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이해찬 국무총리의 사과 방문을 받고 7일동안 계속한 국회 본관앞 단식농성을 중단한 권영길 의원이 국회앞에서 열리는 민주노동당 총진군대회에 참가해서 당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권영길의 농성정치
여전히 아침부터 수많은 국회의원들, 장관들이 왔다갔다하면서 농성장에 들려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간다.
한 국회의원은 지나가면서 "아침 문안인사 드립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어느덧 권영길은 모든 국회의원들이 매일 아침 만나 인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부지런하다. 거의 매일 제일 먼저 오는 것 같다. 그는 권 의원에게 "왜 이렇게 정신적 고통을 주십니까"라는 말을 던지고 갔다.
사람들이 올 때마다 권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하는데 워낙 인사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옆에 있던 한 보좌관은 "권 의원이 너무 앉았다 일어났다 해서 관절염 걸릴까 걱정이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부담때문에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 386의원들 중에는 권영길 의원 때문에 정문으로 드나들기 부담스러워 뒷문으로 다니고 있다고 사석에서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공무원 노조 국회본부 관계자들도 들렸다. 그들은 "저희들 때문에…"라고 송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권영길 의원이 큰소리로 말했다. "기죽으면 안돼!"
오후에는 김문수 의원이 들렸다. 권영길과 김문수, 두 사람의 대화는 옆에서 보기에 동문서답 같았다. 김문수 의원이 먼저 달려오며 말했다. "형님! 이 명당 자리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영길 의원이 대뜸 말했다. "빨리 입당해!"
김문수 의원은 권의원 말에는 아랑곳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남북관계 발전 기본법도 처리해야 하는데….”
“빨리 입당하라니까. 민주노동당 집권하기 전에.”
“이 총리가 사과 안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빨리 입당해.”
이재오 의원도 왔다. 이재오 의원은 오자마자 한나라당이 권 의원 농성에 통 관심이 없다며 한나라당 대변인실에 전화를 했다.
"아니 대변인실 ! 이런 걸 가지고 논평을 내야지 뭐 하는 거예요!"
그렇게 이재오 의원이 약간 오바하고 있는 사이에 권 의원이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웠다. 그러자 결과적으로 농성장에는 이재오 의원이 혼자 앉아있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이재오 의원이 단식중인 걸로 오해하기 십상인 장면이었다. 실제로 일부 보좌관들이 지나가면서"혹시 이재오 의원이 릴레이 단식하는 겁니까"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이재오 의원은 "릴레이단식 아닙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국방문제에 관한 강경파로 유명한 송영선 의원도 왔다. 송 의원은 "색깔은 다르지만 존경합니다. 사석에서 오빠라고 부릅니다"라는 말을 하고 갔다. 이규택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얘기해야겠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김무성 의원도 왔었는데 때마침 옆에 있던 심상정 의원을 가리키며 "우리 심 의원 상임위 빠지면 안 됩니다"라고 권 의원에게 강조했다. 일찌감치 농성이 민주노동당 전체로 확대되는걸 경계한 셈.
가만 보니 어느덧 국회 현관 앞, 권영길 의원의 농성장이 또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거점이 되고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평 남짓한 작은 농성장 위로 국회의원, 장관부터 노동자, 사회운동가, 당원들이 지나가면서 각종 정보와 의사소통이 모이고 있었다. 농성이 빨리 끝나길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과 권 의원의 건강을 걱정하는 근심도 쌓이고 있었다.
바로 이 공간에서 가만히 앉아 국회 모든 상임위 소식을 알 수 있었고 신문을 보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모든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 공간에서 만큼은 모두가 동지였다. 하루속히 어둡고 고통스런 시간이 끝나길 바라는 공통의 염원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뜨거운 연대가 싹트고 있었다.
권영길의 농성이라는 하나의 지점으로 지지기반과 정보와 소통과 희망이 모두 집중되는 고도의 정치적 근거지가 형성된 것이다. 가히 '권영길의 농성정치'라고 부를 만 했다. 농성 3일째, 다시 또 깊은 밤이 찾아왔을 때 권영길 의원은 어느덧 '국회 밖의 국회의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발을 씻었다. 국회의원과 함께 자는 동침조 편성 과정에서 수석보좌관이 코를 많이 곤다는 이유로 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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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의원 "앗, 릴레이 단식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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