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무덤 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명당의 제1조건은 잘 썩는 것, 도굴꾼들이 열심히 파봤자...

등록 2004.11.26 07:52수정 2004.11.2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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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왕비 공혜왕후 순릉의 능상과 석물.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 순릉의 능상과 석물.한성희
잔디가 누렇게 물들고 겨울이 완연해지자 능을 찾는 사람들도 뜸해진다. 지난 일요일(21일) 오후에 경기 군포에서 30여명 가량의 문화유적 답사반이 찾아왔다. 공릉으로 가다 보니 웬 사람들이 능상에서 우르르 몰려 내려온다. 능상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놨는데 막아놓은 줄을 들치고 내려오는 길이다.

"여긴 승낙 없이 올라가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관리소에 허락을 받아 동행해야 하는데요."
"죄송합니다. 석물을 보러 올라갔는데요."
"이제 순릉으로 가실 건가요?"
"네."
"그렇다면 제가 안내하죠."


능을 찾는 관람객이나 답사반들이 유의해야 할 일은 금지된 구역에 갈 때는 관리소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멋대로 올라가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하고, 멋대로 올라가다가 관람을 금지 당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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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인 목적을 가진 답사반이라면 허락을 받아 관리소 직원이나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고 올바른 문화유산 답사의 양식이다. 어린이들을 동행한 경우라면 볼썽사나운 제지를 받는 수도 있으니 절차를 밟아 편하게 답사하는 것이 바른 행동이다.

자신들은 석물 답사를 목적으로 왔으며 해설은 알아서 한다기에 그러라 하고 동행만 했다. 능에 올라서자 마음이 바뀌었는지 해설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내심 공릉에서 맘대로 올라간 행동이 좀 불쾌하기도 했기에 문화유산 답사의 예의를 주지시키려고 해설에 앞서 절부터 권했다.

순릉의 장명등과 석물.
순릉의 장명등과 석물.한성희
순릉의 조선 초기 석물에 대한 해설을 끝내자 영릉으로 가는 도중 질문들이 쏟아진다. 역시나 질문내용들은 마찬가지다.

"저 능 말이요. 그 속을 투사하는 기계장치라도 들이대서 땅 속을 한 번 들여다 볼 수 없을까? 뭐가 들었는지 한 번 보게."


땅 속을 투사해서 무엇이 들었는지 볼 수 있는 기계가 있다는 기상천외한 얘기는 처음 듣는다. 나이가 지긋한 분이었는데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니 우습기도 하고 얼마나 그 속이 궁금했으면 저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속에 왕관이나 보물 같은 건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아나요?"
"조선왕릉은 명당이라고 하죠? 명당의 조건은 잘 썩어야 하는 거구요. 조선의 왕릉에 넣는 부장품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지 다 알죠. 부장품들도 명당이라 수백 년 지났으니 거의 썩어서 없을 거구요."


이 질문을 했던 사람만 아니라 연재를 읽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도 부장품일 것이고, 언제 밝히는지 기다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밝히려고 한다.

국상이 나면 국장도감에서 명기를 만든다. 명기(明器)는 신명(神明)의 그릇이라 명기라고 하며 생전에 쓰던 물건들의 상징이라 일부러 거칠고 조잡하며 작게 만든다. 그러니 왕실에서 쓰던 훌륭한 명품 도자기라도 무덤 속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존호를 올릴 때 쓰는 옥보와 존호를 새긴 금보(금도장)를 싣는 책보요여.
존호를 올릴 때 쓰는 옥보와 존호를 새긴 금보(금도장)를 싣는 책보요여.한성희
그밖에 의류, 집기류, 무기류(왕비일 때는 넣지 않는다), 악기류, 지석 등 종류와 가짓수는 많지만 기대하는 금은보화 보물은 넣지 않는다. 값이 나간다면 금으로 만든 도장 정도랄까? 이것도 왕이 생전에 쓰던 커다랗고 호화스러운 옥새가 아니고 무덤에 넣기 위해 일부러 만든 작은 것이다. 국가의 상징이기도 했던 옥새는 왕이 죽으면 다음 왕에게 넘겨진다.

왕의 무덤에는 면류관을 넣지만 주재료는 비단인 증(繒)이고 오색 구슬을 매달아 늘어뜨린다. 그나마도 왕일 경우고 왕비일 때는 면류관을 넣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에 도굴 당한 왕릉은 더러 있었지만 애쓰고 파헤친 수고에 비하면 건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반우거
반우거한성희
국장도감에서 하는 일은 발인해서 장지까지 가는 동안 명기를 싣고 가는 가마인 명기요와 의복과 완구를 싣는 복완요여, 형을 싣는 향정, 책보의 요여, 소여, 대여, 반우거 등 가마들과 재궁(관)을 싣는 대여를 만든다.

