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하기 전 말티즈 다움이의 모습정현미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아이가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나는 지난해부터 말썽꾸러기 말티즈 '정다움'의 '엄마'가 됐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도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날이 있었다. 전날 밤 더워서 열어둔 문으로 다움이가 가출한 것.
순간, 아직까지 대소변을 못 가리는 다움이가 전날 밤 '쉬야'를 하다가 나에게 들키자 눈치를 보며 구석으로 숨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거실 바닥에 찍힌 '노란 발자국'을 가리키며 유난히 많이 혼냈다. '하루종일 혼자 외롭게만 하고 놀아주지도 못했네….'
전단지를 붙여야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며칠간 계속 비를 뿌렸다. 프린트 잉크가 수성이라 비오는 날에는 붙일 수가 없기 때문에 뚫린 듯한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엄마는 굴하지 않는다.
노란 하늘 속에서 하루 종일 떨고 있을 다움이
어디선가 우리 다움이가 비를 쫄딱 맞고 떨고 있을 것만 같았다.
'누가 데려가서 키우는 걸까?', '까탈스런 아주머니가 자식 성화에 못 이겨 키우다가 밥도 안주고 때리는 거 아냐?', '어디 벽 틈새에 끼어서 굶어 죽었으면 어쩌지….', '무식한 아저씨가 똥개인 줄 알고 뒤늦은 복날 잔치를 했으면 큰일인데….'
하루에도 수십 가지씩 새로운 상상을 하며 끔찍해 몸서리칠 때도 여러 번. 어디서 강아지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오밤중에 슬리퍼를 끌고 나가보는 것도 예사가 됐다.
비가 그치고, 나는 남자친구와 매일 밤 전봇대며 담벼락에 전단지를 붙이러 다녔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다움이가 앉아 있던 텅 빈 쿠션이 왜 그리도 커 보이던지…. 물어뜯던 '개껌', 좋다고 몰고 다니던 '삑삑이 공', 주인 잃고 먼지만 쌓인 빨간 개밥그릇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을 돌리면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다움이가 팔짝 뛰어 올라와 꼬리를 흔들며 내 품에 안길 것만 같았다. 항상 침대 머리맡에서 내 머리카락을 밟고 잔다고 신경질을 부렸는데 다움이와 자리싸움을 하던 그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김없이 '내일 아침도 또 눈이 붓겠군….' 다움이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질 때면 베개는 그렇게 다움이가 없는 무게만큼 내 눈물을 머금곤 했다.
우산을 받쳐들고 다움이를 찾아다니다가 어디선가 다움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소리가 난 곳은 길 건너편 집. 아주머니는 담장에 가려진 강아지를 보여주지 않으려 하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음날 밤 남자친구와 나는 그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섰다.
'그 집 불이 꺼지면 대문을 열고 들어가 담장 아래에 묶여 있을 다움이를 구출해 내리라!'
떨리는 가슴으로 유난히 '삐기익~' 소리를 내는 철문을 1mm나 밀었나 모르겠다. 철문과의 사투 끝에 철문 사이로 낑낑대며 기어 나오는 뭔가가 보였다. '쿵쾅 쿵쾅….' 그러나 그것은 갈색 발바리…. 내 머리 위 파란 하늘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