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30일로 17대국회 개원이 6개월을 맞았다. 과거에 비해 정쟁은 줄었지만, 여전히 색깔론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등 구태에 젖어있다는 평이다. 사진은 지난 5월13일 의원연수도중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초선의원들.이종호
"국회에 들어가면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봤는데,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김형주 열린우리당 의원)
"밖에서 볼 때보다 의원들이 일은 많이 하는데 생산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것 같다." (진영 한나라당 의원)
17대 국회 개원 6개월째가 되는 지난달 30일. 299명의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감흥 없이 이날을 지나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임기의 1/8을 보내고 한해를 정리할 시점에 와 있지만, 민생개혁법안들의 처리가 줄줄이 지연되고 '구태 국회' 이미지를 씻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약속하며 국회에 대거 입성한 초선의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초선의원들의 비중이 3분의 2에 이른 만큼 이들이 정치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컸지만, 새로운 의원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유권자들의 실망감만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
일부 초선의원들은 여야의 가파른 대치전선에서 '돌격대'를 자임해 정치불신만 증폭시켰다.
무기력 넘어 '돌격대' 자임하는 초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두고있는 대변인 2명중 한 명은 여성 초선의원 김현미·전여옥씨가 맡고있다. 재선의 남성 대변인들(열린우리 임종석, 한나라 임태희)이 뒷짐을 지는 반면, 초선의 여성 대변인들은 네거티브 논평 공세를 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특히 전여옥 대변인의 독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지난달 12일 해외순방을 나가는 노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이 국내에 없어야 나라가 조용하다"는 논평을 발표했을 때는 지나친 인신공격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김현미 대변인은 박 대표를 '긴급조치 시대에 잠들었다가 깨어난 공주'에 비유하는 등 정국의 주요고비마다 야당 지도부를 겨냥한 논평을 발표하곤 하는데, 역시 초선의원이 네거티브 공세에 앞장선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많은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국회 대정부질문 막말 파문의 중심에도 초선의원들이 있었다. 특히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은 '대정부질문 = 대여공세의 장'이라는 등식에 집착한 나머지 여러차례 무리수를 범했다.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달 16일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80년 기자들이 해직될 때 MBC 기자였던 장관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여당 의원들의 거센 야유를 받았다. 같은 당 최구식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를 겨냥해 '무식하다', '꼴통'이라고 불렀고, 정두언 의원은 현 정부를 캄보디아 민중을 학살한 폴포트 정권에 비유했다가 마이크가 꺼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 총리를 단상에 불러세웠다가 그냥 들여보낸 한선교 의원의 돌출 행동도 '당리당략에 충실한 초선의원의 군상'에서 빼놓을 수 없다.
"헌재 결정은 사법 쿠데타"(이목희 의원), "관습헌법은 히틀러 이론"(김종률 의원 보도자료)이라는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의 주장도 대정부질문의 혼탁상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이다.
한때 호기를 부렸던 이들도 "초선들이 도리어 정치판을 흙탕물로 만든다"는 거센 여론의 질타를 받은 후에는 다소 수그러들었다. 주성영 의원은 대정부질문을 한 지 3일만에 각계원로와의 시국간담회에 나와 "탁류에 떠밀려 가는 가랑잎 같은 느낌"이라는 소회를 표하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때 일이라면 더 이상 할말이 없다"며 아예 인터뷰를 회피하는 의원들이 대다수이지만, 여전히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의원도 있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국회의원이 정부비판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 하다못해 의원들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 발언을 해도 면책 특권을 준다"며 자신의 발언중 마이크를 끈 국회의장에게 책임을 물었다.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초선 의원들의 행동에 대해 가장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은 초선의원들 자신이다.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초선의원들이 당의 방침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며 "당론 중심의 운영구도를 고착화시키려는 분위기를 제대로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처음에는 개혁을 얘기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분위기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당 주류에 줄서는 문화가 생기고 있다"고 개탄했다.
같은 당 진영 의원도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는 건지… 국회에서 의원들이 소리지르는 모습이 안스럽지만, 여야를 떠나서 그런 게 필요하다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 의원은 "일을 많이 하는 데 비해 의원들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한국 정치가 협조적이 아니라 너무나 대결적으로 흐르기 때문이다"며 "당 대 당은 물론이고 당내에서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버리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의원이라고 폼 잡지 않겠다는 나름대로 결심이 있었는데, 같이 있는 무리 속에서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다"며 "그동안 공항 귀빈실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동료의원들과 함께 있을 때는 혼자 그렇게 한다는 게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15·16대에 비교하는 17대는 그래도 양호한 편"
그러나 권력형비리 논란으로 연일 시끄러웠던 역대 국정감사에 비해 올해 국감이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진행되고,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의원들의 돈 씀씀이가 어느 때보다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이 초선의원들의 대거진출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아직 초반이지만, 15·16대에 비교하면 17대는 양호한 편"이라고 호평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 문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사고를 치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언론 보도가 이들을 부각시키는 바람에 대중들의 실망감도 배가되는 측면도 있다"며 정치인들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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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이 '막말국회' 주도... 그래도 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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