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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건조물침입범이 있다. 아니다. 오래 전에 건조물침입범이었던 자가 있다. 어찌어찌하다 이 자가 '건조물침입'이란 죄명을 얻은 것은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다. 결국 벌금 기십만 원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다른 수많은 생의 중요한 장면들이 지워져 가는 동안에도 이 일은 조금도 지워지지 않고 기억 한 귀퉁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자가 건조물침입범이 된 사연은 이렇다. 십수년 전, 어떤 공장에 들어가서 일하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것은 물론 이 자의 말일 따름이다. 그를 건조물침입죄로 기소한 검사의 어순은 달랐다. 이 자는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공장에 들어가 일했다.
그리고 지역 노동조합의 협의체에서 조직부장인가 뭔가 하는 자리를 맡은 것도 사실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자가 하는 일은 그 지역에서 노동조합을 새로 조직하고, 조직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화근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자가 다녔던 공장 인근에 있는 노동조합에서 파업농성이 벌어졌다. 회사가 노조 간부들을 차례로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조직을 맡고 있던 이 자가 그 노동조합의 전화를 받고 달려갔을 때 회사 마당에서는 농성중인 조합원들과 그들을 해산시키려는 관리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자는 함께 달려온 이웃의 다른 노동자들 앞에서 핸드마이크를 잡고 농성중인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그 회사의 관리자들은 고발을 하겠다며 사진을 수없이 찍어댔다. 이 자가 황당한 일을 당한 건 김포공항에서 이륙 대기중이던 비행기 안에서였다. 고향의 절친한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거금을 들여 비행기를 탔던 이 자는 기내에 들이닥친 일단의 보안요원들에 의해 연행되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연행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연행되면서 그는 온갖 상상을 했다.
그 시절만 해도 연행되는 자들은 자신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지 못했고, 무슨 사니 무슨 분실이니 하는 곳에서 국가보안법의 어느 조항을 이마에 붙이고 나오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호실에 격리된 채 방치되었던 이 자는 이틀 뒤에야 자신이 찾아갔던 그 회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동쟁의조정법상의 제3자 개입 금지법 정도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이 따위 한심한 일로 비행기까지 타며 가려고 했던 친구의 결혼식이 치러질 동안에 보호실에 갇혀 지낸다는 게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이 자에게 씌워진 죄목은 예상했던 대로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이었다. 이 자는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법조항이라며 잘난 체를 하였다. 그렇지만 '헌법소원'이란 것은 아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이 자는 자신의 행위가 헌법이 보장된 집회와 결사, 언론의 자유에 입각한 것으로 범죄행위가 아니지만 조사관이 제시한 '사실' 대부분은 '사실'임을 인정했다. 이미 폐지 논의가 일고 있던 그 위헌적 제3자 개입 금지조항에 의하면 자신의 행위가 위법에 해당한다는 사실에는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에 대한 노동청의 조사가 끝나고, 검사의 지휘를 받던 중에 다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었다. 건조물침입죄였다. 검찰청 수사과정에서 이 자는 검사와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
"위헌적 법률이지만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은 동의한다. 그렇지만 건조물침입죄는 말이 안 된다."
"회사의 소유자인 사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그 공장에 들어가서 노동쟁의에 개입했으니까, 노동쟁의조정법과 함께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할 수 있다."
"나는 공장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개입했다면 공장 문 앞에서 개입한 것이다."
당시 젊었던 이 자보다도 더 새파란 나이의 검사는 1보 침입설이라는 걸 내세우며 증거를 제시했다.
"자, 봐라."
검사가 내민 사진 속에서 이 자는 정문에 서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래. 여기가 정문인데 어딜 침입했다는 것인가."
"발이 놓인 위치를 잘 봐라. 발이 철문의 어느 쪽 레일을 밟고 있나?"
그 공장의 철문은 두 줄의 레일이 달린 미닫이 형태였다. 이 자가 딛고 선 레일이 안쪽 레일이니까 1보 침입을 한 것이고, 따라서 건조물침입죄가 성립된다며 검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입법취지라는 게 있다. 지금 이게 건조물침입죄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건가?"
"그렇게 똑똑한 자가 왜 공장에나 다니고 있나."
이 자를 기소하면서 검사는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은 아예 빼고 건조물침입죄만 적용했다. 문학을 공부하다, 그것도 학교를 다니다 말고 공장에 다니는 자가 이십대에 고시를 통과한 '영감님'께 감히 따지고 들며 법리논쟁을 하려고 든 괘씸죄였을 것이다. 그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것은 법을 적용하는 그 검사의 악의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양심수 냄새를 풍길까 싶어 '쟁의조정법'이라는 죄명의 병기까지 포기하며 파렴치범의 인상만 안겨 주는 '건조물침입'만으로 기소한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이 자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십수년이 지난 올해, 이 자가 발급받은 신원조회서의 전과 기록란에는 '건조물침입'이란 글자가 여전히 뚜렷이 찍혀 있다. 이 자의 인생에 그 글자를 찍어준 그 '영감님'은 지금 어떤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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