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7일 국회 당의장실에서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당은 어제 법사위에서 상정된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고개를 숙인채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이 7일 국가보안법 폐지안에 대한 연내 처리 방침을 전격 유보한 것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당·정·청 회동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 처리를 내년으로 유보하고 언론개혁법 등 3대 개혁입법 등은 합의 처리한다는 '3+1'안을 제시한 바 있다. 천 원내대표는 이에 앞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을 별도로 만나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천 원내대표의 제안은 다음날인 28일 상임중앙위와 기획자문위원단 심야 연석회의에서 임채정·장영달 의원 등 당 중진들의 문제제기로 제동이 걸렸다. 이들 중진 의원들은 "뭘 했다고 유보냐"며 "(국보법 폐지안 처리) 시도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강하게 피력했다. 당내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중진들은 천 원내대표의 제안을 전면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당 안팎의 개혁 지지층에게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6일 국회 법사위에서 한나라당과의 몸싸움을 벌인 끝에 국보법 폐지안을 기습 상정한 것이 바로 당 중진들이 주문한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에 대한 '의지'였던 셈이다.
다만 국보법 폐지안 기습 상정 과정에서 빚어진 상정 무효 논란과 "국보법 논의 중단"을 요구한 김원기 국회의장의 중재가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 선언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천 원내대표의 '유보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보법 폐지안 상정 이전부터 (유보 선언을) 검토해왔고, 특히 어제 법안이 상정된 뒤 김원기 의장을 찾아뵙고 논의했다"고 전했다. 당의 한 관계자도 "이대로 가면 보수 언론에서 연일 상정 무효 논란을 대서특필 할 게 뻔한 상황 아니냐"고 우려했다.
6일 기습 상정은 폐지에 대한 의지 표현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 처리를 뒤로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처리 유보'로 또 다른 명분 찾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책임있는 집권여당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부영 의장도 천 대표의 유보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가보안법 폐지의 실현 가능성과 야당의 역량, 산적한 민생관련 법안 등을 전체적으로 저울질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여야 논의가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당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국보법 폐지에 대해 온몸으로 막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3대 입법은 물론 민생·경제법안도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나라당이 국보법 폐지안을 철회하면 다른 것은 모두 상정,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 판에 국보법 폐지안 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가 열린우리당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는 말이다.
천 원내대표가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 선언을 임시국회와 연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병두 기획위원장도 "오늘 천 대표의 유보 선언은 임시국회를 열기 위한 명분용"이라고 말했다.
국보법 폐지안의 처리를 내년으로 미루는 대신, 임시국회를 소집해 민생경제 관련 입법과 상임위에 계류된 사립학교법 개정 등 3대 개혁법안은 국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가급적 연내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