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엄마 '보호센터' 보내기

등록 2004.11.10 22:45수정 2007.06.1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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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회사를 그만둔 후, 가끔의 외출을 제외하곤 24시간 엄마와 함께 하는 일상을 계속하였다. 또 올 봄부터 동생과 조카가 함께 살게 되어 집안에 사람이 많아지자 엄마는 그 얼마전의 심한 헷갈림과 똥오줌까지 싸던 정서적 신체적 불안정한 상태에서 평온함을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지난 9월초 동생이 취직을 하였고, 나 또한 무슨 일인가 해 볼 요량으로 서울에 사무실을 하나 얻어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집안에 하루 종일 복작이며 엄마와 함께 있던 우리가 한꺼번에 모두 나가버리는 상황이 되자 엄마의 상태가 다시 나빠질까 걱정되었다.

물론 내가 회사를 다닐 때처럼 낮엔 큰언니가 집으로 와 너덧 시간가량 엄마를 돌보기는 하지만 동생과 내가 출근을 한 뒤와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까지 엄마는 또 많은 시간을 혼자 있어야만 했다.

아침에 한꺼번에 식구들이 모두 나가버린 후에 맞게 될 외로움과 두려움을 엄마 혼자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을 두려워 했다. 동생보다 늦게 출근하는 나를 붙들고 '같이 가자'고 보채기도 하고 '가지 말라'며 매달리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 몇 달 간 평화로운 시간이 행복하기도 했지만 치매 걸린 엄마를 혼자 두고 나가야 하는 안타까운 마음은 마치 아기를 떼어 놓고 출근하는 심정 그 자체였다. 경제적인 여유만 있다면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엄마의 상태가 다시 나빠질 것 같아 병원 담당의사에게 동생과 나의 출근으로 엄마가 맞게 될 변화를 상담하였다.

늘 웃음으로 환자를 맞는 그 의사는 치매환자를 낮 시간 보호해 주는 '치매노인 주간보호센터'에 엄마를 가시게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엄마는 이미 서울의 한 구청에서 운영하는 보호센터에 다닌 적이 있으나 적응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엄마는 보호센터에 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일상 활동을 통해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치매노인들에게 콩을 고르게 한다든지 콩나물을 다듬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때문에 엄마가 그곳을 공장으로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자신을 가두고 일을 시킨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엄마는 직원들이 손잡고 화장실을 가면 그것마저 자신을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기 위해 '화장실까지 따라온다'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보호센터에는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거나 침을 흘리기도 하는 노인들이 꽤 있어 엄마는 그런 분위기에 겁이 났던 것 같다. 결국 보름 만에 보호센터에 가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그러한 전력을 담당의사에게 설명하자 요즘은 '보호센터의 기능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으며 엄마에게 잘 맞는 곳을 선정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또 '적응이 잘 된 노인들은 보호센터 다니는 것을 낙으로 생각할 정도' 라며 권장의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혼자 있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지면 우울증이 생겨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염려와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해야 하는 큰언니의 어려움도 덜어보자는 생각으로 담당의사의 제안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이제 나하고 막내하고 회사 다니는데 엄마 혼자 집에 있으면 심심하잖아. 그러니까 낮에 문화센터 다니면 어때?" 하며 엄마의 생각을 물었다.

"문화센터가 뭐하는 데야?"
"응,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엄마 춤 잘 추니까 가서 사람들 가르쳐 주면 좋겠다. 재밌겠지? 우리 문화센터 한번 같이 가 볼까?"

엄마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엄마는 마음이 동하는 눈치였다. '가겠다'는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아니지만 '싫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기에 엄마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니 용인시와 00협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치매노인 주간보호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전화를 하여 위치를 알아보고 엄마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엄마가 자동차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문화센터를 간다고 말을 한 것이 마치 엄마를 떼어놓으려 거짓말로 속이고 몰래 어딘가를 가는 것 같은 석연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울컥한 마음이 되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승용차로 20분이 넘게 걸리는 그 곳에는 나무가 많아 공기가 맑은 것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새로 생긴 곳이라 시설은 깨끗했고 운영시스템 또한 믿을 만했다. 그곳에는 70,80대 노인 10여명이 하교(?)를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에서 나누어준 노란색 티셔츠를 똑같이 입은 노인들은 회의용 테이블 두개정도 붙여 놓은 곳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활기찬 한두 분을 빼고는 모두 의자에 초점 없는 눈빛으로 앉아 있어 슬프게만 보였다. 순간 엄마가 그곳에 그렇듯 앉아 있는 모습이 연상되어 내 가슴속에 깊은 구멍이라도 난 듯 휑하게 찬바람이 불어왔다.

엄마와 내가 들어서자 그들의 시선은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사회복지사와 보조교사 그리고 셔틀버스 운전도 하고 노인 분들을 돕는 남성까지 세 명의 인원이 정원 15명의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듯했다. 총 책임을 맡고 있는 듯한 사회복지사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노인 분들에게 엄마를 인사시켰다.

반장 할아버지와 적극적으로 말과 행동을 하는 할머니를 뺀 나머지 노인분들은 행동이 어눌하거나 몸이 많이 불편한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유치원생들처럼 공손한 인사와 박수로 아직 입소를 결정하지 않은 엄마를 환영해 주었다.

