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현장] 전태일이 머물던 자리, 지금 그곳은....

등록 2004.12.22 14:00수정 2004.12.23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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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대문 쇼핑 상가

동대문 쇼핑 상가 ⓒ 인권위 김윤섭

1970년대의 상징 청계고가도로가 사라졌다. 청계천 '토끼장' 봉제 공장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재봉틀)'을 돌리며 경제를 일으켰던 여성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태일이 쌍문동 집까지 걸어다니며 차비를 아껴 풀빵을 사 주던 어린 여공들. 20년 혹은 3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일하는 엄마'들이 되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40%가 이곳에 들르고 하루 유동인구만 40만이라는 동대문 의류 상가 주변에서, 낮에는 그 쇼핑센터의 음악 소리가 시끄럽고 밤에는 휘황한 불빛이 비치는 가파른 동네에서, 그들은 여전히 미싱을 밟고 있다.

창신동은 특별하다. 서울 시내 한가운데 있지만 큰길만 벗어나면 차와 사람이 뒤엉키고 연립주택이 빽빽하다는 점에서는 평범하달 수 있다. 겉은 화려하되 속은 그렇지 않은 게 서울이다.

겨울에 눈이 오면 어떻게 다닐까 걱정될 만큼 경사가 가파른 이곳의 주민들은 연탄재를 사용한다. 이 동네에는 연탄 때는 집들이 아직 많다. 그런 곳이 여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신동은 주거지이자 생산지이다. 연립주택 일층이나 반지하, 차고에 작은 봉제 공장들이 있고, 살림집이면서 작업장인 집들도 많다.

'동대문봉제인협회'에 따르면, 큰 빌딩 하나 없는 창신동에 2600개의 봉제 공장이 있다고 한다. 집들과 섞여, 집들 속에, 집이 곧 공장으로. 국내산 의류제품의 85%가 이 동네에서 만들어진다. 이웃이나 가족이 직장 동료이고, 동네 조기 축구회가 동종업계 친목회이며, 아줌마들 계모임이 작업 네트워크, 아이들은 부모의 생산 현장에서 자란다. 이런 동네는 드물다.


집들과 섞여, 집들 속에, 집이 곧 공장으로

최혜주·정인현 부부는 10년 전 한 방송국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던, 말 그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당시 카메라만 들이대면 울어 취재진을 애먹였던 첫아들이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고, 아들 둘을 더 두었다.


아내 최씨와 남편 정씨는 미싱사와 재단사로 만나 결혼했고,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연립주택 2층, 그 집 문을 열면 보이는 재봉틀 건너편에 최씨가 앉아 있다. 천장에 전깃줄이 얼기설기 지나가고, 줄에 원단이나 천 조각이 빈틈없이 걸려 있다.

최씨 맞은편, 창가 쪽에 정씨의 작업대가 붙어 있다. 다림질 때문인지 집안이 후끈하다. 최씨와 정씨의 작업대 사이에 부엌이 있고, 그 안쪽 문을 열면 방이다. 방 안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가 아이들 방이다. 방 둘, 부엌, 욕실, 작업장. 하청을 맡아 집에서 일하는 가정의 일반적인 집 안 구조다.

"우리처럼 일하는 사람들은 6시쯤에는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학원에서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8시에 먹어요. 한 번이라도 미싱에서 덜 내려가려고. 집에서 일하니까 아이들 관리하기는 좋아요. 옆에 앉아서 한 자라도 더 가르쳐 줘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아쉽고.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걸로 두 과목만 잘하라고 해요. 1970~80년대에는 이런 일을 '제품쟁이'라고 무시했지만, 요즘은 대학 나와도 할 게 없잖아요? 아이들이 배워도 괜찮을 것 같아요."

a 1970년대부터 미싱일을 하던 최혜주씨. 지금은 재단사인 정인현씨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1970년대부터 미싱일을 하던 최혜주씨. 지금은 재단사인 정인현씨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둔 엄마가 되었다. ⓒ 인권위 김윤섭

경력 20년의 최씨는 자신의 기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다. 일감만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잘 팔리는 디자인이 있으면 주문이 들어오는데, 오늘 주문을 받아 내일 물건을 대줘야 하는 시간 싸움이다.

이 가족이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창신동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동대문시장에서 주문을 받아 근처 방산시장이나 광장시장에서 단추며 지퍼 같은 부속품을 사다가 하루만에 납품하는 집약성, 근접성 때문이다. 밤새 미싱이 돌아간다. 그래도 그럴 때가 신난다.

