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8개월밖에 안 됐는데...

생후 8개월 유진이, 선천성무과립구증으로 투병..."골수이식 받지 않으면 4살 넘기기 힘들다"

등록 2004.11.22 14:59수정 2004.11.2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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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삼기면. 한적한 논길 깊숙이 자리 잡은 조그마한 마을 긴 담 집이 바로 유진이네다. 너른 마당을 지나 아담한 구옥으로 들어서니 유진이 부모 이재하, 최정희씨 부부의 환한 웃음이 반갑게 맞아준다. 희귀병을 앓는 아이의 부모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들 부부에게서는 행복의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결혼 1년 차 신혼임에도 시골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딸 유진이(8개월)가 아프기 때문이다.

몸상태가 좋을 때 유진이가 웃는 모습
몸상태가 좋을 때 유진이가 웃는 모습엄선주
누구나 돌이켜보면 신혼이라고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 특히 가진 것 없이 시작한 부부라면 더욱 그렇다. 이재하씨 부부도 결혼과 함께 시아버지가 대장암을 선고받았고 친형 보증을 섰다 빚까지 지게 되었다. 한 달 한 달 갚아가 이제 다음 달이면 청산한다고 좋아했는데… 그들 앞에는 더 큰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홉 달만에 태어나 보름간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유진이는 피검사 결과 백혈구의 일종인 호중구(중성구) 수치가 낮다는 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니 6개월간 지켜보자고 했지만 더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나빠졌다.

배꼽탈장으로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하길 3개월, 겨우 낫자 이번에는 머리가 포도상구균에 감염돼 7군데나 혹처럼 튀어나와 제대로 눕히지도 못했다. 그러길 5개월, 이제 다 나아가는데 이번엔 심한 감기로 숨도 제대로 못 쉬어 다시 병원에 가야 했다.

전북대병원에서 받은 최종 병명은 바로 선천성 무과립구증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관여하는 백혈구는 과립상태에 따라 무과립구(단구, 림프구)와 과립구(호중구, 호산구, 호염기구)로 나뉜다. 이 중 호중구는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에 1차 방어선을 구축하여, 병원체가 들어오는 길목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 호중구의 수치가 점점 줄어드는 병이 바로 유진이가 앓고 있는 선천성 무과립구증이다. 그래서 유진이는 미세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도 쉽게 감염되며, 작은 상처도 아무는 데만 몇 달 걸리는 것이다.

몸 상태가 좋을 때면 엄마 손을 끌고 한창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는 유진이. 하지만 문 밖으로 한 번 나갈 때마다 병을 하나씩 얻어오기에 유진이에게 외출은 사치다. 요즘은 심한 고열과 감기증세로 그나마 나가자고 엄마를 조를 힘도 없는 유진이다.


전북대병원에서는 "치료방법은 골수의식밖에 없지만 꼭 받을 필요는 없고 아이가 크면서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그 말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그러기엔 유진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머리에 포도상구균이 감염돼 붕대로 감은 모습. 배꼽탈장의 흔적도 보인다.
머리에 포도상구균이 감염돼 붕대로 감은 모습. 배꼽탈장의 흔적도 보인다.엄선주
"골수이식을 하지 않으면 4살 이전에 죽습니다!"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받은 첫 선고였다. 그리고 바로 입원하라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유진이의 경우 호중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단구 수치가 그리 낮지 않다고 했다.

장기입원을 하려면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 유진이의 경우 골수이식과 치료비로 7천만 원 정도 고액이 들기 때문에 친척들도 보증 서기를 꺼려했다. 이재하씨 부부는 자신들은 젊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헤쳐나가리라 수십 번 다짐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섰지만, 병원에 입원조차 시킬 수 없는 매서운 현실에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상태다.

8개월 유진이의 몸무게는 겨우 6kg. 백일된 아기보다 가볍다. 한창 기어 다니고 일어서며 걸음마를 시작할 시기. 그 작은 입술로 엄마 아빠 하며 품안으로 파고들 시기에 유진이는 고열에 시달려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다.

그저 더 이상 아프지만 않았으면, 그래서 더 춥기 전에 너른 마당에 나가 파란 하늘만이라도 맘껏 볼 수 있었으면…. 유진이 엄마 아빠가 바라는 너무도 소박한 꿈이다.

인연은 하늘에서 맺어준다
인터뷰 뒤안길

▲ 유진이네는 폐가나 다름없는 시골 빈집을 수리해 무상임대로 살고 있다. 마당 오른쪽에 조금은 허름한 듯한 구옥이 보인다.
유진이네 집은 원래 폐가나 다름없었다. 깨끗이 청소하고 손수 고쳐 살만한 집을 만들고, 난방비를 줄이려고 연탄보일러를 들여놓았다.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해 가장 싸게 부르는 곳에서 연탄을 주문했다.

연탄을 배달하는 아주머니가 트럭에 앉아있는 아저씨에게 물 한 컵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해 갖다드렸는데 그 아저씨 낯빛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그 아저씨는 얼마 전 간이식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바로 고석봉씨였다.

고석봉씨는 <오마이뉴스>(2004.7.5)에 사연이 알려지며 많은 네티즌과 각계의 도움으로 지난 7월 15일 간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현재 몸이 회복하고 있다.

유진이의 사연을 들은 고석봉씨 부부가 이해석 목사(희귀·난치질환자 후원회장)의 연락처를 주며 정 힘들면 찾아가 보라고 했던 것.

유진이 부모는 그 연락처를 받긴 했지만 연락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지 않고 부모인 자신들의 힘으로 어떻게든 유진이를 돌볼 수 있다는 젊고 기특한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원조차 시킬 수 없어 깊숙이 넣어놨던 연락처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고.

유진이 부모는 고석봉씨 부부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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