엄마가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그 남자 직원은 즉석에서 엄마에게 노래를 한 곡하라는 제안을 했다. 수줍어 하는 엄마를 대신해 내가 가수 현철의 노래를 부탁하였다. 대형 TV화면에서 엄마가 즐겨부르던 '사랑은 나비인가봐'라는 노래의 가사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박수를 쳐가며 흥을 돋우고 기분을 맞추어서인지 음악이 나오자 예상외로 엄마는 '음정 박자 모두 틀려가면서'도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엄마의 얼굴엔 부끄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보호센터에서 엄마가 적응 할 수 있는지가 염려스러웠는데 시설이 깨끗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기분 좋았는지 엄마는 다행히도 부정적인 얼굴빛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셔틀버스가 집 앞까지 오지 않아 오전 9시까지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셔틀버스 승차장까지 엄마를 모시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엄마를 새벽부터 깨워 식사시키고 외출준비를 시키려면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데 나의 출근을 준비하는 시간과 셔틀버스 승차장까지 모시고 가는 시간까지 아침 최소 두 시간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것이 문제였다.

또 바로가면 자동차로 채 2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를 노인들의 집 근처를 모두 돌아 1시간 이상 걸려 보호센터에 도착한다니 엄마가 버스 안에서 그 긴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역시 한 시간 가량 차를 타고 나온 엄마를 똑같은 장소로 가서 모시고 와야 했다.

더 큰 문제는 귀가 어두운 엄마가 프로그램 진행자의 지도를 알아듣지 못해 공동생활하기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런 사정을 사회복지사에게 얘기하니 보청기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였지만 치매환자가 보청기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작은 보청기를 귀에 넣는 것도, 손끝에 살짝 걸리는 정도의 너무나 작은 스위치를 돌려 켜고 꺼야하는 것도 엄마 혼자서는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누군가가 일일이 따라 다니며 조절해 주어야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무엇이든 숨기기를 좋아하는 치매환자들의 특성상 엄지손톱만한 보청기를 한번 잃어버리면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 백만원씩이나 하는 보청기를 새로 하는 것이 난처했던 것이다.

과거 사용하던 보청기는 이미 잃어 버렸고 청력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현재는 엄마의 귀에 가까이 대고 얘기하면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래도 단체생활에서는 장애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셔틀버스 승강장으로 모시고 오가는 일이나 아침저녁으로 두 시간 이상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것, 그리고 귀가 어두운 엄마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등 엄마를 '센터'에 모시는 일은 어려움만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보호센터 입소를 망설이게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죄의식'이었다. 엄마를 가족이 아닌 사람들 손에 떼어 놓는다는 일종의 죄책감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이다.

얼마간 고민 끝에 엄마를 보호센터에 보내는 것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물리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사실은 내 맘속에 있는 '죄의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낮에 날마다 큰언니가 집으로 와야 하는 일이 해결되지는 않았어도 그리 결정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치매부모들을 주간 보호센터나 기관에 맡기기 전 대부분 가족들이 겪는 '죄의식'의 과정을 나 역시 겪고 있었던 것이다.

보호센터에 가면 엄마가 혼자 있어 생길 위험도 줄일 수 있고 일상 활동의 치료를 통해 사회성을 키워주는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되리라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에 처하니 갈등이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엄마를 '센터'에 맡겨보려 하는 과정에서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치매노인을 보호하는 시설이 특별한 장소에 특별하게 있는 것보다는 좀더 개방형으로 바뀌어 어린이 놀이방과 같이 접근이 쉬운 집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거형태의 대부분이 아파트인 현실에서 대형 단지에 경로당과 '치매노인 주간 보호센터'의 기능을 갖춘 시설이 있다면 보호자와 환자가 쉽게 오갈 수도 있고 가족들이 느끼는 '죄의식'과 같은 심리적 부담감도 덜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지역 자원봉사자들의 지원도 좀더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8.7%에 달하고 치매 환자가 35만이나 된다고 한다. 400만 노인 인구 중 8.5%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노인 10명 중 1명 정도가 치매에 걸렸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달 전 92세 노인이 간병이 힘들고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며 치매를 앓는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또 가벼운 치매 증상을 앓아 옷에 대변을 본 어머니를 자식이 구타한 사건도 있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현재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이 온전히 개인 책임으로 돌아가 가족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치매에 대한 낮은 사회 인식으로 환자 가족의 책임만이 강조되고 있어 35만 치매가족들은 부양 의무 뿐 아니라 가족간의 갈등으로 대부분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치매가 이토록 개인의 삶과 가족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인데도 정부의 장애인 분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치매에 대한 사회 인식의 일단을 볼 수 있다.

치매는 이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생명공학을 통한 의술의 발전으로 사람의 수명은 한없이 늘어나지만 온갖 스트레스로 인간의 정신은 더욱 나약해져 치매환자는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0대 중년의 우리가 60대가 되는 2020년에는 치매환자가 62만 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급속히 늘어나는 노인과 치매환자에 비해 국가의 대책은 너무나 늦고 더디기만 하다.

노인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가족 관계마저 파괴하는 치매는 이제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의학 차원보다 사회, 윤리 문제로 인식해 국민복지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한 평생 노동으로 당신의 자식들과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신 분들이다. 그런 그들이 치매에 걸려 자신의 지난 삶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렇다면 그들의 마지막 생을 인간답게 마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족과 국가 모두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 아닐까?

추운 겨울이 올 것을 미리 알리듯 날씨가 제법 싸늘하다. 이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내년에는 엄마가 즐겁게 다닐 수 있는 곳을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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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정신에 공감하여 시민 기자로 가입하였으며 이 사회에서 약자에게 가해지는 차별을 글로 고발함으로써 이 사회가 평등한 사회가 되는 날을 앞당기는 역할을 작게나마 하고 싶었습니다. 여성문제, 노인문제등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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