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준 소장인권위 김윤섭
그리고 오늘 20여년 전의 그 청년 원기준(43) 소장을 만났다. 토요일 오후 그는 카지노 리조트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강의를 막 마친 참이었다.
“카지노가 그렇잖아도 없는 이들의 재산을 탕진하는 장소가 되어 버린다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기업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들을 성심 성의껏 대해야 합니다. 기업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원 소장은 자신이 폐광지역에 있었고 그래서 이른바 강원랜드 특별법 제정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정부는 폐광지역을 대규모 고원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했다. 그 법에 따라 2000년부터 카지노가 운영되기 시작했지만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은 예상대로였다.
“하필이면 카지노냐”는 사회의 질문에 “오죽하면 카지노였겠느냐”는 대답을 한 사람들 중에 태백의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소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태백 선린교회 목사이기도 한 그를 가리켜 어떤 이들은 '카지노 목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프로그램 협의회' 일을 맡고 있다.
삶의 생기가 번쩍이던 탄광촌이 폐광이 되면서 서서히 황폐해지던 1990년대 당시를 이야기하는 원 소장의 목소리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선 주민들의 표정. 그들과 함께 원 소장은 어떤 문제에도, 난관에도 맞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역을 살려 보자는 소박한 뜻으로 당시 특별법을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 고장을 고원관광 휴양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카지노는 최선의 대안이 아니라 오직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었다는 대답에서 그의 깊은 고뇌를 감지할 수 있었다.
광산지역에 대한 원 소장의 관심은 총신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그는 광산지역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태백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지역사회 조사, 막장 견학을 통해 주민들과 만났다. 그때의 태백은 힘들긴 했지만 노동의 윤기가 흐르는 살아 움직이는 산업현장이었다.
매년 진지한 광촌 활동을 하던 그에게 이 지역 교회의 목사가 복지사업을 제안했다. 노동운동 현장을 물색하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원 소장은 태백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1980년대의 노동운동이 평탄했을 리 없다. 노동자 상담 등 주민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던 그는 폭탄테러단 혐의를 쓰고 보안대에 끌려갔다. 온갖 고초를 겪다가 1주일만에 무혐의로 풀려난 원 소장은 석방 이후 활동이 더욱 거리낄 게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1987년에 설립한 태백지역 인권선교위원회는 이 지역 최초의 인권단체이자 재야단체가 되었다. 산재상담, 해고자 문제, 탄광 내 노동문제를 고리로 노동운동을 엮어 내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1989년에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1년 반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그가 갇혀 있는 동안 세상이 탄광시대에서 폐광시대로 바뀌었다. 원 소장은 교도소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제는 노동자의 문제보다는 지역주민의 생존권 문제가 더 절실해요.”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으로 탄광인 지역사회와 만났지만 폐광이 되면서 자연히 운동의 내용과 성격이 바뀌었다. 지역운동이란 게 지역의 현안을 다루는 일이니 그때그때 새로운 일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당연히 가지에 가지를 달고 일이 늘어만 갔다.
“지역운동으로 방향을 돌리자 얼마나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아직은 카지노산업이 태백의 주요 경제동력이지만 원 소장은 결국 이 지역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가 바라는 변화의 지향은 바로 산업현장의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다른 나라의 폐광지역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해 왔다. 그 중에서 독일 루르 지역의 폐광지역 개발은 특히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