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돌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초당에 오르는 길은 많이도 변했다. 초당을 찾은 것은 지난 95년 여름 이후 두 번째다. 정류장에서 마을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농가에서 키우는 닭들이 보이고, 대나무도 보이는 시골마을의 풍경이 있었으나 이제는 관광지라는 느낌이 강하다.
마을의 끝자락에는 찻집과 식당이 들어서고 새로 건물을 짓는 공사도 한창이다. 하긴 정약용 선생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고, 남도 여행을 하는 사람치고 다산초당을 빼놓는 사람이 없을테니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세월에 대한 나그네의 섭섭함이 담긴 심술은 어쩌지 못하겠다.
나는 산의 초입에 있던 찻집을 찾았으나 폐가가 되었다. 그 집 안방에 앉아 차를 마시고 방명록에 글을 남기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하긴 "지아비와 자식새끼 데리고 잠시 쉬었다 갑니다"와 같은 문구가 있던 그 방명록을 읽어가며 차를 마시던 친구들도 세월의 그림자만큼 참 많이도 멀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찻집을 운영하던 이는 해남윤씨 문중 사람으로 집에다는 공부를 한다고 거처를 마련해 놓고는 어느날부터 찻집을 열어 집안에서 혼이 난 이후 빈집이 되었다고 한다. 초당을 찾는 나그네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대접하며 말벗이라도 되었던 그 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폐가가 된 찻집을 둘러본 나는 초당으로 향하는 산길을 올랐다. 돌계단 주위로 대나무, 삼나무, 소나무, 동백나무가 조화롭게 울창하다. 이 길은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조금 더 오르면 10년 전 나를 만날 수 있는 길이며 조금 더 오르면 200년 전 정약용을 만날 수 있는 세월의 길이다. 어느새 나의 발걸음은 10년 전 내 발걸음을 좇아가고 있다. 앞으로 가고 있는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고 호흡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