"지난해, 지지난해보다 경기가 더 안 좋아요. 지금쯤 뺑뺑 돌아가야 하는데. 일감이 떨어지면 먹는 거 줄이고, 아이들 학원비 줄이죠. 지금은 두 아이만 합기도에 보내요. 과외 공부시키는 엄마들도 있는데 한 아이당 이십 몇 만원씩이나 하니. 엄마들이 돈을 만지기 때문에, 엄마가 일하는 데 따라 아이들이 차이가 확확 나요."

일감을 맡아 오는 건 남편 정씨 몫인데, 별로 낙관적이지 않다.

"경기가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리겠어요? 난 최소한 5년은 걸릴 거라고 봐요. 2~3년만에 경기가 회복기로 돌아선다고 해도, 잘사는 사람들부터 차례로 풀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까지 영향이 미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경기가 얼어붙으면 없는 사람들부터 바닥이 나고 경기가 나아져도 가장 늦게 풀리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풀어 줘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누구 때문에 돈 벌었어요? 이번에 상속세 400억원인가 낸 대기업 2세, 그 사람 실제로 자기가 일해서 번 건 나보다 적을 걸요? IMF 때는 돈 꿀 데라도 있었어요. 대출 받아 메우다 메우다 지금은 그것도 못해 건강보험료도 못 내는 사람들 많아요. 빚진 집들 많아요. 내년에 돈 벌어 갚아야 하는데, 이제는 또 환율이 어쩌고 하고. 동네 남자들이 모이면 겨울 날 걱정해요."

"일감만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맏아들 제안이가 집에 분명히 있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기어이 미싱에서 내려와 아들을 찾아냈다. 제안이는 방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공부해야지, 자?"

졸지에 엉덩이를 두들겨 맞은 아이는 눈을 비비며 어리둥절해했다. 최씨의 작업대 옆 벽에는 제안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린 그림이 붙어 있다. 잘 그렸다. 그 그림을 그 어린 나이에 그렸다는 증거로, 엄마와 아빠는 당시 제안이의 사진을 그림 밑에 붙여 두었다.

"얘는 쓱쓱 그리는데, 그림이 막 움직이는 것 같아요. 만화가나 애니메이션 같은 거 해도 좋을 것 같고. 요리에도 취미가 있어요. 호텔경영학이나 조리학과, 그것도 좋잖아요?"

정씨는 아들이 그린 그림의 생생한 느낌을 표현하려고,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앞으로 쏠리는 시늉을 했다.

a 창신동의 봉제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요즘. 정인현씨의 바람은 그저 일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창신동의 봉제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요즘. 정인현씨의 바람은 그저 일감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 인권위 김윤섭

지난 11월 창신동에 있는 여성단체 '참여성노동복지터'(이하 참터)가 발표한 '동대문 주변지역 여성 노동자들이 희망하는 여성단체 활동'이라는 설문조사 자료집에 따르면, 참터 회원들 절반 이상이 월평균 가구 소득이 200만원 이하다. 참터 회원들은 물론 창신동 주민이고 봉제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다. 대체로 남편이 재단사이고 아내가 미싱사로,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절반이 한 달에 200만원을 채 못 번다.

맞벌이 가정 절반이 월 200만원 채 못 벌어

창신동의 봉제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니다. 비정규직은 계약 기간이라도 보장받지만, 이들은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만이다. 노동자 자신이 일감을 따다 집에서 일하거나, 공장에 나간다 해도 당일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받는 '객공' 방식이다.

피고용인과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은 영세 사업주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고, 보너스나 휴가, 수당 개념도 없고, 보험과 연금 혜택도 일절 없다. 겨울과 여름철이 비수기이고 작업과 작업 사이의 간격까지 합치면 일년에 5~6개월은 쉬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두 달 먹고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나마도 여의치 않다. 문을 닫는 공장들이 점점 늘어난다. 의류상들이 임금 수준이 낮은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해서 갖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한다 해도 봉제 노동자들은 중국과 베트남의 노동자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작업 단가는 점점 낮아진다.

1980년대 말 점퍼 한 장 박음질하는 공임이 5000원이었는데, 지금은 4000원이다. 그리고 디자인이 복잡해져 한 장 박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더 많아졌다. 10년 전에 비해 소득은 오히려 낮아지고,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하면 생활수준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경쟁력이 없으면 포기해야 한다고,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은 재빨리 후진국에 넘겨 버려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그러나 그후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봉제일에 종사해 온 노동자들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는지, 대책을 제시하는 이들은 없다.

국가가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주거·교육·의료·노후 문제를 해결해 주겠는가? 살아남은 기업들이 세금을 내어 이들을 평생 먹여 살리겠는가? 그리고 그게 과연 효율적인 방식일까?

