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52회

등록 2004.11.10 07:41수정 2004.11.1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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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진산진학은 검(劍)에 있다. 하지만 현진이 펼치는 태극십팔해만으로도 일절로 불리는데 조금의 손색도 없다. 담천의도 양팔을 빠르게 움직이며 현진의 태극십팔해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주로 현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되, 가끔 흐름에 따라 양손을 떨치며 미세하나마 공격의 흐름을 끊고 있다.

파다닥---!


이미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 현진은 손을 떨치며 이제는 수(手)에서 장(掌)으로 바꾸었다. 무당의 비기인 면장(勔掌)이다. 장풍을 실은 장법(掌法)이 아니다. 이것 역시 수공과 장공이 섞여있되 그 발경(拔經)의 목적은 타격이다. 부드럽게 시작되지만 타격되는 것은 모두 산산히 부셔 버리는 극히 파괴적인 성질도 있다.

공기를 찢을 듯 주위에 퍼져나가는 경력에 팽악과 두 여인은 이미 서너 발자국이나 뒤로 물러서 있었다. 점점 위맹해지는 현진의 공격을 보는 송하령의 얼굴엔 근심이 서려 있다. 분명 싸우되 싸우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녀는 아무 말하지 못하고 속내만 태웠다.

다른 사람들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손을 쓰지 않는다는 현진이다. 지닌 진산진학(鎭山眞學)을 보이지 않았던 그다.

무엇이 현진을 손 쓰게 했을까? 담천의는 더욱 가중되는 압력을 느끼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신형을 돌리며 기이한 각도로 찍어오는 현진도장의 쌍장은 이미 사방을 점하며 피할 곳이 없게 한다. 마주쳐 간 담천의의 팔과 허공에서 불꽃을 피어 내는 듯 했다.

타타--다 -- 닥---!


그의 쌍수가 현진의 쌍수와 부닥치며 마른 장작을 패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수법….”


한 마디 외치며 현진의 자세는 다시 태극십팔해가 펼쳐졌다. 허나 이번의 공격은 조금 전의 태극십팔해가 아니다. 그 위력이 주위의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하다. 더구나 태극십팔해 중 가장 파괴적이라는 항마혜시(降魔暳施)는 굉렬한 빛을 뿜으며 담천의의 전신을 휘감았다.

(대단하다!)

담천의도 엄청난 압력을 느끼며 두 팔을 내리누르고 기이한 각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으로 꺾을 수 없는 방향과 각도는 아주 자연스럽게 담천의의 몸에서는 가능했고, 현진이 뿜어낸 엄청난 압력은 마치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이 부드럽게 해소되었다.

“……!”
“……!”

현진은 별빛과 같은 빛을 내뿜어 마(魔)를 제압한다는 항마혜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움직임을 멈추고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복잡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얼굴빛은 수없이 변화를 일으켰다. 무언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다 그는 결국 담천의에게 묻고 말았다.

“무량수불… 태극산수(太極散手)가 맞소?”

전음(轉音)이었다. 담천의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현진이 그가 익힌 태극산수를 아는 것이 오히려 궁금했다. 태극산수는 무당과 관련이 있는 무공일까? 그러고 보니 자신이 깨달은 태극산수는 무당의 태극십팔해와 비슷한 점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들었소.”

그 역시 전음을 사용해 대답했다. 현진이 전음을 사용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들은 현진의 얼굴은 한순간에 수 차례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마음의 격동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없이 도호를 외었다.

“그렇구려. 바로 그것이었구려… 정말 그것이었구려….”

본시 무당의 무학이되 무당의 것이 아닌…. 무당의 조사(祖師)가 말년의 깨달음으로 창안했다는 것이되 무당에 물려주지 않은 비기. 이제는 모두 잊고 있지만 무당을 이어나갈 후인(後人)이라면 한 번쯤 사부께 들었던 절학.

그걸 무당의 것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걸 사조의 유학(遺學)이니 돌려 달랄 수 없다. 그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빈도는 태극산수를 보았으니 무당의 제자로 아마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일 것이오.”
“태극산수가 무당의 것이었소?”

“무량수불… 무당의 무학이되 무당의 것이라곤 할 수 없소. 담도우. 빈도의 청 하나 들어 주시겠소?”
“가능한 일이라면 따라야겠지요.”

