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버리는 동네가 이 동네요"

전남 여수 사곡마을의 어촌일기

등록 2004.12.15 16:33수정 2004.12.1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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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사곡2구. 썰물 때가 되면 진목마을과 장척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공동어장으로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한다.


a 사곡 청정해역에 정박중인 소형 어선들

사곡 청정해역에 정박중인 소형 어선들 ⓒ 김학수

바닷물이 만조가 될 때면 섬이 되었다가 썰물 때면 다시 육지와 하나로 연결되는 신비의 섬 '복개도'.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길이 열리는 이곳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으로 잘 알려져 있다.

a 바닷길이 열리면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복개도 어장으로 나선다

바닷길이 열리면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복개도 어장으로 나선다 ⓒ 김학수

오늘은 바지락 공동어장의 석화(굴) 제거 작업이 있는 날. 동네 65가구 중 40가구가 공동회원으로 구성되어 운영하고 있는 어장에 겨울 차가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a 바지락 어장에서 굴을 골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바지락 어장에서 굴을 골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 김학수

이곳 사곡마을은 바지락을 생산하는 어촌마을이다. 이곳의 바지락은 맛과 품질이 우수해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물량이 일본으로 비싼 값에 수출되고 있다.

국내 내수판매 가격이 1kg에 2000원 선인 반면, 일본으로 수출되는 가격은 1kg에 3000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곳 어촌계 회원들의 바지락 사랑은 유별나다.

"돈을 버리는 동네가 이 동네요…."


손말순(64) 할머니의 말씀이 의아했지만 곧 의문이 풀렸다. 이곳 사람들은 바지락 어장의 어족자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는 굴(석화)을 한 곳으로 모아서 버리고 있었다.

"인삼 밭에 산삼 한 뿌리 있으면 뭐에 쓴다요? 다 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쓸모가 있는 것이여…."


사실 이 굴들이 커가면서 바지락 종패에 악 영향을 끼쳐 바지락이 자라지 못하게 한단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아까운 마음이 들어, 상품화할 방법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도통 바빠서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말한다.

a 채취된 굴은 따로 모아 한곳에 버려진다.

채취된 굴은 따로 모아 한곳에 버려진다. ⓒ 김학수

이곳 사곡 어촌마을 사람들은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1년 내내 쉬지 않고 짭짤하게 돈을 벌 수 있다.

"여그는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겄습니다. 바지락과 참꼬막, 새꼬막이 지천에 널려 있고 어선이 40여 척이나 있어 낚싯배와 각종 어업에 종사할 수도 있고, 또 밤이면 주낙을 이용해서 낙지를 잡아 고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6년째 이장 업무와 어촌계 반장 업무를 맡고 있는 김영록(57)씨의 말이다.

힘든 일손을 잠시 멈추고 갖는 휴식 시간. 이장님이 준비해오신 맥주와 음료, 튀김닭을 먹으며 어촌계 사람들은 하나되어 담소하며 즐겁기만하다.

a 달콤한 휴식시간. 정담이 오간다.

달콤한 휴식시간. 정담이 오간다. ⓒ 김학수

최고령임에도 작업을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장수의 비결을 여쭈었더니, "내가 나이가 90살이고 우리 할멈이 81살인디…. 내가 걸음을 뛸 때부터 지금까정 싱싱헌 이 동네 해물을 많이 먹고 살아서
그런가 보네. 말은 잘못허면 서로에게 못 쓰게 상처를 주지만 좋은 음식은 서로서로 좋게 나눠 먹어야 좋은 것이여. 애로워(어려워) 허덜 말고 많이 먹소"라고 말한다.

튀김닭 한쪽을 기자에게 건네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90세 연로하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느 젊은이보다 혈색이 좋아보인다.

a 90세 할아버지의 건장하신 모습(왼쪽)

90세 할아버지의 건장하신 모습(왼쪽) ⓒ 김학수

태양빛이 인근 장부도와 모개도 고개 너머로 기울기 시작하자
작업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한다. 저녁에 해야될 또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a 김영록 이장님의 고향 자랑은 끝이 없다.

김영록 이장님의 고향 자랑은 끝이 없다. ⓒ 김학수

"언능언능 해놓고 두 내외간에 낙자 잡으러 갈라요."

이곳 사람들은 낙지를 '낙자'라고 부른다. 제철을 만난 낙지잡이는 하룻밤에 300~400마리를 거뜬하게 잡아올릴 수 있다. 어두운 밤 주낙을 이용해서 잡아올리는 이곳 낙지는 단백질과 당질이 적은 반면, 단백질이 풍부해서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우린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이는 당뇨병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인근 여수 수산시장에 마리 당 1500원의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a "낙자 한 마리 먹어 볼라요? 목구멍에 엥겨분게 조심혀서 먹으시오!"

"낙자 한 마리 먹어 볼라요? 목구멍에 엥겨분게 조심혀서 먹으시오!" ⓒ 김학수


a 복개도에서 바라본 사곡마을

복개도에서 바라본 사곡마을 ⓒ 김학수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낙지잡이를 끝내고 부두로 돌아오는 최병현(68), 김상길(63)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차가운 겨울밤 바닷바람이 매섭기는 하지만, 오늘 이들은 자신들이 땀흘려 노력한만큼의 대가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낀다.

흔들리는 뱃전에서 고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마시는 쌉쓸한 막소주 한 잔의 여유가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아마도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려는 그들만의 아름다운 몸부림이 아닐는지….

a 새벽 낙지잡이를 마치고 마시는 소주 맛은 어떨까?(최병현, 김상길 할아버지)

새벽 낙지잡이를 마치고 마시는 소주 맛은 어떨까?(최병현, 김상길 할아버지) ⓒ 김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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