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사명으로 고문까지 각오했지"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 태백산맥 조정래 작가 인터뷰

등록 2004.12.06 12:10수정 2004.12.0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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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
조정래 작가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감히 대문호에게 '용감무쌍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겪게 될 어려움을 뻔히 알면서도 작품을 쓴, 그리고 쓸 수밖에 없었던 선생에게.

<아리랑>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 이 세 작품을 퍼내면서 선생은 '국가보안법'의 이름 아래 온갖 고초를 겪었다. 고문을 각오하지 않고 어떻게 쓸 수 있었겠냐고 반문하는 선생은 애당초 아내의 동의까지 구했다.


"반드시 위해를 당할 것 같은데 제대로 견딜 수 있겠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작가가 쓰고 싶은 것을 써야지요. 견딜 수 있습니다'하더라고. 뭐, 내가 장가를 잘 간 거지."

우스개 소리도 넌지시 던져보지만 사실 '불덩어리 속에 휘발유통을 들고 뛰어드는 것'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당시에는 빨치산이라는 말도 하면 안 됐어."

더욱이 빨치산과 취재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았다.

"나를 안 믿어줘. 하도 당했으니까. 다시 한번 찾아가 보면 죽어 있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을 사람을 찾기도, 듣기도 어려웠던 그 때, 백사장 속에서 낱알 줍듯 그렇게 이야기 거리를 모아 쓴 것이 태백산맥이었다.

"빨치산이 악마나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의아스러웠다.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느니 집을 폭파시키겠다느니 갖가지 종류의 공갈협박에, 매일 당하는 감시에 맘 편할 날 하루 없었던 선생이었다. 그런 선생이 온갖 고난을 버텨내고 소설을 쓴 이유가 그것이라니.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 그가 소설을, 창작을 할 수 있는 원동력임을 알게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생은 어떤 사회이든 모순은 있기 마련이요, 그 시대의 모순을 진실하게 쓰라는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은 자가 바로 소설가라 했다.

"고민도 많이 했어. 척박한 역사의 땅에, 왜 한반도에 태어났을까. 서러운 역사를 가진 이곳에, 왜 하필 문학을 하게 되었나.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써야 하나."

그래서 선생은 역사를 복원한다.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사상 활동을 했어야 했는지도, 청산리 전투가 김좌진 장군 혼자만의 업적이 아닌 홍범도 장군과의 공동업적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은가. 이유는 하나, 역사가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기록되지 않은 기록이 많아. 역사학자들이 진실을 밝히지 못했지. 끌려가니까. 그런데 그건 직무유기에요."

강조해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서렸다.

"평론가들은,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 이상은 안 해. 소위 반공법에 위반되거든."

하지만 선생은 그럴 수 없다. 잘못된 역사에 대한 묵인은 그의 사명이, 소설가의 사명이 용납하지 않는다. 비록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한이 있더라도.

"역사라는 것은 사건 중심, 지배자 중심의 기록이잖아. 하지만 문학은 시대를 총체적으로 바라봐야 해."

때문에 민중들의 입장에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긍정을 가지고 다시 한번 역사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그 시대에 조명 받지 못한 민중들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민중 개개인의 특수한 체험부터 민족사의 쓰라린 체험까지 모두 아우러져 있는 것이다.

선생은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청산할 수 있는 4대 입법이,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는 여론의 반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불황은 그냥 불황일 뿐이야. 그런데 60%가 넘는 서민들에겐 생존권이 달린 문제지. 그런 사람들에게 국보법은 다른 얘기야."

때문에 선생은 경제회복이 최우선이요, 그 동안은 국보법 폐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국민에게 선전하는 과정 없이 폐지부터 강조한 것이 조금 시급했다고, 공감대를 만들어냄으로써 국보법 폐지에 힘을 실어 보자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대결과 갈등의 역사가 화해와 협력, 통일의 역사로 가고 있어. 세계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한 거야. 그런데 국보법을 적용하는 것은 이제 와서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리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선생은 우리의 문화가 변화발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국보법이 제 아무리 날뛰더라도 소설가로서 그의 사명을 접을 수 없었던 게다. 탈골의 아픔을 감내하며, 국보법이라는 장벽에 굴하지 않고 우리 역사를 다시 세워 놓았던 선생. 이제 그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것, 이것이 바로 선생의 소설, 그리고 창작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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