“조만간 무당에 한 번 들러 주시오. 빈도가 성의를 다하여 모시리다.”
“별 말씀을….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소.”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무학의 본산 소림과 무당을 가보고자 한다. 그저 가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깨달음이 있다는 무림의 양대산맥이다. 그의 대답을 듣자 현진은 안심이라는 듯 얼굴색을 밝게 했다.

"고맙소. 허허… 빈도가 갑자기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오이다."

현진의 예에 담천의 역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물러 서 있는 송하령과 서가화 그리고 팽악은 느닷없는 현진의 공격에 의아했으나 살기가 배제된 공격과 수비에 마음을 적이 놓고 있었다. 서가화는 고개를 잘레잘레 흔들었다.

“저 인간… 확실히 달라졌어… 언니. 안 그러우?”

송하령은 잔잔한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끄떡였다. 안 그래도 그녀 역시 그렇게 느끼고 있는 터였다.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 그러니.”
“감싸고 돌기는… 저 인간이 모습을 보인 게 닷새 전이우. 그 전에는 같이 있었다고 해도 쳐다 본 적이 없으니….”

검절 양위헌을 베던 그때. 서가화는 담천의를 처음 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이전 열흘 동안 같이 있었다고는 쳐다 본 적도, 시선을 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검절이 언니를 공격하려하자 저 인간이 처음 제 모습을 보였지. 도대체 그것도 불만이야. 난 그래서 저 인간이 싫어.”

담천의 말만하면 트집이요, 불평이다.

“기껏 두 사람을 상대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나를 도와줄 생각은 없고, 언니가 잡힐 것 같으니까 진면목을 보일 게 뭐람.”
“하하… 사랑은 언제나 믿을 수 없는 힘을 주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팽악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쳇… 그럼 사랑만 하면 못 할 게 없군요.”
“하하… 그렇게 되나? 하지만 서소저도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렇게 될거요.”
“그러는 팽소협은 사랑을 해 본 것 같군요.”
“무슨… 큰일 날 말씀을… 이 팽모는 아직 사랑할 상대를 찾지 못했다오. 눈앞에 있는 것 같은데 워낙 가까이가기 어려워서….”

팽악하고 말을 나누다보면 결론은 한 가지다. 서가화는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말을 한 내가 잘못이지. 헌데 두 사람은 무슨 말을 하길래 저리 심각하지?”

현진과 담천의가 전음을 사용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말이었다.

“글쎄… 손속을 나누었으니 그와 관련된 것이겠지.”

송하령의 말에 서가화는 다시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그래… 하여튼 저 인간 닷새 동안 변해도 아주 많이 변했어. 이곳에 왔을 때까지도 그리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았는데….”

서가화는 지난 닷새를 생각해 보았다. 분명 담천의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변한 것 같은데 언제인지 그 시기를 정할 수 없다. 헤어진 후 다시 손가장에서 만났을 때 특별히 주시하지는 않았지만 변하기는 했다.

“맞아… 저 인간이 완전히 달라 보인 건 어제 저녁이야. 아침에 갈대인께서 준 탕약을 먹고 하루 종일 운기 중이라고 했지. 그 후에 완전히 달라졌어.”

서가화의 말에 송하령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그래도 그 내막의 일부는 안다. 귀진환의 약효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는 저리 변할 수는 없다.

“갈대인의 탕약이 희세의 영약이었나 보지.”

송하령의 장난스런 말에 팽악이 다급하게 물었다.

“정말 담형의 변화가 갈대인의 탕약 덕분일까요?”

아주 진지한 물음이었다. 그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서가화가 얼굴을 진지하게 바꾸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 인간 어제 먹은 게 탕약 밖에 더 있었나요. 그 뒤에 운기했다고 하고….”
“맞군요. 나도 담형이 처음 볼 때와 지금과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소. 헌데 그 이유가 갈대인의 탕약 때문이었다니….”

팽악의 진지한 말투에 서가화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호호…. 팽소협도 한 번 갈대인께 희대의 탕약이라도 지어 달라 보지 그래요? 세상에 탕약 한 그릇에 저렇게 변할 수 있다면 갈대인은 벌써 한 성을 살만한 돈을 모았겠네요.”

서가화의 말에 팽악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어떠한 영약이라도 단 순간에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약이란 시일을 두고 작용을 하는 것이지 단시간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갈유가 담천의에게 지어 준 탕약은 결코 예사 것이 아니었다. 영약이라 불릴 것은 아니었지만 영약을 흡수하고 그 효능을 배가시키는 묘약이었기 때문이었다.

(13장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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