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경영권 보호, 무엇이 국익?

[토론회]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 보호장치, 이대로 좋은가'

등록 2004.11.25 22:02수정 2004.11.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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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이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상공회의소 회장이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종호


"경영권 보호가 정말 국익 차원이냐."

외국자본의 국내자본 잠식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국내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적자본 보호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반해 국적자본의 보호를 위한 무분별한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이 재벌개혁 논의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며 새로운 논쟁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25일 오후 4시부터 약 2시간여간 진행된 국회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 포럼(대표의원 정덕구)' 주최로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 보호장치,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박상용 증권연구원 원장은 "경영권 보호가 정말 국익 차원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경영권 보호장치 강화론에 제동을 걸었다.

a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상용 증권연구원 원장.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상용 증권연구원 원장. ⓒ 이종호

무엇을 위한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다급하게 재벌의 요구에 편승한다면 재벌개혁 논의는 물건너 갈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특히 외국자본에 의한 폐해가 다소 과장된 채 전달되고 있고, 폐해를 입증하는 근거 또한 과학적이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국내 주식을 가장 많이 오랫동안 보유하는 주체가 외국인 투자자라는 점, 그리고 외국인의 보유지분과 배당률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매우 낮다는 점 등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팩트라는 것.

역으로 그는 정치권에서 도입을 추진하려 하는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장치 즉 독약처방, 차등의결권 제도가 외국에서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경영권 방어장치인 피라미드 출자나 차등의결권 제도와 관련해서는 "지배와 소유의 괴리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소개했고, 독약처방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독약처방을 채택하는 비율이 감소하고 있고, 이를 채택한 순간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하락한다"고 전했다.


그는 "전체 주식의 1∼2%만을 가지고 있는 재벌 총수 일가족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이렇게 난리 치는 것이 맞는 거냐"고 반문하며 맹목적인 재벌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발제를 맡았던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의 시급성을 역설하면서도 구체적인 접근방식에 있어서는 조금씩 견해를 달리했다. 국내 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 금융사 의결권 제한 등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김애실 한나라당 의원)부터 경영권 방어조치와 재벌개혁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까지 다양했다.


첫 발제자로 나섰던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은 "적대적 M&A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키되 방어권도 같이 제시돼야 한다"는 전제하에 공시의무권 발동을 내용으로 한 '5%룰'의 강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5% 룰 제도의 문제점은 보유목적에 중요성을 안 두는 것에 있다. 5% 룰에 의한 공시의 주된 목적은 보유주식수와 보유비율을 정확하게 공시하는 것이다. 특히 보유목적의 허위기재 뒤 변경은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해석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펀드를 매개로 5%이하로 분산 매수할 경우 어떻게 대비할 수 있겠는가."

김애실 한나라당 의원도 '5%룰'의 개정에 찬성했다. 다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담긴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융사 의결권 제한이 폐지될 때 제대로 된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총제 유지는 외국 투자자본이 경영권을 위협할 때 백기사를 쓸 수 있는 방안을 없애는 것과 같다. 금융사 의결권 제한도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차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기금 투자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고 보는데 나도 그렇게 보긴 한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기업경영을 위협하는 세력이 돼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a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 이종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경영권 방어가 궁극적으로 한국경제의 구조적 개혁방향과 일치해야만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영권 방어 제도가 개선돼야 하겠지만 특정한 방향으로 한정되거나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가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액슨플로리오(Exon-Florio)법 도입을 통해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기관 또는 국가핵심기업 장악을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영권 방어를 이유로 재벌개혁에 역행하는 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우선 경영권 위기는 과장 없이 봐야 한다. 정부 수준에서는 과도한 소유제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엑슨폴로리오 규정이 그것이다. 은행산업이나 공공부문산업, 전략적 제조업 등 국가 핵심기업의 지분은 외국자본이 절반 이하로만 소유할 수 있도록 제한해야 한다. 노조에게 경영참가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서 함께 경영권 방어에 나설 때 보다 효과적인 다양한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은 경영권 방어장치는 주식시장에 줄 충격을 감안해 검증된 제도에 한해 제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보완, 영국식 의무공개매수 제도의 도입, 5%룰 강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를 통한 국내기관투자자 육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업집단의 단독 출자비율 또는 내부지분율이 70∼80% 이상인 회사에 대한 출자는 출자총액규제의 예외로 규정해야 한다. 또 주주그룹이 30%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게 되면 모든 잔여주식에 대해 공개매수 오퍼를 내도록 강제하는 영국식 의무공개매수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투명한 경영권 시장을 형성시키기 위해 5%룰에 의한 공시를 현재의 거래결제일 기준 5일 이내에서 체결일 이후 5일 이내로 당겨야 한다."

a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

시장경제와 사회안정망 포럼은 2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본시장 완전개방과 경영권보호'에 대한 토론회를 갖고, 경영권 보호장치에 대해 논의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 ⓒ 이종호

한편, 박병원 재경부 차관보는 외국자본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한결같은 우려섞인 발언에 대해 "국수적 태도로 돌아섰다는 인상을 해외에 비치면 좋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칫 "공들여서 투자유치를 하려고 노력하는데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박 차관보는 "외국자본을 타깃으로 논의가 출발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조심스레 경고하면서도, "다만 공격권이나 방어권 모두 동등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며 여지를 남겼다.

박 차관보는 "외국자본의 비율이 높은 것은 비판할 것이 아니라고 본다"며 지나친 경계심에서 벗어날 것을 충고했다. "외국사람들은 그토록 많이 투자할 정도로 우리 증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는데, 우리는 역으로 주식을 다 넘겨줄 정도로 소극적으로 했느냐를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영권 방어수단을 보강한다고들 했지만 방어권 수단으로 매우 효과적인 방안을 기업들에 주고 싶어하는 분은 없는 것 같다"고 여야 의원들의 발언을 요약한 뒤 "그 정도 보완으로 폐해가 막아지지 않는 만큼 차라리 국내투자자를 육성해 대항세력으로 만드는 길이 낫다"며 방어권 강화에 부정적인 속내를 내비쳤다.

"외국자본이 위험없앴기에 부실 은행 투자 가능했다"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 주장

▲ 윌리엄 오블린 주한 미상의 회장 대신 토론회에 참석한 제프리 존스 전 회장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날 토론회에는 윌리엄 오블린 현 미상공회의소 회장 대신 제프리 존스 전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이 토론자로 참석해 미국 재계의 입장을 대변했다. 유창한 한국어로 발제에 나선 존스 전 회장은 '외국인 지분의 증가는 곧 한국 경제의 큰 성공의 다른 표현'이라며 경계심을 늦출 것을 당부했다.

특히 그는 투기성 자본으로 평가받고 있는 론스타(외환은행 인수), 뉴브리지 캐피탈(제일은행 인수), 칼라일펀드(한미은행 인수)와 관련 "아마 2∼3년 전이었다면 이들 은행들은 리스크가 높아 팔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들 펀드들이 임시적으로 들어와 리스크를 없앴기 때문에 경영적 투자가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투기성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모투자펀드의 순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존스 전 회장은 또 "어떤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하고 도입을 해야 한다"면서 "만약 외국 투자에 겁을 낸 상태에서 제도를 만들면 국내 투자자는 물론 외국 투자자에게도 안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쥐락펴락 해온 국내재벌의 왜곡된 지배구조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존스 전 회장은 "IMF 당시 대부분의 기업이 주식은 별로 갖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은 계속 유지해 왔다"며 "그런 것은 투명성이나 공정성, 여러 면에서 큰 문제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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