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9회

등록 2004.11.05 07:42수정 2004.11.0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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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 장 태극산수(太極散手)

“도대체 그 자가 누구야?”


상대부는 엉뚱한 보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풍운삼절과 같은 인물들이 표사 따위에게 당했다니 믿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날아 온 전연부의 보고서에는 그의 머리가 빠개질 만큼 혼란스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음. 단순한 교도들의 움직임이 아닌 오랫동안 큰 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파악되며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보임. 손가장 내에 잠입해 있던 세명은 모두 사망. 그들의 무공 수위는 동(銅) 을급(乙扱) 정도로 고강함. 대책이 시급함.

- 대부의 의도를 빗나가게 한 담천의란 인물은 그 무공 정도가 추측불가의 고수임. 금비(金秘) 갑급(甲扱)으로 분류 요망.


이건 말이 안된다. 자신들이 인물을 평가할 때 금(金)은 최절정 고수를 일컬음이다. 거기에 비(秘)를 붙였으니 그의 정체나 무공 수위가 추측 불가함을 뜻한다.

게다가 갑급(甲扱)이라니….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도 모두 갑급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금의 갑급이면 그들 중 두세명 정도만이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청년을 두고 금비 갑급 분류 요망이라니….


“전영반의 눈에 뭐가 씌운 것 아니야? 뭘 봤기에 이러지?”

상대부는 들고 있던 수저를 놓았다. 관(官)이나 군(軍)에서의 식사는 일반인들보다 이른 시각에 들게 된다.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았는데 저녁 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전영반의 눈은 항상 정확합니다.”

상대부가 수저를 놓자 아쉬움은 있었지만 조궁(曺藭)도 수저를 놓았다.

“알지. 하지만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어. 은비(銀秘)에 갑급이나 을급이라도 혼란스러울 정도인데…”

상대부가 저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조궁은 생각했다. 자신이 보기에도 무리가 따를 만큼 의문이 있는 분류 요청이다.

“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며칠 내로 연락이 올 겁니다.”
“그래…. 그 조사 보고 다시 판단하지. 헌데 백련교도는 또 뭐야. 거기다 잠입해 있던 인물들의 무공 정도가 동 갑급이라니….”

혼란스러운 문제만 던져 준 전연부의 보고서다. 동의 갑급 정도라면 무시할 정도의 무공이 아니다. 한 지방 패주(覇主)는 못된다 하더라도 한 지방에서 이름 날릴 정도로는 충분하다.

“겨우 정보 수집을 위해 잠입해 있던 일개 백련교도가 그 정도라니…. 이거 미치겠군.”
“다른 쪽 보고서에서도 아마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이 파악된 것 같습니다. 안휘(安徽)나 절강(浙江)에서도 주시하고 있다 합니다.”

“선황(先皇)께서 다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살아났지? 이제 보인다는 정보는 그들이 나설 준비가 되었다는 뜻 아니야?”
“그렇다고 보아야지요.”

조궁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맡은 지역은 화북이다. 하지만 강남 쪽에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역시 백련교의 흔적을 찾고자 노력했었다. 그런데 바로 손가장에서 나온 것이다.

“손가장에 있는 천문십사령(天聞十四伶)에 따르면…”

조궁의 말을 상대부가 짤랐다.

“그 자는 또 뭐하고 있었던 거야? 삼년 동안 있었으면서 백련교도들의 움직임조차 알지 못했잖아.”

손가장 내에 천관의 조직원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삼년 동안이나….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가 그래도 전영반을 많이 도와 준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짓이지…. 발각이나 되면 어쩌려구….”
“뜻밖의 소득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손가장 내 숨어 있던 다른 곳의 정보원들도 일부는 파악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나름대로 큰 소득이지요.”

