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탄광이 부끄러운 과거입니까?"

[인권이 만난 사람]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소장

등록 2004.12.03 10:07수정 2005.07.2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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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년 전 어느 여름날이었다. 푸른 새벽, 스무 살의 한 청년이 탄광마을 철암에 들어섰다. 그곳은 거대한 저탄장과 마을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서 집들이 산비탈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검은 산 검은 땅, 하늘도 검푸르렀다.


강원탄광 막장으로 난생처음 발을 들인 그의 눈에는 검은 땀으로 범벅이 된 육신과 고된 노동으로 충혈된 눈을 지닌 광부들이 그대로 와 박혔다. 그 순간 청년은 이들과 살며 한 삶을 살리라 맹세했다.

철암의 아름다운 청년

원기준 소장
원기준 소장인권위 김윤섭
그리고 오늘 20여년 전의 그 청년 원기준(43) 소장을 만났다. 토요일 오후 그는 카지노 리조트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서울에서 강의를 막 마친 참이었다.

“카지노가 그렇잖아도 없는 이들의 재산을 탕진하는 장소가 되어 버린다면 비극적인 일입니다. 기업은 피해자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들을 성심 성의껏 대해야 합니다. 기업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원 소장은 자신이 폐광지역에 있었고 그래서 이른바 강원랜드 특별법 제정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책임을 느끼고 있다는 말로 들렸다.


정부는 폐광지역을 대규모 고원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1995년 '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했다. 그 법에 따라 2000년부터 카지노가 운영되기 시작했지만 도박으로 인한 부작용은 예상대로였다.

“하필이면 카지노냐”는 사회의 질문에 “오죽하면 카지노였겠느냐”는 대답을 한 사람들 중에 태백의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소장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태백 선린교회 목사이기도 한 그를 가리켜 어떤 이들은 '카지노 목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지금 '도박중독 예방 및 치유 프로그램 협의회' 일을 맡고 있다.


삶의 생기가 번쩍이던 탄광촌이 폐광이 되면서 서서히 황폐해지던 1990년대 당시를 이야기하는 원 소장의 목소리에서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선 주민들의 표정. 그들과 함께 원 소장은 어떤 문제에도, 난관에도 맞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지역을 살려 보자는 소박한 뜻으로 당시 특별법을 제안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 고장을 고원관광 휴양도시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카지노는 최선의 대안이 아니라 오직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었다는 대답에서 그의 깊은 고뇌를 감지할 수 있었다.

광산지역에 대한 원 소장의 관심은 총신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대학 3학년 때부터 그는 광산지역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태백에서 여름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지역사회 조사, 막장 견학을 통해 주민들과 만났다. 그때의 태백은 힘들긴 했지만 노동의 윤기가 흐르는 살아 움직이는 산업현장이었다.

매년 진지한 광촌 활동을 하던 그에게 이 지역 교회의 목사가 복지사업을 제안했다. 노동운동 현장을 물색하던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원 소장은 태백을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러나 1980년대의 노동운동이 평탄했을 리 없다. 노동자 상담 등 주민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던 그는 폭탄테러단 혐의를 쓰고 보안대에 끌려갔다. 온갖 고초를 겪다가 1주일만에 무혐의로 풀려난 원 소장은 석방 이후 활동이 더욱 거리낄 게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1987년에 설립한 태백지역 인권선교위원회는 이 지역 최초의 인권단체이자 재야단체가 되었다. 산재상담, 해고자 문제, 탄광 내 노동문제를 고리로 노동운동을 엮어 내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1989년에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1년 반을 감옥에서 지내야 했다. 그가 갇혀 있는 동안 세상이 탄광시대에서 폐광시대로 바뀌었다. 원 소장은 교도소 안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이제는 노동자의 문제보다는 지역주민의 생존권 문제가 더 절실해요.”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으로 탄광인 지역사회와 만났지만 폐광이 되면서 자연히 운동의 내용과 성격이 바뀌었다. 지역운동이란 게 지역의 현안을 다루는 일이니 그때그때 새로운 일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당연히 가지에 가지를 달고 일이 늘어만 갔다.

