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모네가 반했다는 '우키요에' 여행

[서평] 고바야시 다다시 <우키요에의 미>

등록 2004.11.22 10:33수정 2004.11.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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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바야시 다다시 <우키요에의 美> 표지

고바야시 다다시 <우키요에의 美> 표지 ⓒ 이다미디어

'우키요에(浮世繪)'를 보면 일본인의 냄새가 난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살고 있다면 방 안에서 이런 냄새가 날 것이다 짐작되는, 식초 냄새 같은 것. 한 점만 보아도 그런 느낌이 드는데, 한꺼번에 60여점이나 되는 우키요에를 보고 나니 그런 느낌이 너무 확실하다.

우키요에에 관한 일본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고바야시 다다시(小林忠)의 설명에 따르면, '우키요에는 대도시에 사는 초닌(町人)들이 경제적인 윤택함에 싫증을 내어 자신들의 꿈과 동경을 그려낸 서민적인 미술이었다'고 한다.


'정치 권력은 가질 수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무가(武家)를 압도한 초닌층이 귀족 특유의 표면적인 표현이 아닌 인간적인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의지와 감정을 솔직하게 표명한 회화 예술'이었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더 나아가 국경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과도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미적 수준과 보편성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닌이란, 일본 근세의 사회 계층 가운데 도시에 사는 상인이나 장인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무사나 농민과는 구별되는 계층인 것이다.

우키요에에 관하여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잘 만들어진 책이 나왔다. 바로 고바야시 다다시의 <우키요에의 매력(浮世繪の魅力)> 번역서인 <우키요에의 미(美)>. 4×6배판 정도의 면적에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판형의 책인데, 각 페이지마다 좌우 여백에 정성껏 용어 풀이를 해놓았고 권말에는 '에도·에이지 연대 대조표'와 '찾아보기'도 친절하게 붙여 놓았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고바야시 다다시는 누구인가?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나 1968년 도쿄대 대학원 박사 과정(미술사학)을 마치고 나고야대 문학부 조교수와 도쿄국립박물관 정보조사실장 등을 맡았으며, 현재 가큐슈인대 문학부 교수와 지바시미술관 관장을 겸하고 있는 인물. 일본 근세 및 근대 미술사, 특히 에도 시대 회화 연구에 정통한 권위자이며 <에도 회화사론> <수묵화의 계보> <에도 우키요에 읽기> 등의 저서가 있다.

a <우키요에의 美>에 수록된 우스유키 모노가타리(작가의 견문과 상상을 기초로 인물, 사건에 관해 서술한 산문 형식의 문학작품)

<우키요에의 美>에 수록된 우스유키 모노가타리(작가의 견문과 상상을 기초로 인물, 사건에 관해 서술한 산문 형식의 문학작품) ⓒ 이다미디어

두 차례에 걸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피해 사실 때문에 일본이 싫다고 하여 일본의 예술 문화와도 벽을 쌓을 필요는 없을 터.

1995년에 일본에 건너가 가쿠슈인대 철학과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한 이세경은 대학 시절 사사했던 고바야시 교수를 통해 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인 우키요에에 빠져들었다.


2003년에 가쿠슈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서 현재 박사과정 중이며 에도 시대 채색 산수화를 공부하고 있는 이세경은, 고바야시 다다시에게 '한국어로 출판된 일본 미술 서적이 부족하여 미술을 애호하고 연구하는 지식인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정'을 알리며 한국어 출판을 적극 섭외하여 마침내 성사시켰다.

'꿈과 동경을 그려낸 서민적인 미술 우키요에와의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을 내는 뜻을 밝힌 고바야시 다다시는 책에다 이렇게 속내를 밝혔다.


'일본은 멀게는 고분 시대부터 조선의 선진 문화와 미술을 본받아 익혀 왔다. 근세에 접어들면서, 17세기 이후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에도(江戶) 시대(1603~1867)에 조선의 사절단 조선통신사가 쓰시마섬에서 에도(지금의 도쿄)까지 왕래하여, 공적 또는 사적으로 일본 문화인들에게 다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무렵 일본에서도 유행하고 있던 문인화나 서도의 휘호는 의뢰하는 이들이 쇄도하여, 사절단의 일행은 아주 난처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인보다도 한층 더 본격적인 중국풍의 사서화에 능했던 사절단에 대한 존경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19세기 중엽(에도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릴 무렵)에 일본이 구미 열강의 압력에 굴복하여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개국하면서부터 일본의 많은 문물이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는데, 여기에 포함돼 있던 이로즈리(色摺) 우키요에 판화와 스미즈리(墨摺)의 삽화 판본이 모네, 드가, 로트렉, 고흐 등 실험적인 인상파 화가들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우키요에에 감탄한 것은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점 처리, 빼어난 소묘력, 현대적인 화면 구성. 모네는 방 안을 가득 채울 만큼 우키요에 수집광이었으며, 고흐는 거의 표절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화를 남기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에서는 우키요에의 창시자인 히시카와 모로노부를 비롯한 거장 12인에 관하여 다루었으며, 2장과 3장에서는 각각 판화 우키요에와 육필 우키요에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a <우키요에의 美>에 수록된 우키요에파의 마지막 세대를 대표하는 가와나베 교사이의 육필 우키요에 '미인도'

<우키요에의 美>에 수록된 우키요에파의 마지막 세대를 대표하는 가와나베 교사이의 육필 우키요에 '미인도' ⓒ 이다미디어

이 책에 수록된 우키요에들을 보면서 나는, 앞서 얘기한 식초 냄새 외에, 여러 색채의 강렬함에서 비롯되는 산만함이나 요란함, 하나같이 눈꼬리가 치켜올라가 있고 볼이 넓고 풍성한 인물상에서 비롯되는 은닉이나 욕심 또는 능동성, 서민 풍속인데 어찌 저리 고급이냐 싶은 겉치레(유곽 기녀들의 치장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조선의 기생 모습과 비교해 볼 때 확실히 그렇다) 등을 떠올렸다.

조용하고 착하고 둥글고 편안한 인상을 주는 조선의 김홍도와 신윤복 풍속도를 떠올리면 더욱 그런 인상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된장국과 마늘과 김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런 점이 우키요에의 매력이라면 또한 매력일 터. 그만큼 화가들이 그 시대의 일본인 모습과 색깔을 잘 표현해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이따금 생선초밥을 먹고 싶고 요란한 음악에 취해 보고 싶을 때가 있다면 그것도 사람의 권리. 책 한 권을 통하여 그 시대의 일본 미인 여럿과 행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건 나에게 행운이었다. 이 책 속에 수록된 우키요에 속의 인물 가운데서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미인은 252쪽에 나와 있는 미야가와 초슌(宮川長春)의 '뒤돌아보는 여인(見返り美人圖)'.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은 매우 뜻깊은 사건이다. 앞으로 일본의 우키요에와 그 시대에 탄생한 한국의 풍속도들과 비교 연구하는 작업이 미술학계에서 활발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우키요에의 美 - 일본미술의 혼

고바야시 다다시 지음, 이세경 옮김,
이다미디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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