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84회

등록 2004.12.27 07:49수정 2004.12.2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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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이 끝나자 구양휘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 초혼령을 금의의 중년인에게 받았다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자네가 원수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분명 자네의 사부라 해야 할 그 중년인이군.”


“소제도 그렇게 생각하오. 사실 구양형이 장안에 오자고 하지 않았으면 소림에서 곧바로 그를 찾아 떠나려 했었소.”

“그가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나?”

“모르오. 다만 소제가 머물던 초옥을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사실 그곳을 그가 들르게 될지 확신할 수 없소.”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담천의의 막연한 생각이었다. 자신이 십이년이 넘도록 머물렀던 그 초옥에 그가 온 것은 열번도 채 되지 않았다. 다섯명의 인물들이 와서 각종 기술을 가르쳐 주었지만 그들이 머무는 기간 역시 한달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를 찾지 못할 수도 있겠군.”


“그렇다 해도 소제는 가 봐야 할 것 같소. 도대체 초혼령이 왜 내게 있는지, 구양형 말대로 섭장천이란 인물이 어떻게 소제를 알아 본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소.”

그러나 구양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자네가 간다 해도 그를 만나리라는 보장은 없어. 자네가 그 초옥을 떠나 온 게 벌써 삼년이 넘지 않은가? 오히려 나는 자네가 기다리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데...”

“기다리다니 누굴 기다리라는 것이오?”

그 때였다. 주먹만한 하얀색 고양이가 탁자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조용했던 객잔이 시끄러워졌다.

“아니 두분은 태평하게 이곳에서 술이나 마시고 있었소? 이거 참.... 우리는 걱정이 되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일행들이었다. 팽악과 남궁산산이 들어오고 나머지 일행들의 모습도 보였다.

“일찍들 왔군.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구양휘는 말을 하며 탁자 위에 앉아있는 설묘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설묘가 빠르게 비껴나며 털을 곧추 세웠다.

야---옹----!

허리를 잔뜩 웅크리고 이빨을 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적을 앞둔 듯한 모습이었다.

“허... 이 녀석은 언제나 내게 덤빈단 말이야.”

구양휘는 놀리듯 손가락을 튕기면서 설묘를 건드렸다. 설묘는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앞발로 막기도 하고 할퀴려 들었다.

“구양 오라버니가 매번 백설을 괴롭히니까 그렇죠. 이리 오련.”

남궁산산이 의자에 앉으며 설묘에게 손을 뻗자 설묘는 금세 남궁산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설묘를 몇 번 쓰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헌데 어찌된 일이에요? 비림 쪽으로 가던 것 같던데 상대를 찾지 못했던 거예요?”

“그는 죽어 있었소.”

담천의가 대답했다. 그는 일행들이 모두 앉자 관왕묘에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은 일행들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장안에 무슨 일이 있는거요? 곳곳에 무림인들이 웅크리고 있으니 말이오?”

팽악이 급하게 술을 한잔 들이키더니 구양휘를 보며 물었다. 그들 역시 장안에 무림인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간파한 것 같았다.

“있지. 무림을 뒤흔들 사건이 이 장안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구양휘의 말에 이어 남궁산산이 입을 열었다.

“오룡번(五龍幡)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그 소문은 보름 정도 되었는데 최근에 장안 쪽으로 움직인다는 말이 있어요.”

그 말에 팽악은 대뜸 코웃음을 쳤다.

“오룡번이 나타났다는 말이 어디 한두번 나왔나? 아마 십년에 한번쯤은 도는 소문이 그거 아냐?”

“이번에는 다른 것 같아요. 좀 더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어요. 더구나 이번에는 은거했던 기인들이나 거물(巨物)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무시하기 어려워요.”

그녀의 말에 팽악은 구양휘를 바라보았다. 남궁산산의 말이 맞는다면 정말 무림에 다가올 여파는 무시할 수 없었다.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 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룡번은 충분히 그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삼백여년 전 이 중원에는 암흑의 시대가 있었다. 역사상 다시는 나타나서는 안될 아홉명의 마인(魔人)이 나타나 전 중원을 혈세(血洗)한 것이다. 절대구마(絶代九魔)라 일컬어졌던 그들은 의형제였고 전 중원의 마도인(魔道人)들은 그들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서했다.

그들이 모습을 보인 지 오년 만에 정도인들의 수급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고, 전 무림은 그들이 머무는 구마천(九魔天)의 지배 하에 떨어졌다. 그것이 무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구마겁(九魔劫)이라 부르는 시기였다.

하지만 역사(歷史)는 잘못된 것을 언제나 바로 잡는 알지 못할 힘이 있다. 아니 그 잘못이라 보이는 것도 역사의 하나가 되고 또한 그 잘못으로 인하여 역사는 바로 잡혀 가는 것이다. 그 시기에 그러한 인물들이 나타난 것은 하나의 시련이었지만 그것을 아우르는 힘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었다.

어디서 배출되었는지도 모르고, 누구인지도 모를 다섯명의 기인(奇人)은 나타난 지 일년 만에 구마천을 괴멸시켰다. 호북성(湖北省) 형문산(荊門山)에 위치한 구마천에서 그 다섯명의 기인은 경천동지할 혈투 끝에 절대구마 모두를 굴복시켰다고 전해진다. 절대구마가 나타나 전 중원을 휩쓴 지 단 칠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절대구마가 사라졌고, 또한 오룡(五龍)이라 불리운 다섯명의 기인들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십년 만에 나타난 하나의 깃발(幡)은 또 다시 무림을 혼란 속으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마치 산수화(山水畵)처럼 그려진 배경에 다섯마리의 용이 뒤엉켜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을 가진 깃발은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모르나 오룡번(五龍幡)이라 하였고, 그 안에 다섯명의 기인, 즉 오룡의 무학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절대구마의 무학 역시 그 안에 있어 차후에 나타날 구마의 후인(後人)을 막으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그럴 듯한 소문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오룡번이 아무런 근거 없는 소문만으로 떠도는 것이 아님은 이백여년 전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란 소리를 들었던 철혈마제(鐵血魔帝) 독고수광(獨孤壽廣)이 오룡번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이었다. 물론 독고수광은 인정(認定)도 부정(否定)도 하지 않아 확인된 바는 없으나 부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농후했다.

“기다려 봐. 조만간 밝혀지겠지.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면서 추이를 지켜 보는 게 나을 거야. 이럴 때 잘못 움직이면 다치기 쉬워.”

구양휘는 뭔가 알고 있었다. 그가 장안으로 급히 온 이유는 초혼령 하나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더구나 은거한 기인들까지 나서는 상황이라면 구파일방에서 모를 리 없다. 며칠전 가진 장문인들의 회합은 단지 초혼령의 해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네 역시 기다려봐. 내 생각에는 자네의 궁금증을 풀어줄 누군가는 나타날 거야.”

구양휘는 담천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이곳에 당분간 머물자고 한 이유도 사실은 담천의를 배려한 일인지도 모른다. 초혼령을 가진 그가 이런 때 움직이면 번거로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다 문득 구양휘는 술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일행을 쭉 둘러보더니 씨익 웃었다.

“오늘 한번쯤 취해 보는 게 어때?”
“허, 왠일이오. 대형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비림을 벗어나 오리 정도 떨어진 조그만 객점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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