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4대 아힘나 시장으로 선출된 최광혁 군(18세)김종수
그 해 여름캠프에는 자율적 경제제도를 도입하여 ‘힘나’와 ‘만나’라는 화폐로 공동체 내에서 통용하며 제2회 아힘나 캠프를 실시하였다. 2003년 여름에는 남북한 체제부적응 아이들과의 자연스런 만남을 통해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평화로운 세상의 실현과정을 만들어 보았다.
2004년 1월에는 일제강점의 시대 일본으로 징용되어 끌려갔던 조선인들의 3~4세가 된 재일코리안과 외국인의 자녀들(산업연수생의 자녀들)과 더불어 아시아의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아젠더 개발을 시도하였으며, 이를 평화감수성의 예술적 표현으로 이끌어갔으며, 2004년 8월에는 아힘나 공동체 생활의 자치적 규율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그리고 2005년 1월에는 3월의 평화학교개교를 앞두고 자율적 학습문화공동체에서의 자발성을 함양시켜가는 과정을 시도해 볼 것이다.
2005년의 아힘나 학습문화공동체 체험과정은 오전에 생태교육과 평화교육, 그리고 문학교육의 전 6개의 강좌가 마련되어 있어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수업에 참여할 수 있으며, 아힘나의 일원이 되는 의무교육과정에 참여하였으므로 학습노동의 대가인 임금(賃金)으로 ‘만나’를 받아 기본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오후에는 장승을 만들고, 판화로 달력을 마들며, 한국의 오카리나인 흙 피리를 만들어 모닥불에 불에 굽고, 아힘나에서의 일상을 카메라로 담아 작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책을 만들고, 버릴 음식을 잘 말려 고급 강정을 만들어 보고, 과일로 화장수를 만드는 다양한 문화예술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오후 과정에 참여하려면 아힘나를 움직이는 공무원에 소속되어 ‘힘나’라는 임금을 지급받아야 하며, 공무원에 임용되지 못한 이들은 새로운 창업을 위해 노력하거나 공공근로에 참여하여 ‘힘나’를 벌어 다양한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아힘나에서는 노동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어른들에 의존하는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밤에는 가족(모듬)들과 더불어 오붓하게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밖에 나가 고구마를 구워 먹거나, 카페(인터넷카페, 차카페, 책카페)에 들러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아힘나는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타인의 권리도 보장해 주어야하는 만큼 권리와 의무에 대한 균형 잡힌 생활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자연스레 몸에 익혀질 수 있도록 하려는 교육적 시도인 셈이다.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아힘나의 공간을 제공한 안성 두원공과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