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선생님 다 됐어요"

특수학교 장애학생을 둔 부모의 소망

등록 2004.11.15 14:03수정 2004.11.1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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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급에 다니는 장애학생들과는 또 다른 교육적 차별을 받는 특수학교의 장애학생들. 특수학급에 비해 중증장애학생이 많다는 특수학교의 교육실태는 어떨까. 지난 9일 직접 서울 은평구의 한 특수학교를 찾아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봤다.

현장실습수업-직업훈련 보조원 활동 '관례'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한순희(49)씨는 오늘도 현장실습수업 보조원으로 나섰다. 아무도 하라고 떠밀지 않지만 이제는 으레 일과 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특수학교 주요 수업 중 하나인 현장실습수업은 대형 할인마트나 공공장소 등을 견학하고 사회적응력을 기르는 수업으로 교사 한 명이 학생 8명을 관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씨도 처음에는 아들 이삭(16)군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한두 번씩 따라 나선 것이 어느새 관례가 돼버렸다.

이삭(16)군이 특수학급 교사에게 미술지도를 받고 있다.
이삭(16)군이 특수학급 교사에게 미술지도를 받고 있다.이지현
이군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경우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보조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 현장실습수업에서 어머니들 없이는 수업 진행이 힘들 정도다.

오전에 아이들과 함께 씨름하며 사회적응훈련을 마친 어머니들은 점심급식시간 동안 학교 내 휴게실에서 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거나 근처 식당에서 허기를 달래며 아이들이 수업을 마칠 때까지 다시 '대기'한다.

'어머니 휴게실'에 모여 있는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신변처리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자폐증세가 심해 수업에 지장이 있을 때마다 교실로 뛰어내려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3분 대기조'다.


"그 시간에 돈벌어야 아이 미래 설계할텐데…"

휴게실의 어머니들은 "우리도 돈벌고 싶다. 돈을 모아야 아이의 미래도 세워줄 것이 아닌가. 아이들을 기다리는 시간에 사회에 나가 돈을 벌면 여성 노동력도 살리고 가정경제도 살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데 정부는 왜 아직도 그걸 모르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씨는 "특수학교에 보조교사를 확대 배치했으면 우리가 이런 고생까지 안 해도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자기 자식이 수업 중 '혹시나 다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스러움에 보조원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아들이 제법 커서 거구로 나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로 보조원을 하고 있는 어머니들도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차다"며 "체격이 좋은 중등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남자 보조교사가 따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로 이군은 키 178cm에 몸무게가 85kg이다.

특수학교에서 부족한 것은 현장실습수업 보조교사만이 아니다. 한씨와 가깝게 지내는 한 어머니는 아들이 고등부에 다니면서 직업훈련보조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물론 직업훈련보조교사가 부족하기 때문.

어머니는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부터 어떤 장애를 보이는지 어떤 향상을 가져오는지 등에 대해 지켜보는 것까지 여느 보조교사 못지 않은 몫을 해내고 있다.

그는 "직업훈련보조교사가 없으니 우리 아이를 위해 하는 수 없이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학교에서 특수교육 전문교사에게 맡기고 사회로 나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마찬가지"라며 "하루 빨리 직업재활보조교사 수도 대폭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순희(49)씨가 아들 이삭(16)군의 가방을 들고 함께 하교를 하고 있다.
한순희(49)씨가 아들 이삭(16)군의 가방을 들고 함께 하교를 하고 있다.이지현
한씨는 이군의 수업을 마치면 쏜살같이 교실로 달려가 아들의 가방을 들고 허리띠를 움켜잡고 차로 직행한다. 혹시나 힘 좋은 아들이 어디로 튈지 몰라 허리띠를 꽉 잡고 차에 오르기까지 놓질 않는다.

한씨의 일과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군이 중등부에 올라오면서 치료교육을 그만두고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한씨의 일은 오히려 늘었다. 한씨는 "지능이 30도 안되고 사고나 행동은 2~3살 아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며 "학교에서 방과후수업이라도 하면 그나마 학교에서 시간도 보내고 치료교육도 받을텐데"라고 방과후수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과후수업은 다른 의미에서도 필수적이다.

한씨와 같은 중등부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우리 아이는 치료교육을 받기 위해 복지관과 사설기관을 찾아봤지만 어린이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므로 중고등부 장애학생은 어느 기관에도 쉽게 속하지 못해 치료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내 방과후수업으로 치료교육이 활성화 돼 중·고등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치료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에는 전체 학생 235명을 지도하는 치료교사가 모두 3명뿐이어서 일대일로 이뤄지는 치료교육이 아닌, 많은 아이들이 함께 하는 치료교육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많은 어머니들이 학교에서 치료교육을 받으면서도 또 다시 사설기관이나 국공립기관으로 치료교육을 받으러 다니고 있어 불필요한 사교육비가 낭비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장애아동을 위한 치료교육의 경우 언어, 물리치료를 제외한 심리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은 건강보험 혜택이 없다.

건강보험이 되는 언어치료가 7천원 정도인 데 비해 미술치료는 30~40분 수업에 적게는 2, 3만원부터 4, 5만원까지 부담한다. 그래서 장애아동을 둔 어머니들은 "장애학생 한 명은 웬만한 아파트인 셈"이라며 "사교육비로 적게는 2, 30만원 많게는 200만원 정도 든다"고 말한다.

한씨의 소망은 학교 졸업 후 주간보호시설과 그룹홈을 병행하며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사는 아들을 보는 것이다.

"시설의 경우 1달에 30∼45만원, 그룹홈도 20~30만원이 필요해요. 웬만한 경제적 능력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데 우리 아이도 학교 졸업 후 집안에서만 있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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