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낳는 佛母(불모)

불상 조각 외길 37년 김광열 명장을 찾아서

등록 2004.12.14 11:41수정 2004.12.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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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수원 보현사 석조 석가모니불 89년 조성, 오른쪽은 월악산 덕주사 노사나불 95년 조성 (출처-김광열씨 작품집'부처를 낳는 석담')
왼쪽은 수원 보현사 석조 석가모니불 89년 조성, 오른쪽은 월악산 덕주사 노사나불 95년 조성 (출처-김광열씨 작품집'부처를 낳는 석담')
이날까지 한눈 안 팔고 37년 동안 신심을 갖고 불상을 새기며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 있다.

부처를 낳는 ‘불모’(佛母)라고 불리는 김광열(49) 불상조각 명장(법명 석담). 지난 12일 그가 대표로 있는 자광불교조각원(충남 논산시 광석면)에서 만나 그간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각이나 불화를 그리는 작가를 부처님을 생산한다는 뜻에서 부처 불(佛)자에 어미 모(母)자를 써서 ‘佛母(불모)’라 한다. 불모는 절에서 부처상을 만들고, 예배대상으로 모실 수 있는 사람에게 붙여야 한다.

예전에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참선을 했다.

김광열 명장은 “목욕재계와 참선도 중요하지만 평소생활을 정직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마음을 늘 욕심 없이 긍정적 사고를 갖고 살아가려 노력한다”고 말한다.

문수보살 조각을 하고 있는 김광열 명장
문수보살 조각을 하고 있는 김광열 명장임성식
김 명장은 “내가 나무 조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릴 적 강원도 두메산골 화전민의 후손 때문일 것”이라며 “통나무집에서, 나무로 된 도구들을 갖고 놀았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고, 아버지가 나무로 연장을 만드시는 것을 보며 컸다”고 회고했다.

김 명장은 69년 초등학교 졸업 후 경기도 양평군 소재 청운중학교 부설 직업중학교(목각)에서 1년 과정을 수료했다. 오전에는 학과 공부를, 오후에는 목각실습을 하였다. 이곳에서 당대 최고 목각권위자인 이석호 스승의 제자가 되는 행운을 갖게 돼 남다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71년 가을 이석호 스승이 다른 조각가의 공방으로 홀연 떠나난 뒤 예술작품의 상품화에 회의를 느끼고, 5년간 속리산으로 들어가 마음속에 해보고 싶은 모든 작품을 해보았다. 잠자는 시간까지 아낄 정도로 불상조각에 매진했다.

스무 살 되던 75년도에는 늘 공경해 오던 불미전에 십일면관음보살상을출품하여 장려상을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 이듬해 인생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는 76년 10월 17일 불미전 종정상(대상)을 받고 감격에 겨워 한동안 나무를 붙잡고 울기도 하였다.


대상을 타보려는 큰 욕심을 내어 몇 개월에 걸쳐 사천왕상 초안을 마련하였다. 사천왕은 도리천에서 제석천 아래 사방을 수호하는 위엄과 장엄함이 불교 미술 중 가장 뛰어난 상이다.

당시는 목각으로 대상을 바라보기에는 계란으로 바위 깨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힘들었다. 목각수준이 너무 낮아 석고상이 최고상을 받을 때 목각은 장려상이 고작이었다.

사천왕상이 워낙 대작이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재료비도 문제지만 3톤이 되는 육중한 원목을 다루기가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니었다. 가산을 다 털고, 빚도 많이 지고 겨우겨우 작품을 완성해 출품했는데 경험이 없는 김 명장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대상 수상 후 세상에 조금씩 이름이 알려져서 주문도 들어오고 그 동안 진 빚도 갚고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89년도에 공주시 계룡면에 정착했다. 돌로 조각을 해 보고 싶은 욕심으로 돌조각을 했으나, 목조각에서 석조각으로 전환이 어려워 10여 년 만에 겨우 조그마한 돌 하나로 조각을 하게 되었다.

재질이 바뀌자 감각이양이 잘 안 돼 애로를 겪기도 했었고, 나무를 다루던 자는 나무만으로 작품을 해야 한다는 주위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굳은 신념으로 계속 돌을 쪼았다.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다. 그에게 많은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한 스님께서 국내 최대 9층 석탑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큰 불사는 경험이 없는 자에게는 잘 주문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동안 기회가 오지 않았다.

몇 달을 전국을 돌며 작품구상에 들어갔다. 하루하루 새로운 구상이 보태어지고 빠지니, 매일 수정 초안만 쌓이는 게 아닌가. 떠오른 착상을 완전한 초안을 만들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명언이 그때처럼 마음속 깊이 와 닿은 적이 없었다.

최근 작품으로 왼쪽은 충북 음성군 미타사 세계 최대 지장보살, 높이 45m. 오른쪽은 안성시 운수암 육각 3층 보탑, 높이 10m다. 보통 탑은 4각 또는 8각인데 비해 이 탑은 6각이다. (출처-김광열씨 작품집 '부처를 낳는 석담')
최근 작품으로 왼쪽은 충북 음성군 미타사 세계 최대 지장보살, 높이 45m. 오른쪽은 안성시 운수암 육각 3층 보탑, 높이 10m다. 보통 탑은 4각 또는 8각인데 비해 이 탑은 6각이다. (출처-김광열씨 작품집 '부처를 낳는 석담')임성식


김 명장은 “불상 조각을 하면서 100%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는 더욱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달랜다”며 “작품 조각도 우리 인생과 마찬가지로 죽는 날까지 배우는 것이 아니겠냐”고 배우고 깨닫는 마음 자세를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목조각과 석조각 두 가지 자격증을 소유한 조각가는 김 명장이 유일하다. 또 최초의 석조 무형문화재 명인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그 혼자다.

현재 대한민국 불상조각가 명인 5인중에 한명으로 경주에 있는 동국대학교 불교조각과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후학 양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김 명장은 오랫동안 따랐던 2명의 제자에게 자광불교조각원에서 기술전수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계종, 천태종의 수많은 불상과 탑 등을 조성하였으며 백담사에 만해 한용운 스님 동상도 김 명장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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