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가 삼이랑께"

길쌈마을 보성군 살래마을을 찾아서

등록 2004.10.29 21:15수정 2004.10.3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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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가 삼이랑께"

a 물레를 설명하는 송정순(59)씨

물레를 설명하는 송정순(59)씨 ⓒ 서정일

알아도 되물어서 정확히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에게 '삼이 대마'라고 하면서 수 차례 설명하는 송정순(59)씨. 그도 그럴 것이 군내 길쌈대회에 나가 살래마을이 1등을 차지했었고, 자신 또한 40여 년의 경력이기에 송씨가 삼을 정확히 알리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일.


이렇듯 보성군 미력면 살래마을은 보성관내에서 길쌈으로 가장 유명한 마을이다. 길쌈을 하는 인원에서나 생산 규모면에서도 으뜸인데 예전엔 60여 가구 대부분이 길쌈을 할 정도였다.

대마라 불리는 삼은 3월 경에 심어 6월 경에 재배하기에 농사가 끝나는 농한기에 농가에서 할 수 있는 부업으로는 최고다. 그러나 밤을 새워 108번의 정성을 들여야 고작 몇 발 정도의 옷감이 나온다고 하니 들어간 정성에 비해 얻는 게 적은 비효율적인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a 송정순(59)씨가 치자물을 먹인 삼베를 설명하고 있다.

송정순(59)씨가 치자물을 먹인 삼베를 설명하고 있다. ⓒ 서정일

그것을 대변이라도 하듯 요즘은 길쌈하는 인원이 대폭 줄어 살래마을에도 겨우 예닐곱 정도의 가구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몇 년 후면 길쌈하는 사람이 눈 씻고 봐도 없을 것이라면서 자신도 "그냥 하던 일잉께 하제"라고 말하는 송씨.

자신을 잘 모른다면서 길쌈하는 건 시어머니에게 물어보란다. 40여 년의 경력임에도 시어머니에게 공을 넘기는 송씨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치자 물을 들일 때면 꼭 함께 작업한다는 송씨의 시어머니 이팔례(84) 할머니는 길쌈만으로 평생 살았다고 할 정도로 긴 70여 년의 길쌈 인생이다.

"내 처녀 적에…." 말문을 끄집어내는 듯 하다가 크게 웃고 마는 이 할머니다. "길쌈하시면서 재미난 일 없으셨어요?"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려다가 웃으시는 걸 보니 뭔가 재미난 얘기가 있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좀처럼 얘기를 하지 않으시다 한참 웃고 나신 후 들려준 얘기엔 지금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지만 풋풋함이 묻어나는 한편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얘기였다.


"길쌈을 할 때 치마를 무릎 위까지 걷고, 무릎 위에서 꽈야 허잖아."

길쌈은 보통 밤에 호롱불 아래서 방에서만 하는데, 그 이유가 삼을 꼬을 때 치마를 걷고 무릎 위에 삼을 놓고 손으로 비벼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몰래 훔쳐 볼라고 담을 기웃거리는 동네 남정네들이 있었지. 그러다 물벼락이나 부지깽이로 혼나는 남정네들 많았어. 그러다 혼인하는 사람들도 있었당께."

그리고는 또다시 웃으시는 이 할머니. 그 웃음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돌아올 때까지 알 수 없었다.

a 길쌈경력 70여년의 송씨 시어머니 이팔례(84)할머니

길쌈경력 70여년의 송씨 시어머니 이팔례(84)할머니 ⓒ 서정일

이 할머니는 "나 죽으면 누가 길쌈을 헐랑고" 하면서 그래도 며느리라도 남아있으니 안심이라는 듯 대견하게 며느리를 바라본다. 그러나 길쌈 인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줄어들 것이다.

노동의 고됨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중국산 등 저가의 제품들이 쏟아져 들어와 이제는 더 이상 농가 소득으로 맞지 않는다는 점도 그 한 이유다. 그러나 아직은 그래도 잘 보존된 편이지만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길쌈하는 모습을 후손들도 이렇게 직접 찾아와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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