조궁은 전연부와 다르다. 전연부가 직접 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그에 대한 조사와 해결이 주특기인데 반해 조궁은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고 판단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데 소질이 있다. 그는 하나의 정보를 얻으면 발생 가능한 사건이나 문제를 열가지나 추론해 낼 수 있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대부는 조궁과 전연부를 데리고 있게 된 것에 대해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자춘(仔椿)에게서 연락이 있던가?”
“아마 내일 저녁쯤이면 북경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북경의 선대부(渲大夫)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구요.”

상대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선대부만의 도움으로는 얻는 게 별로 없을거야. 함어르신이 도와 주어야지.”
“함태감(咸太監)께는 이미 연락드리지 않았습니까?”

환관의 최고는 태감(太監)으로 중앙6부의 장(長)이오, 지방으로는 포정사(布政使)에 버금가는 최고의 직책이다. 영락제를 도와 황위 찬탈에 큰 공을 세운 정화(鄭和)는 색목인(色目人)이었지만 62척의 대선단(大船團)과 장병 이만팔천명을 이끌고 안남(安南) 등의 남해대원정을 이끌었던 인물로 그 역시 환관이고 태감이다.

“금의위의 군령부(軍令剖)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야 해. 조직과 인원….그들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자춘이 잘 해 낼 겁니다.”

상대부는 무엇보다 먼저 균대위의 일을 알아야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금의위의 군령부란 곳을 먼저 알 필요가 있었다. 균대위의 열쇠는 군령부가 쥐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서 자춘을 직접 북경으로 보냈던 것이다.

“균대위 일은 전영반이 금의위 출신이니만큼 전영반에게 맡겨. 자네는 그와 관련된 정보를 전영반에게 제공해. 그리고 자네는…”
“이미 조직을 가동하고 있습니다.”

조궁은 상대부가 잔소리하기 전에 미리 준비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오중회에 관한 보고였다.

“오중회의 움직임이 더욱 은밀해지고 있습니다. 다만 황실에 대한 반감(反感)은 이제 많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주요 인물들을 파악하고는 있지만 좀 더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직은 건들 때가 아니지.”
“헌데…”

조궁은 보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확신이 없는 추측을 보고 할때면 나오는 버릇이다.

“뭔데 그래?”

상대부의 재촉에 조궁은 입을 열었다.

“아직 정확한 것이 아니라서 보고 드릴 만한 것은 아니지만 강남 송가의 송하령 소저 말입니다.”
“이번에 서가화와 같이 움직이고 있지 않나?”

별 중요치도 않은 이야기로 사람 궁금하게 만드냐는 투다.

“이번에 대부의 지시로 강남서가와 송가의 자료들을 다시 분석하다 보니 어쩌면… 송하령이 귀진자(鬼珍子)의 진전을 이은 것이 아닌가 하는 흔적이 있습니다.”

“귀진자? 귀곡자(鬼谷子)의 일맥으로 선황이 건국하기 전 진우량(陳友諒)과의 강랑산(康郞山) 전투 때 동북풍(東北風)이 불 것이라고 가르쳐 주어 불리한 상황에서 대승을 거두게 했었다는 그 귀진자 말인가?”

주원장의 진우량과의 강량산 전투는 대형선단(大形船團)과 소선(小船)과의 전투로 주원장의 소선단은 진우량의 대형 선단에 비해 화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위력면에서도 절대 열세인 전투였었다.

헌데 이때 동북풍을 이용한 주원장의 군대가 화력을 이용해 움직임이 늦고 인접해 있었던 진우량의 대형 선단을 공격해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는 대명 전쟁사에 있어 기록될 만큼 소수로 다수를 대패시킨 유명한 사건이다. 이 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하여 주원장은 승승장구했고 대명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금비 무급(無扱)으로 분류된 인물이지만 사실 귀진자는 소문만 무성했지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은 극히 적지요.”
“귀진자가 확실하다면 가벼이 볼게 아니야. 선황 때에 귀진자를 모시고자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상대부는 각별한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오중회는 자네가 전적으로 맡아. 실수 없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송하령을 놓치지 말고 주시해 봐. 확인하라구.”

정말 귀진자의 진전을 이었는지 알아 보라는 뜻이다.

“예….”

상대부는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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