또 국장행렬에는 소개, 소선, 홍개, 청선, 용선, 작선, 봉선 등 부채를 들고, 한, 필, 가서봉, 은립과, 은횡과, 금등, 표골타자, 용골타자, 등등 들고 가는 것이 많다. 은관자나 은우(은으로 만든 물 긷는 주전자) 등은 은으로 만들지만 말등자에 꽂는 금등(金燈)도 구리쇠로 만들어 도금한다.

위로부터 용마기, 백학기, 백택기.
위로부터 용마기, 백학기, 백택기.한성희
대여를 비롯해 명기와 부장품을 실은 가마도 여럿이지만 깃발을 들고 가는 이도 엄청 많다. 홍문대기, 군왕청세기, 천하태평기, 주작기, 청룡기, 백호기, 황룡기, 정축기 등등 헤아릴 수 없다.

국장행렬에는 5천명에서 1만명까지 장지로 따라간다. 조선의 인구가 많아야 6백만명에서 5백만명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고, 수많은 깃발(깃발과 은작자 은월부 등을 든 사람은 옷과 모자가 각각 다르다)과 대여를 비롯한 가마들과 장식한 말들, 방울을 쩔렁대며, 왕과 문무백관, 궁녀와 내시 등의 행렬을 상상한다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어두운 명계의 궁전이라 하여 광(무덤)을 현궁(玄宮)이라 한다. 산릉 부역에 동원된 백성은 군사라 하고 보름이나 한 달 치의 식량을 짊어지고 가서 일을 했다.

예종의 창릉 산릉부역에 동원된 군사가 7000명이었고, 세종의 천장에 부역꾼 5000명과 공장(工匠) 150명, 쌀 1323석 5되, 소금 41석 3두(斗)가 소요됐다고 기록은 전한다.

1674년 5월 28일 발인한 17대 효종의 왕비 인선왕후의 장례에는 광나루에서 한강 수로를 이용해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영릉까지 가는 도중 2박을 한다. 이때 쓰인 배가 150척이고 배를 모는 선군(船軍)이 3690명이었다.

6월4일 장사지냈는데 산역은 조선 팔도의 승을 징발해 3200명이 보름분 식량을 지참하고 일했다. 이때 산역 인원이 적은 것은 효종의 능이 이미 조성된 뒤라 정자각이나 비각, 재실 등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승을 산릉 부역에 동원하는 것은 농사짓는 철에 백성 동원을 하기 어려울 때이다.

장릉 병풍석과 밑의 박석(상석). 치마주름을 닮았다해서 상석이라 하며 화강암을 쓴다.
장릉 병풍석과 밑의 박석(상석). 치마주름을 닮았다해서 상석이라 하며 화강암을 쓴다.한성희
중종이 장경왕후와 함께 묻힌 것을 질투한 문정왕후 때문에 강남 삼성동으로 중종을 천장할 때, 백성들이 병풍석 등 석물 부역에 다치고 죽어 늦어지자 보우가 승을 5000명 동원해서 일을 마쳐 문정왕후의 환심을 샀다. 그렇게 천장한 중종의 정릉은 해마다 물난리로 쓸려 내려간 흙을 복토 하느라고 국고를 탕진해야 했고 질투 때문에 죽은 지아비를 옮긴 문정왕후는 그나마 중종의 곁에 묻히지도 못하고 태릉에 잠들어 있다.

거창한 국장이 끝나고 나면 재궁을 실었던 대여 등 가마들은 불사른다. 다만, 신하들이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불태우지 않는다. 그래서 국장이 날 때마다 국장도감에서 상여를 다시 만드는 일을 해야 했다.

조선의 국장제도는 태조 이성계가 죽자 처음 국장을 맞은 태종이 송나라의 제도를 도입해 확립한 것이다. 고려의 국장은 조선과는 달리 1개월 이내였고 2달을 넘긴 예가 드물었다. 정착하지 못한 신생왕국의 위엄과 기세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후 왕과 왕비는 5개월로 국장기간이 정해졌고 정4품 이상 사대부는 3개월, 그 밖의 사람은 1개월로 장례기간을 국법으로 정한 것이다. 대통령 중에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9일간 마지막으로 국장을 치렀다. 보통 3일이 현재 보편화 됐고 유명 인사들의 사회장도 5일을 넘기지 않으니 장례기간과 후손발복은 관계없는 일로 판명된 것이다.

"왕이니까 지금도 문화재청에서 지키고 돌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보다고 하자 박정상 소장이 한 말이다. 그렇게 많은 인력과 돈을 들여 조성한 왕릉은 남아있지만 이제 조선왕조는 사라졌다. 왕과 왕비가 아니라면 누가 국가에서 돌보겠는가. 후대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도 다른 이유는 없다. 다만, 왕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공릉 소나무 숲의 낙엽이 무심히 깔려 있다.
고요한 공릉 소나무 숲의 낙엽이 무심히 깔려 있다.한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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