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군인 '송 원사'

양부모 봉양해 온 공군주임원사, 딸 입양해 양아버지도 돼

등록 2004.12.20 23:21수정 2004.12.2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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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식이라도 이렇게 잘하지는 못하지. 시골에 사는 노인네 보러 누가 이렇게 자주 내려와유? 우리가 복이 많아서 효자를 얻은 거지유."

충북 보은에 사는 남정희(68), 박이춘(65)씨가 양아들인 송한실(47) 공군주임원사 이야기를 꺼내며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송 원사는 16년 동안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겨울에는 아기를 입양해 '핏줄'아닌 '사랑'으로 가족을 구성했다.

송 원사의 양부모인 남-박씨 부부에게는 상신(40·미국 거주)씨라는 친딸이 있다. 송 원사와의 인연도 청주 공군부대 인근에서 공장을 다니던 상신씨가 85년도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송 원사가 상신씨와 허물없이 지낸 이유는 그녀 얼굴이 어릴 적 교통사고 흉터로 심하게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딸에게도 몸 전체의 15%에 이르는 화상 흉터가 있는 것이 안타깝던 송 원사는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그녀와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상신씨는 미국 교민과 결혼했고 동시에 이민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송 원사에게 한국에 남아 있는 부모님을 찾아가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가족과 상의를 한 송 원사는 처음에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으로 시골에 내려갔다.

몇 차례 방문하게 되면서 정이 들어 왕래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리고 1988년 상신씨 아버지는 "아들이 되어 달라"고 제의했고 송 원사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두 한자리에 모인 송한실 공군주임원사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인 송한실 공군주임원사 가족강경희
송 원사 가족은 한 달에 두세 번 농사일을 돕고 말벗이 되기 위해 시골에 간다. 두 사람의 회갑연도, 딸을 그리워하는 양부모를 모시고 미국에 함께 다녀온 것도 송 원사가 마련한 일.

"TV며, 냉장고며, 아들이 챙겨주지 않았다면 궁한 살림에 생각도 못했죠. 휴가 때 쉬지도 못하고 일 만하고 갈 때는 마음이 아파요"하는 어머니 말에 송 원사는 "편하게 모시지 못해 송구스러울 따름이다"고 고개를 숙였다.


법적인 절차는 밟지 않아서 주위에서 양부모-양자가 아니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 모두 서로 중요성을 의심한 적이 없다. 노부부가 사는 동네에서도 송 원사는 소문난 효자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고부 갈등도 없다. 송 원사는 "일찍 돌아가신 친부모님께 못다 한 효도가 사무치는 만큼 지금의 부모님께 더욱 정성을 기울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연히 시작된 양부모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송 원사는 스스로 양아버지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올해 1월 갓난아기를 입양하면서 '다정'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올렸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송 원사가 예전부터 "입양하겠다"고 말해 온 터라 놀라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 가족 모두 13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며 '나누는 사랑'의 의미를 공감하고 있던 탓에 오히려 다른 집보다 입양 여건이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송 원사도 자신의 적지 않은 나이, 호기심 어린 주위의 시선, 경제적 부담감에 대해서는 걱정을 많이 했다.

송 원사는 차분히 입양 준비를 했다. 입양 관련 인터넷 카페를 참조하며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밟았고 아이가 크면 겪을 갈등과 경제 계획까지도 고려했다. 송 원사는 막내딸을 당당히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성년이 되면 친모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나이 어린 미혼모에게서 2.3㎏로 태어난 다정이는 몸이 약해서 걱정이 컸다고 한다. 폐렴으로 입원한 날에는 가족 모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이제 어느 아기보다도 건강해진 다정이는 가족들에게 천사처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손주냐?"는 질문에 속상했던 부인도, 군입대 후 갑자기 나타난 무려 스무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막내자리를 내놓은 송원사의 아들(송현정·22·공군 상병)도 다정이를 위해 매일밤 기도한다.

양부모님에게 뒤늦게 생긴 손녀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석이 되었다. 다정이에게도 할아버지·할머니는 가족의 의미를 알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될 거라는 것이 송 원사의 기대다.

전역 후 꿈은 경제 여력이 없는 노인들을 위하여 요양시설을 짓는 것이다. 송 원사는 "부모님과 다정이까지 3대가 모여 외로운 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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