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왜 폐지안 유보 카드 내놨나

[분석] 예고된 수순... 한나라당 임시국회 소집 응할까?

등록 2004.12.07 21:18수정 2004.12.08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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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7일 국회 당의장실에서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당은 어제 법사위에서 상정된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고개를 숙인채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7일 국회 당의장실에서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당은 어제 법사위에서 상정된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연내 처리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고개를 숙인채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이 7일 국가보안법 폐지안에 대한 연내 처리 방침을 전격 유보한 것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당·정·청 회동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 처리를 내년으로 유보하고 언론개혁법 등 3대 개혁입법 등은 합의 처리한다는 '3+1'안을 제시한 바 있다. 천 원내대표는 이에 앞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을 별도로 만나 이에 대한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천 원내대표의 제안은 다음날인 28일 상임중앙위와 기획자문위원단 심야 연석회의에서 임채정·장영달 의원 등 당 중진들의 문제제기로 제동이 걸렸다. 이들 중진 의원들은 "뭘 했다고 유보냐"며 "(국보법 폐지안 처리) 시도는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강하게 피력했다. 당내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중진들은 천 원내대표의 제안을 전면 반대한 것이 아니라 당 안팎의 개혁 지지층에게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에 대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6일 국회 법사위에서 한나라당과의 몸싸움을 벌인 끝에 국보법 폐지안을 기습 상정한 것이 바로 당 중진들이 주문한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에 대한 '의지'였던 셈이다.

다만 국보법 폐지안 기습 상정 과정에서 빚어진 상정 무효 논란과 "국보법 논의 중단"을 요구한 김원기 국회의장의 중재가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 선언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민병두 기획위원장은 천 원내대표의 '유보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보법 폐지안 상정 이전부터 (유보 선언을) 검토해왔고, 특히 어제 법안이 상정된 뒤 김원기 의장을 찾아뵙고 논의했다"고 전했다. 당의 한 관계자도 "이대로 가면 보수 언론에서 연일 상정 무효 논란을 대서특필 할 게 뻔한 상황 아니냐"고 우려했다.

6일 기습 상정은 폐지에 대한 의지 표현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국보법 폐지안 처리를 뒤로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처리 유보'로 또 다른 명분 찾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책임있는 집권여당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부영 의장도 천 대표의 유보 선언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가보안법 폐지의 실현 가능성과 야당의 역량, 산적한 민생관련 법안 등을 전체적으로 저울질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여야 논의가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당 원내대표실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국보법 폐지에 대해 온몸으로 막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3대 입법은 물론 민생·경제법안도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나라당이 국보법 폐지안을 철회하면 다른 것은 모두 상정,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 판에 국보법 폐지안 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가 열린우리당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는 말이다.

천 원내대표가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 선언을 임시국회와 연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병두 기획위원장도 "오늘 천 대표의 유보 선언은 임시국회를 열기 위한 명분용"이라고 말했다.

국보법 폐지안의 처리를 내년으로 미루는 대신, 임시국회를 소집해 민생경제 관련 입법과 상임위에 계류된 사립학교법 개정 등 3대 개혁법안은 국회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가급적 연내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7일 오후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임시국회 개회 제의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이제 와서 임시국회열자는 것은 후안무치"라며 거부했다.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7일 오후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임시국회 개회 제의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이제 와서 임시국회열자는 것은 후안무치"라며 거부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당내 개혁파들도 '개혁 후퇴가 아니냐'는 우려를 하면서도 당 지도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다는 분위기다.

국보법 연내 폐지를 주장하는 '아침이슬' 모임의 노영민 의원은 "연내 처리를 유보한 것은 안타깝다"면서도 "당 지도부의 입장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의 막무가내식 대안없는 반대에 대해서 당 지도부가 대응책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386 의원 모임인 '새로운 모색'의 우상호 의원은 오히려 "날치기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법사위에 폐지안을 상정했기 때문에 폐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시민단체 등이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우리 당에게 '왔다갔다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서운하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국보법 폐지안 유보 선언은) 임시국회 협상의 장에 한나라당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 아니겠냐"며 "과반수만 넘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정말로 산 넘어 산이다"고 토로했다.

법사위에서 국보법 폐지안 상정에 선봉장 역할을 했던 선병렬 의원도 "어제 그렇게 몸싸움을 했던 것은 국보법 폐지안을 무리하게 강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다"면서 "현실적으로 연내 강행 처리는 어렵지 않느냐, 정부 여당이 (국보법 폐지) 공약을 못 지켜도 합의 속에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두고 "천정배 대표가 취임이후 가장 잘했다"며 잔뜩 상기됐던 임종인 의원 역시 "연내 처리 유보는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본다"며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론 철회·전원위원회 개최 및 자유투표'를 제안했던 유시민 의원은 "지금 당 지도부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상황에서 내 입장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즉답을 피했다.

당내 개혁파도 이해하는 분위기 "과반만 넘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 연내처리 유보'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 개혁열망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이며 "국민의 개혁열망을 짓밟고 반민생악법으로 한나라당과 야합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 연내처리 유보'에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의 개혁열망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행위"이며 "국민의 개혁열망을 짓밟고 반민생악법으로 한나라당과 야합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임시국회 소집 요구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어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 처리 유보' 카드가 임시국회 소집을 위해 어느 정도 효과를 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민생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열자는 주장은 야당과 국민을 핑계로 사실은 '4대 악법' 날치기를 위한 장을 만들려고 하는 속셈"이라며 "대타협을 원한다면 날치기 미수 난동사건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또 "여당은 국보법 폐지당론을 철회하고 나머지 3개 악법도 내용면에서 위헌성·정략성 부분을 삭제해야 하며, 야당과 진지한 자세로 타협해 합의처리 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유보 선언'에 대해 "4·15 총선 민심에 대한 배반이고, 대타협이 아닌 대야합"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임시국회에서 어떤 현안을 다룰 것인지는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다른 정당 간에 협의 과정이 남아있어 당의 공식입장은 유보한다"고 말해,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등 야당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분위기다. 특히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소집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 임시국회를 개회하겠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한나라당이 임시국회를 거부하면 조건으로 내세웠던 국보법 폐지안 연내 처리 유보 선언도 지킬 필요가 없다며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한나라당 역시 임시국회 소집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놓기는 했지만 열린우리당 스스로 정국의 최대 쟁점이었던 국보법 폐지안 연내 처리를 유보하겠다고 나온 마당에 무작정 열린우리당의 안을 거부할 명분이 불분명해졌다. 또 800여건의 민생경제 관련 입법이 처리되지 않은 채 정기국회가 끝날 경우 121석의 제1 야당이 감당해야 할 비난 여론도 큰 부담이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아직 초등학생도 방학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여야 정치권이 산적한 민생·경제 관련 법안을 쌓아두고 벌써 방학에 들어가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한나라당이 끝내 임시국회에 응하지 않을 경우, 열린우리당은 '일하는 당과 일하지 않는 당'이라는 공식을 내세워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법사위에서의 물리적 충돌에 대한 반감을 식히기 위한 시간을 가진 뒤, 임시국회 일정 협의에 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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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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