성식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 사이에 '경비진료소'는 '경성부립부민병원'으로 이름을 고치는 과정을 거친다. 해방 이후에는 이 병원이 '시민병원'으로 되었다가, 1958년에 이르러 '국립의료원'이 생겨나면서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경성부민병원이 준공된 그 해 여름이 되자 경성전기의 2차년도 기부금 50만원을 재원으로 하여 이번에는 경성부민관의 착공이 이뤄지게 된다. 그런데 그 자리가 덕안궁터였다. 덕안궁은 원래 엄비의 신위를 봉안했던 곳으로 1929년 5월에 육상궁 쪽으로 합쳐 옮기면서 빈터로 남게 된 구역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약간 눈길을 끄는 기록은 <조선과 건축> 1932년 11월호에 남겨진 내용이다. 여길 보면, 처음에는 덕수궁터 안에다 부민관을 지으려는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했던 것이 부민관의 건립이 경비진료소의 신축보다 순서가 뒤처짐에 따라 그 사이에 덕안궁터 쪽으로 위치가 다시 정리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부민관의 건립 부지는 이왕직 소유의 덕안궁터 일부와 경성기독교청년회관이 서 있던 곳을 합친 자리로 결정되었다. 넓게 보면 이곳 역시 애당초 덕수궁 권역에 모두 포함되어 있던 지역이었다.
어쨌거나 부민관은 1934년 7월 30일에 공사가 시작되어 이듬해인 1935년 12월 10일에 낙성식이 거행되었다. 그 당시로서는 최신식 시설이 두루 갖춰진 종합 공연장의 기능으로 설계된 것이었으나, 이곳은 이내 군국주의가 판을 치면서 무수한 정치 집회와 동원 예술이 이뤄지는 주요 장소로 바뀌고 말았다.
우연찮게도 부민관이 예술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주로 정치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됐던 사실은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무려 20년이 넘게 '국회의사당'이 되었던 것도 그러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시 십수년이 넘도록 서울시의회 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기득권을 유지하려던 독점기업의 마지못한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공간, 바로 그 안에서 이뤄졌고 또 이뤄지고 있는 정치 논의들이 그 동안 자본의 논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가 못내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거대 기업의 위세가 커지면 커질수록 앞으로도 '공익' 혹은 '사회 환원'이라는 이름의 기부금이 만들어 낸 첨단 건물들이 길거리에 자꾸 자꾸 늘어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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