“지역운동으로 방향을 돌리자 얼마나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아직은 카지노산업이 태백의 주요 경제동력이지만 원 소장은 결국 이 지역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가 바라는 변화의 지향은 바로 산업현장의 문화유산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다른 나라의 폐광지역을 부지런히 살피고 연구해 왔다. 그 중에서 독일 루르 지역의 폐광지역 개발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기준 소장은 철암 마을을 산업문화유산으로 가꾸기 위한 '철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철암마을 뒤편으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저탄장이 보인다.
원기준 소장은 철암 마을을 산업문화유산으로 가꾸기 위한 '철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철암마을 뒤편으로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저탄장이 보인다.인권위 김윤섭

“우리에게 탄광이 부끄러운 과거입니까?”

“낭만적인 산업문화유산으로 인식하고 있더군요. 물론 문화적인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그냥 그 흔적을 말끔히 지워 버리려고 하는 것과는 대조가 되지요. 흔적이라는 게 쉽게 지워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탄광이 부끄러운 과거입니까?”

보존해야 할 광부사택이나 탄광시설물을 순식간에 부수고, 고철로 팔아먹고, 일시에 쓸어버렸다. 속절없이 한시대가 사라져 버리는 게 안타까워 그는 '철암 프로젝트'를 세웠다. 다행히 아직 원형을 지키고 있는 유일한 마을인 철암을 그대로 박물관으로 만들 계획이다. 아날로그식 정감이 살아 있는 교육현장으로써, 건강한 대안적 관광상품으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그는 내심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탄광마을은 산업화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사연이 많은 지역입니다. 모든 국민이 연탄을 사용했고 연탄에 얽힌 애틋한 사연들이 결국 탄광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는 요즘 들어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사무총장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며칠 후에는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1997년에 태백시와 함께 북한에 석탄 보내기 운동을 시도했지만 석탄이란 게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있는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지요. 올해 대한석탄공사와 연탄보내기운동을 시작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국내에서 많은 조직과 단체가 도움을 주고 해외에서도 정성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연탄의 따뜻한 희망을 남북한 모두에게

원기준 소장은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본부'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원 소장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연탄을 나눠주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원기준 소장은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 운동본부' 사무총장도 맡고 있다. 원 소장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연탄을 나눠주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인권위 김윤섭
'서민연료'인 연탄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이웃간의 사랑을 나누고, 남북간에는 동포의 민족애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로서로 '언제 한번 뜨거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물론 탄광지역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태백과 삼척에 탄광이 남아 있습니다. 연탄소비도 많이 늘어난다면 지역경제도 살아날 수 있겠지요. IMF 이후 연탄이 조금씩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연탄은 석유연료보다 1/3~1/5로 연료비를 줄일 수 있거든요. 연탄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연탄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된다는 사실은 탄광지역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중에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밖은 벌써 많이 어두워졌다. 네다섯 시간을 달려 다시 철암으로 돌아가야 하니 시간이 빠듯했다. 부인은 특수교육을 전공했으며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 태백장애아동 조기교실을 실질적으로 맡아 왔다. 원 소장의 부인이니 했을 일이다.

원 소장의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매우 훌륭한 팀을 만들어 탄광촌의 아이들로 건강하게 커갔다. 옷을 모두 내려 입고 얻어 입힐 수 있으니 그렇다는 말이다. 철암에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는 정겹고 따스할 것 같다. 하지만 지역에서 그는 여전히 외지인이며 국가보안법 위반자라는 딱지가 붙어 있어 툭하면 험담의 빌미가 된다.

“하하하… 특히 선거철이 되면 더한 것 같아요. 일하는 것은 재밌는데 제 뜻이 왜곡되는 게 힘들지요. 그러나 유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합니다. 내 철학과 생각으로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지요.”

원 소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시대 그 사회의 평균을 넘어가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결론은 그 평균 수준을 어떻게 올리느냐가 관건이지요. 일시적으로 어떤 멋진 일을 달성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평균 수준을 맞추지 않으면 허사가 되고 맙니다. 끊임없이 교육하고 계몽하고 훈련하고 역사와 사건을 통해서 공동의 경험을 가지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 같아요.”

그는 열정과 이성을 고루 갖춘 침착한 지역운동 전문가였다. 새삼 앞으로 그의 활동이 더욱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자신의 터전을 향해 밤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원 소장은 또다시 스무 살 그때의 마음으로 다시 철암의 새벽을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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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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