"1970년대에는 1980년에 잘 살게 될 거라고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는데, 1980년대에도 실질적 임금 인상은 없었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겨우 제 목소리를 낼 즈음 후발주자인 중국 등으로 생산체계가 옮겨가 버렸다. 그리고 IMF가 닥쳤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실제로 일선의 저임금 노동자를 배제하는 정책이다."

참터 전순옥 대표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국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전 대표는 창신동 봉제산업은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세계적인 문제는 '고용 없는 성장'이고, 어떤 나라나 일자리 창출에 골몰하고 있다. 미국도 FTA 협상 때 자국의 섬유, 의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쿼터제를 양보하지 않았다. 의류제조업이야말로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이기 때문이다.

일본도 10년 공황을 겪은 후 봉제 공장들을 다시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나라는 된다. 세계적으로 동대문 시장과 그 주변의 의류 부속품 시장, 그리고 창신동 등지의 신속한 생산 체계, 즉 의류산업의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은 여기밖에 없다.

디자인이 나오면 72시간만에 일본 도쿄 쇼핑몰에 우리 옷이 쫙 걸린다. 눈을 감고도 옷을 만들어내는 우리 노동자들의 기술력은 누구도 못 따라온다. 중저가 제품은 중국 등에 넘기더라도 중고가 제품은 우리에게 경쟁력이 있다.

봉제 산업은 사양 산업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산업이고, 살려 내야 할 대한민국의 자산이다. 나라더러 큰일을 해달라는 게 아니다. 음지에 있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들을 양성화하고, 공정한 무역이 이루어지도록 덤핑을 규제해 달라는 것이다."

일년에 반은 일감 기다리는 대기시간

'어느 일요일,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라면이나 군것질로 허기를 달랬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집에 들어섰는데, 집안이 조용했다. 딸애(초등 3)가 큰애 친구(초등 5)와 함께…'

참터 상담실의 상담 사례이다. 일년에 반은 쉰다지만, 이 기간은 말처럼 쉬는 시간이 아니라 일감을 기다리는 대기상태이다. 밤낮없이 돌아가던 일을 끝내고 녹초가 되었거나, 일감을 찾아다니면서 마음 졸이느라 여가나 문화생활을 하기가 여의치 않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밥해 놓고 나가 잠잘 때 돌아오든지, 집에 있어도 이야기할 새 없는 사람이다. 평일에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봐주지만 토·일요일에 부모가 일하고 있을 때는 아이들이 배회한다. 어리면 동네 문방구 앞 조잡한 오락기계 앞에서 넋을 놓고, 좀 크면 동대문 쇼핑센터 주변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어울린다.

a 부모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문방구 앞의 조그만 오락기계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배회하곤 한다.

부모들이 밤늦게까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은 문방구 앞의 조그만 오락기계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배회하곤 한다. ⓒ 인권위 김윤섭

"1970년대에 처녀 미싱사였던 분들의 80%가 같은 공장이나 업종의 남자들을 만나 결혼했다. 공장을 벗어날 새가 없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녀들을 현실적으로 뒷받침해 주지 못해,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참터 문정열 연구원은, 십대에는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일했고, 이제는 오로지 자식을 위해 일하는 엄마들에게 '희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창신동 공부방 '참 신나는 학교' 천인숙 교사는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노동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는 너무 잊었다고 말한다.

"아이들 중 반쯤은 결국 부모가 하는 일을 하게 된다. 우리가 옷 안 입고 살 수 있느냐, 옷 만드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그러나 수십 년 일해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온갖 분야에서 교수가 나와도 미싱 일에는 그런 것이 없다."

멀리 '캐슬(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텔레비전 아파트 광고는 귀족, 품격 등 생산현장과의 거리를 강조한다. 주거와 노동, 생산자와 소비자는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소비자가 싼 물건만 찾을수록 내수는 얼어붙고,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노동자인 우리의 삶은 동반 하락한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노동자들은 1970년대 우리 노동자들처럼 욕까지 얻어먹으며 잔업과 야근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그때처럼 안 하려면 그만두라'고 요구하고 있다.

요즘 참터는 '깨끗한 옷 입기' '피와 땀 묻은 옷 안 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유명 브랜드 옷을 사지 말고, 노동자가 제대로 대가를 받고 즐겁게 일해서 만든 제품을 선택하는 의식적 소비로 같이 살자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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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주요기사를 오마이뉴스에 게재하고, 우리 사회 주요 인권현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 등을 네티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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